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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머그 Apr 06. 2016

스티브잡스의 애플과 팀쿡의 애플은 어떻게 다른가?

Apple's Tim Cook leads different

전설적인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은 이후로 쿡은 아이-제국의 재정을 훨씬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애플의 문화를 개선하고 지도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팀 쿡은 Apple CEO에게 쏟아지는 날카로운 시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잡스가 병가로 자리를 세 번 비우는 동안 잡스의 공백을 메웠으며, 잡스가 사망하기 6주 전인 2011년 10월, 애플의 CEO가 되었다.


하지만 쿡은 전설적인 경영자의 후임에게 뒤따르는 철저한 조사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는 둔감한 편인데 더 둔감해졌어요. 잡스가 사망하고 나서야 그가 직원들 그리고 경영진들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주는 커다란 방패였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는 걸, 아니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이런 부분은 주의를 기울여 보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잡스가 방패 같은 존재였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마 없었을 거예요. 그는 정말 어떤 화살이든 다 막아냈어요. 물론 찬사 또한 그의 몫이었지만 방패로 서 단단함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죠.”


잡스가 방패 같은 존재였다.


쿡은 고된 시련의 순간을 숙고한 끝에 결국에는 성공의 순간으로 이끌 수 있었다. 3월의 화창한 한 일요일, 그는 다음날 발표할 Apple Watch(쿡이 CEO가 된 후 발표하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를 공개하는 이벤트의 리허설 중간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54세인 쿡은 Apple이 신제품 공개 이벤트를 진행할 행사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카페에 앉아 Apple을 경영한 15년 6개월 동안을 회상하면서 그간 애플에서의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  체제의 Apple  이상 혁신을 기대할  없다는 구글 안드로이드에 대항하는 저가형 iPhone 필요하다는  그리고  쿡은 잡스의 마법을 다시 재현할  없을 것이고 따라서 Apple  이상 세계 최고의 기업이   없을 이라는 비판을 익히 알고 있었다.

Apple

쿡은 스스로 그런 비판은 떨쳐버리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저 스스로 그런대로 잘 넘긴다 여겼는데 이제는 정말 익숙해졌어요. 마치 트럭이 뒤로 달려올 때 노련하게 피하는 것처럼요. 아마 언젠가는 이걸 유용하게 쓸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영원히 남아 있는 바큇자국은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Apple Watch나 새로운 서비스 인 Apple Pay, 또는 작년에 30억 달러에 인수한 헤드폰 제조 및 음악 서비스 업체 Beats 인수가 재정적으로 성공했는지는 당분간 누구도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Apple의 행보는 1997년 길 아멜리오가 해고당한 이래 Apple이 처음으로 비창업자 CEO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움직임은 잡스가 맡긴 회사를 팀 쿡이 단순하게 경영만 하고 있다고 널리 알려진 편견에 반하여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사실 쿡 체제의 애플이 근본적으로 건전한지에 대한 논쟁은 이제 거의 없다. 잡스가 사망한 후 애플 주가는 주식 분할 때의 54달러에서 최근 126달러로 치솟았으며 시가 총액으로 환산하면 7천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시가 총액이 7천억 달러를 넘은 기업은 애플이 최초다. 실제로 애플의 시가 총액은 엑손 모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두 배 이상이며, 애플은 2010년 이래 현금 보유고를 3배 이상 늘려 1,500억 달러 이상 확보했다(애플은 주식 배당 및 환매로 총 926억 달러나 사용했으며 잡스가 주주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데 인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과이다). 

애플은 하이엔드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2014년에만 38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쿡은 제품 결함 문제(애플 지도가 떠오른다)가 발생하면 솔직하고 겸허하게 대응했다. 또한 인사 관련하여 실수도 이따금 있었지만 잡스와 오랫동안 함께한 경영팀에 몇몇 핵심 인사를 추가로 배치하며 경영팀을 훌륭하게 이끌었다.


