사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쓸모를 증명해야만 한다.
나는 이런 좋은 직장에 다녀요. 나는 결혼도 했고, 번듯한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같은 허울 좋은 말들을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영화 <엑시트>의 용남은 그런 ‘쓸모’가 없는 인간이다. 오랜 기간 취업을 하지 못한 그는 사회에서의 지위랄 것이 딱히 없다. 때문에 누구도 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다. 우습게도, 정말 일어나겠어 싶은 말도 안되는 재난이 터지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쓸모가 생긴다. 그것도 세상 쓸모 없을 줄 알았던 산악부 활동 덕에 말이다.
사는 것은 대개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러니가 계속된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가치들이 있다는 의미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람의 쓸모는 어떤 지위가 아닌, 사실은 존재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목숨을 위협 받고 나서야 깨달은 셈이다. 요즘의 나도 그러지는 않았나 생각해 본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보다 어떤 것을 영위하며 살아갈 지, 나의 쓸모를 찾는데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다.
용남의 아버지가 돌아온 용남을 마주했을 때 처음 내뱉은 말은, 영화 내 반복된 꾸지람과 호통이 아니라 “고맙습니다”였다. 존재보다 쓸모가 앞선다는 인식이 판을 치는, 망할 세계에서, 용남이 이윽고 탈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9. 08. 11.
영화 <엑시트>를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