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욕망

by kmsnghwn

그리스 신화에는, 에리식톤이라는 인간이 나온다. 신화 속 인간이 대개 그렇듯, 그는 신의 노여움을 사 형벌에 처해진다. 그는 풍요를 박탈당했고, 그로 인해 영원한 배고픔에 시달렸다. 먹고, 먹고, 먹고, 또 먹고. 끝내 그는 스스로를 먹어치운다.


<마약왕>의 메스암페타민, 즉 히로뽕이 이두삼에게서 앗아간 것 역시 어쩌면 신이 에리식톤에게서 앗아간 것과 같을 지 모르겠다. 그저 부자가 되고 싶어서 시작한 마약유통이, 그의 동생을, 아내를, 친구를 잃게 만들 줄 그는 알았을까.


보통 전기 영화라 하면, 본받을 만한 혹은 어떤 인상깊은 업적을 남긴 인물을 정면에 세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약왕>은 전기 영화임에도 정확히 무엇을 본받을 수 있는 것인지 뚜렷이 알기 어려웠다. <내부자들> 때와 같은 날선 정치, 사회 풍자와도 다소 거리가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오직 ‘어떠한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인식’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인간이라면-무슨 수를 써도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외로움인지, 돈인지, 유명세인지, 아니면 욕망 그 자체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다만 모든 것들을 가득 채우고 살아가는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란, 따라서 ‘어떠한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무엇’이 있음을 알고 그것이 가득차지 않았어도 불안해 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히로뽕은 복용자에게 불안과 의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이두삼에게는 불안과 의심이 결코 채워지지 못할 것들이었던 셈이다. 그는 그것을 채울 수 있다고 과신했거나 혹은 인지하지도 못했기에 파멸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에리식톤처럼.


2018. 12. 28.

영화 <마약왕>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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