특히 쿡은 대중의 비판을 감당할 뿐만 아니라 주요 문제에 집중되는 주목을 자신과 애플로 돌리며 세간의 이목을 끄는 애플의 리더로서 진가를 발휘했다. 그는 한때 유명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사생활이 외부에 거의 드러나지 않은 경영자였지만 지난 10월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이후 세계적인 롤모델이 되었다. 포천지 500대 기업 CEO 중 동성애자임을 밝힌 사람은 쿡 한 명뿐이다. 


또한 쿡은 세계적인 애플의 플랫폼을 연단으로 사용하여 인권, 교육권, 월스트리트의 여성 대표제, 이민 개혁, 사생활 보호와 같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심지어 미국 최남단 중심에 있는 자신이 태어난 앨라배마주의 수도를 언급하며 남부 지역의 인종 차별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1998년 컴팩 컴퓨터에서 애플로 이직한 팀쿡


쿡은 사회적인 문제에 관한 의견뿐 아니라 기타 여러 가지 방식이 잡스와 달랐다. 1998 컴팩 컴퓨터에서 애플로 이직한 쿡은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커리어 초기를 IBM에서 보냈다다시 말해 애플에서 쿡은 임원들이 말하는 제품 개발디자인마케팅과 같은 중요한 분야의 ‘핵심 전문가(subject-matter expert)’아니었다는 의미다그는 잡스처럼 사람을 다루는  능한 인물보다는 자기 선수를 전적으로 믿는 감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로 인해 고위 임원진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며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1989년 애플에 입사하여 인터넷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맡고 있는 에디 큐 수석 부사장은 “쿡은 스티브의 방식을 따라하는 법이 없어요. 항상 자신의 방식대로 하죠. 그리고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를 다할 수 있도록 믿고 맡깁니다. 그는 하이엔드 제품에 관한 지식이 많고 관심도 많아서 필요하면 직접 관여하기도 하죠. 반면 스티브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전부 관여했어요.”라고 말했다.


물론 공격적인 추진력 덕분에 승승장구한 인물로 널리 여겨지는 창업주 겸 경영자인 잡스의 방식을 따른 예는 아직 없다. 더군다나 3년간 꾸준히 성공을 거뒀다고 하여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는다. 저명한 와튼 경영대 교수이자, 리더십 및 변화관리 센터(Center for Leadership and Change Management) 학장인 마이클 유심(Michael Useem)은 “요즘은 최고 경영진에 대한 의문보다는 쿡이 애플의 기세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자주 듭니다.”라고 말했다.


팀쿡이 애플의 기세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쿡은 비판에 일일이 답하는 것보다는 신경 쓰지 않는 편이 낫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제가 선거에 출마하는 것도 아니니 표를 구걸할 필요도 없어요. 제가 하는 일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된 거죠. TV에서 나오는 사람이 중재자가 되거나 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보다 제가 중재자가 되는 게 훨씬 괜찮은 삶은 사는 방식인 것 같아요.”


쿡의 도전적이면서도 자신감 있는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가 CEO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쿡은 잡스가 만든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 애플의 기업 문화를 지키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물론 그도, 자신의 고유한 방식을 적용하면서 서서히 애플을 바꿔나가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으며 조금씩, 하지만 분명히 자신이 계획한 대로 애플을 재정의하고 있다. 잡스가 쿡의 정책을 승인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수수께끼처럼 알 수 없는 창업주였던 잡스는 죽기 전에 쿡에게 의사 결정을 할 때 잡스 자신의 방식을 의식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쿡이 애플을 이끄는 방향에 대해 잡스가 어떻게 생각했을지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Moments of Truth

31년간 하버드 대학교에서 기업사를 가르쳤던 리처드 테들로(Richard Tedlow)는 기술 업계 전문이었다. 그는 왓슨(Watson) 가문이 지배했던 격동의 IBM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으며, 변덕스러운 인텔의 CEO, 앤디 그로브(Andy Grove) 전기를 작성하기도 했었다. 현재 테들로는 잡스가 사망하기 전에 설립한 애플 내의 교육기관인 애플 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애플 대학은 일반적인 경영자 교육기관이 아니다. 테들로는 애플 대학을 1990년대 잡스가 만든 유명한 광고 캠페인의 어구를 빗대어 “Think Different 기업 대학”이라 부른다. 애플 대학은 직원들을 위해 애플의 독특한 방식을 문서화하고 애플 사람들의 생각을 돕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개방적 이도록, 비-애플스러운 관점도 고려하게 돕는 목표를 갖고 있다.

Angela Ahrendts, Jony Ive, Eddy Cue, Jeff Williams, Lisa JacksonCourtesy of Apple

테들로는 애플 대학을 ‘기술과 교양 간의 치료 동맹’이라 불렀다. 애플 대학의 수업 주제는 컴퓨터와 기기 사업이 아니라 애플의 관점을 강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Stanford 대학교의 정치철학교수 코언(Joshua Cohen)은 유명한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을 녹음하고 또 재녹음했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의 꼼꼼한 노력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었다. 잡스가 초기 맥 내부의 완벽한 나사에 집착한 유명한 일화는 애플 수강생의 생각과도 크게 거리가 멀지 않을 것이다.


최근 테들로가 가르쳤던 수업은 Moments of Truth라 불린다. 이 수업은 링컨 대통령의 재임 수락 연설의 유명한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with malice toward none)’ 부분을 논의하는 내용이었다. 테들로에 따르면 ‘징벌이 아닌 화해의 순간’을 논의하려 했었다고 한다. 67세의 학자인 그는 애플에 들어온 이후로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마가렛 대처의 포틀랜드 전투 결정과 존슨 & 존슨의 CEO인제임스 버크(James Burke)가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Tylenol bottle-tampering crisis)을 어떻게 다뤘는지도 수업했다.


우리의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테들로는 잡스 사망 시 쿡이 처했던 상황을 링컨이나 다른 이들의 진실의 순간과 비교했었다. 물론 잔혹한 내전으로 분단된 나라를 통일하는 것과 인기 있는 기기 제조사를 경영하는 것을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감정적인 비교는 그럴듯하다. 테들로는 “쿡이 모두의 기대라는 중압감을 안고 그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애플 본사 캠퍼스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쿡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당시로서는 어려운 메시지였고 테들로는 쿡의 이 말을 완전히 분단되고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나라를 안심시키려고 했던 링컨의 행동과 비교했다.


잡스 이후의 시대가 더 전도 유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쿡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기적으로는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의 혁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잡스 사망 직전, 제품 발표 때의 음성인식 기능인 시리는 뭔가 새로운 것을 진행 중이라는 신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리는 구글 안드로이드가 이미 제공하던 기능을 애플이 겨우 따라잡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었다. 더군다나 시리가 딱히 훌륭하지도 않으며 애플이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음에도 사용자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하여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1년 후, 애플은 모바일 맵이라는 또 다른 약한 제품의 수렁에 빠졌다. 애플은 구글 맵이 아닌 애플 맵을 아이폰 기본 지도로 놓았지만, 애플 맵에는 문제가 너무 많아서 사용자들을 잘못된 장소로 인도한다고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 애플 맵은 믿기 힘들 정도로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쿡은 공개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대단히 죄송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제품들보다도 구글 맵을 사용할 것을 권장했으며,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서 쿡은 모바일 소프트웨어 책임자이자 오랫동안 잡스 밑에서 일했던 스콧 포스탈(Scott Forstall)을 해임했다.


2013년 초, 쿡은 또 다른 임원 문제에 봉착했다. 외부에서 고용한 제일 높은 직위의 임원이자, 전임 영국전자제품 체인점인 Dixon's의 수장이기도 했던 존 브로웻(John Browett)이다. 저가 제품 소매점 수장을 애플의 고급 소매점 책임자로 영입한 일 자체가 흥미로운 뉴스였는데(Target 임원 출신이며 애플 스토어 출범 초기에 애플 스토어를 운영한 론 존슨(Ron Johnson)은 이때쯤 애플을 떠나 J.C.Penny CEO 직에 사인했다), 브로웻은 애플에 맞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의 일정 관리 변경은 직원들의 분노를 자초했었다. 쿡은 2013년 3월 그를 해고했다. (브로웻은 후에 한 연설에서 자신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애플 문화와 맞지 않아서 나가게 됐으며, 이는 충격이었다고 인정했었다. 다만 그는 자세한 코멘트는 거절했다.)


쿡은 이 일화를 되새기며 CEO가 되기 위한 교육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문화가 맞아야 한다는 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겨 주죠. 게다가 문화를 배우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수많은 일에 관여하는 나머지 개별 특별한 부분에 관심을 덜 가질 수 있어요. 즉, 더 짧은 주기에 더 적은 데이터 포인트를, 더 적은 지식과 사실을 가지고 운영해야 합니다. 엔지니어일 때는 아주 많은 것을 분석하기 원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데이터 포인트는 결국 사람들입니다. 거의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죠. 왜냐하면 여러분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더 밀어주고 싶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능력을 향상시켜야 주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그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쿡은 말했다.

Photograph by Joe Pugliese

신제품이 아직 논의할 만한 상황이 아닐 때 애플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일도 또 다른 난관이다. 예를 들어 2013년 중순, 한 기술 업계 컨퍼런스에서 쿡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투자자들은 쿡이 도대체 회사의 비전을 갖고 있는지 공개적으로 질문을 한 적도 있었다. 당시 애플 주가는 쿡이 처음 CEO가 되었을 때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동안 그 뒤에서 쿡은 세상이 그토록 원하는 신제품 작업을 위해 그의 팀을 아우르고 있었다. 2013년 하순, 그는 Burberry의 CEO, 앤젤라 아렌츠(Angela Ahrendts)를 애플 소매점 책임자로 영입했다. 그리고1년 후 애플은 대형 화면의 아이폰 6과 더 화면이 큰 아이폰 6 플러스, 새로운 지불 시스템인 애플 페이를 선보이고, 곧 출시할 애플 워치를 소개했다. 애플은 다른 무엇보다도 새 아이폰 덕분에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2014년 마지막 분기에만 7,450만 대를 팔았으며 애플은 180억 달러의 이윤을 올려 주가를 급상승시켰다.


이 성공으로 인해 쿡은 실수를 만회할 수 있었다. 2014년 하순, 애플의 차세대 화면을 만들기 위해 계약했던 유리 업체, GT Advanced Technologies는 애플이 자사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파산을 선언했으며, 애플 계약 때문에 했던 투자로 부도가 났다면서 애플을 제소했었다. 애플은 GTAT의 부도로 오히려 타격을 받았다고 맞섰다. 양측은 결국 합의했고 애플은 애리조나에 있는 제조 단지에 태양광 발전소와 데이터 센터를 짓기로 약속했다. 


이로써 애플은 또한 상당한 규모의 대손상각(write-off)을 단행했는데(규모는 밝힐 수 없음) 수십억 달러를 제조 공정에 투자하는 회사인 애플로서는 상당히 뼈아픈 실수였다. 원래 쿡이 맡았던 운영부 수석 부사장인 제프 윌리엄스(Jeff Williams)는 소송건으로 쿡이 자기에게 세 가지를 얘기해줬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팀에게 보고했을 때 그의 답변은, '첫째로 우리가 이 건으로 뭘 배울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둘째로 우리가 대성공을 거두지는 않을 것이며, 셋째로 우리는 고객들을 위해 훌륭한 기술에 계속 투자해 나갈 것이다.’였습니다.”


애플은 항상 하나의 사업뿐이었습니다.


애플 경영에 대한 쿡의 정서적인 접근은 전임자의 접근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핵심 제품과 장기적인 방향에 대한 초점은 정확히 같다. 이런 맥락에서 애플 페이나 애플 워치가 거대한 이윤을 낳는 효자 상품이 되리라는 전망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1980년대 애플 임원이었으며 현재 독자층이 매우 많은 주간 칼럼인 The Monday Note로 유명한 장-루이 가세(Jean-Louis Gassee)는 애플에 대해 간단한 관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은 항상 하나의 사업뿐이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죠. 이제는 소형, 중형, 대형 세 가지 크기로 만듭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그리고 노트북과 데스크톱이죠. 다른 모든 제품은 애플 워치와 아이폰의 예로 보듯 주력 제품들의 마진을 끌어올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봅니다.” 가세가 볼 때 쿡 체제의 애플은 15년 전, 잡스의 디지털-허브 전략을 방불케 한다. 당시 아이튠즈와 같은 제품이 아이팟의 판매를 끌어올렸으며, 궁극적으로는 맥도 같이 성장시켰었다. “쿡은 자신의 방식으로 오랜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쿡은 투자자들이 애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의 논쟁에도 끼어들었었다. “우리가 찾는 투자자는 장기투자자입니다. 바로 우리가 장기적인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죠. 만약 단기 투자자라면 마음대로 주식을 매입하고 거래할 권리가 있습니다. 모두 여러분의 결정이죠. 하지만 그런 방식은 우리의 운영 방식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Putting His Life in View

초기에 팀 쿡은 애플 신제품 발표 등의 여러 행사에서 뻣뻣한 모습을 보였다. 성공과는 상관없이 팀 쿡은 기조연설의 거장인 잡스와 비교를 당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역시 자기 역할에 확실히 적응했다. 팀쿡은 얼굴에 자연스러운 웃음을 띠며 Apple Watch 발표 행사를 진행했다. 장거리 달리기용으로 Apple Watch를 사용하는 패션모델 겸 산모 건강 전도사인 크리스티 털링튼 번스(Christy Turlington Burns)를안았을 때도 자연스러운 모습뿐이었다.


쿡은 심지어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제품 소개 다음 날, 그는 쿠퍼티노에서 연례 주주회의를 주관했었다. CEO들이 즐기기보다는 견뎌내야 하는 회의였는데, 쿡은 주주들과 친밀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질문에 소탈하게 답변하고 대답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여유롭게 회피했다. 애플스러운 자동차 업체이자 널리 사랑받는 Tesla Motors를 애플이 과연 인수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두 번이나 피한 그는 미끼를 물지 않았다고 장난스레 자신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는 “CEO가 좋은 점도 있네요”라고 말하며 웃어넘겼다.


CEO이기 때문에 이런 원치 않은 질문에 진땀을 빼야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CEO인 덕분에 애플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문제에도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난 10월, 팀 쿡은 그의 고향인 앨라배마에서 열리는 Alabama Academy of Honor에 초대되었다. University of Alabama의 미식축구 코치인 닉 세이번(Nick Saban)과 제프 세션스(Jeff Sessions) 상원 의원도 참석했었지만 앨라배마 주에서는 팀 쿡을연설자로 골랐다. 하지만 몇몇은 그 선택을 후회했다. 쿡이 진부한 말 대신, 인종 평등과 교육의 기회,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평등 추진이 느리다는 이유로 앨라배마를 맹공격했기 때문이다. 쿡은 “이건 옳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치를 반영하지 않습니다.”라 말했다.


지역 방송국에서는 쿡과 공화당 출신 주지사인 로버트 벤틀리(Robert Bentley)와의 어색한 장면을 잡아냈었다. 그 장면에서 벤틀리 주지사는 쿡의 발언을 대놓고 불쾌해했다. 본지의 소유주인 타임의 전-CEO이자 팀과 같은 Auburn 대학교 출신인 돈 로건(Don Logan)도 당시 주의사당에 참석했었다. 그는 최근 앨라배마주에서 동성혼을 허용하지 않는 법안이 통과된 사실을 지적했다. “팀은 대단히 용기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풍파를 일으킬 것은 물론, 장내에 있던 대부분이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쿡은 Bloomberg Businessweek 지에 칼럼을 기고하여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쿡이나 애플로부터 별다른 언급은 없었으며, 그의 고백은 큰 화제를 일으켰으나 대부분이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돌이켜 보면 그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 자살까지 시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성적 성향만 가지고 직원들을 해고하도록 허용하는 많은 지역이 있기 때문에 행동에 나섰다고 한다. 또한 미국 법원이 이 문제에 대해 대단히 빠르게 움직이기도 했다. “저는 사업이 임원실에서만 주도해서 이뤄지지는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정치에 입문할 생각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표도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올바른 일을 하며 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올바름의 기준으로 여겨진다면 그게 좋은 삶이 아닐까요."라고 팀 쿡은 비판을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쿡은 자신이 ‘꽤 오래전’에 커밍아웃을 하기로 결심했으며, 애플 내부에 그 사실을 공개했었다고 한다. 그의 성적 성향은 사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어 새삼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쿡에게도 큰일이다. 팀 쿡은 극도로 사생활을 지키며,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등, 일반적인 CEO와 다르기 때문이다. “솔직히 제 발언으로 다른 사람들이 도움이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발언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 삶을 공개하는 건 즐겁지가 않죠. 많이 주어진 자에게는 많은 책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많이 받은 사람인 거죠.”


쿡은 덕분에 스티브 잡스의 회사를 운영하는 인물이라는 사실 이상으로 유명해졌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계적인 로펌인 Pillsbury Winthrop Shaw Pittman에서 스타트업 회사들을 대상으로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마이크 설리반(Mike Sullivan)도 자신의 성적 성향을 자긍심으로 여기며, 성적 성향이 자신의 업무와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포천 500사에 500명의 CEO가 있는데 그중에 게이가 분명히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팀이 보낸 메시지는 ‘내 자신을 밝혀도 괜찮고, 스스로 내세울 필요도 없지만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는 뜻입니다.”


쿡이 너무나 유명해진 까닭에 그가 유명하지 않았던 시절은 이제 기억도 안 날 지경이다. 쿡은 3월 초 유럽으로 떠난 후 베를린에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를 만나고 브뤼셀에서는 전-에스토니아 총리이자 현재 유럽위원회(EC)에서 디지털 문제를 다루는 최고 책임자인 안드루스 안시프(Andrus Ansip)를 만났었다. 


또한 쿡은 전직 포천지 저널리스트인 브렌트 슐렌더(Brent Schlender)와 릭 테첼리(Rick Tetzeli)가 쓴 새 책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들은 쿡이 잡스에게 자신의 간 이식을 제안했었다고 보도했다(잡스는 쿡의 제안을 거절했다). 심지어 3월에 쿡은 CNBC의 금융 프로그램 사회자인 짐 크레이머(Jim Cramer)에게 프로그램 10주년 기념을 축하하기 위해 생방송 중 전화를 걸었다. 크레이머는 놀라워하면서도 기뻐했었다.


CEO는 회사를 대표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쿡은 AIDS 전염 방지와 인권, 이민법 개혁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런 문제를 리더십의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다.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연못의 조약돌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이전에는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애플에서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 항상 염려해 왔다고 덧붙였다. 쿡에게 있어서 애플의 목표는 돈 벌기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현재 10살인 조카의 대학 학비까지만 지원한 다음 모두 기부할 계획이다. 자선 프로젝트를 지원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금액일 것이다. 쿡의 순자산은 그가 보유한 애플 주식으로 계산했을 때 현재 1억 2천만 달러이며, 권한을 완전히 받을 경우 행사할 수 있는 6억 6,500만 달러 정도의 제한부 주식이 있다. 쿡은 이미 조용히 기부를 시작했지만, 단순히 돈을 건네주기보다 시간을 들여 구조적인 자선 책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팀쿡은 이미 조용히 기부를 시작했다.


개방적이었던 반신반인 잡스가 이끌었던 때보다 폐쇄적인 쿡이 이끄는 지금의 애플이 훨씬 개방적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잡스는 직원들이 언론과 접촉하지 않도록 막았었지만쿡은 언론 미디어에 개방적이었다가령 잡스였다면 최근 뉴요커에서 작성한 16,000 단어 길이의 조니 아이브 특집 기사를 거부했을 것이다. 쿡은 이러한 노출도 계획의 일부라 말한다. “ 목표는 우리 경영팀과 다른 직원들을 대중에 노출시키는 겁니다이는 결국에 애플에게도 이득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개방 정책에는  가지 목적이 있다사람들이 애플에 대해 계속 얘기하도록 하는 것이 첫번째 목적이다임원들이 건강한 자아를 가질  있도록 풀어두는 것이  번째 목적이다애플 임원이었던 가세(Gassée) “진정한 코치는 스타플레이어의 언론 노출을 오히려 기뻐하죠 쿡은 자기 팀의 스타플레이어들을 돌볼  아는 진정한 코치입니다성적이 좋은 계속 그런 정책을 유지하겠죠.”라고 말했다.




Building for the Future

 쿡은 글자 그대로 엄청난 흙더미 위에  있다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2016 말에 완공될 애플의 신사옥이 들어설 쿠퍼티노의 건설 현장에 그가 들어왔다거대한 구덩이에서 캐낸 흙이 눈높이까지 쌓여 있었다여기에 4 높이의 반지 모양의 빌딩이 세워질 예정이다빌딩은 도너츠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우주선과 많이 비교되었다트럭과 일꾼들이 분주히 오가는 공사장을 내려다보며 쿡은 자신이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업무 장소라는 주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사무용 고층 빌딩들이 얼마나 칙칙한지 놀라울 따름이며애플의 신사옥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업무 장소는 창조력을 기를  있는 장소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그는 미래에 대학을  졸업한 신입 사원들이 이곳을 처음 방문할  어떤 감정을 느낄지를 생각했다기존의 쿠퍼티노 캠퍼스와 San Jose 시내, Levi's 스타디움이 눈에 보이는 위치인데샌프란시스코 49ers 경기를 진행하는 Levi's 스타디움은 우연히도 우주선 모양의 빌딩 중앙부에 위치한 30에이커 크기의 공원에  들어맞는다.


Apple Campus 2

2015년 3월 3일에 촬영된 애플의 신사옥 건설 현장. 쿡은 이 하이테크 빌딩을 “모든 제품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스티브 잡스는 최근 2년 동안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를 고용하여 신사옥을 디자인하는 등, 새 건물에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 건설 현장의 모든 것은 규모이며, 수치에 밝은 쿡은 주요 수치를 모두 암기하고 있었다. 메인 빌딩 자체는 280만 평방피트이며 1만 3천 명의 직원을 수용할 수 있다. 인접한 빌딩에는 2천 명 이상의 직원을 수용할 수 있으며 여기에 10만 평방 피트의 운동 센터와 1만 5천 명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구내식당이 들어선다. 그리고 Santa Clara Valley에서 자란 8천 그루 이상의 나무를 사용한다.


쿡은 건설 현장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며(애플 임원일 때에도 이미 두 번 방문했었다) 곳곳에 있는 22대의 크레인을 엔지니어의 시선으로 기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현재 내부에서 부르는 것처럼 신사옥을 ‘애플 캠퍼스 2’로 부를지는 애플에서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잡스의 가족이 바라는 결정에 따라 빌딩의 여러 부분이나 해당 부지 전체는 분명히 잡스에 대한 헌사를 표하기 위해 이름을 지을 것이라고 쿡은말했다.


모든 제품의 어머니


90분 동안 현장을 둘러보면서 그는 캠퍼스의 디테일에 대해 설명했고, 이곳이 ‘모든 제품의 어머니’라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애플은 주차장 관리와 같은 일상적인 작업에도 최신 기술을 투자하고 있다. 센서와 앱으로 이뤄진 시스템이 교통순경의 역할을 하여 시설에 들어오는 직원들이 손쉽게 주차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해서 기름 낭비를 줄인다는 발상이다. 애플은 직영매장 건설에 사용했던 방식대로 실물 크기의 모형을 만들어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 알아본 다음 모형을 해체했다.


4층 높이인 기존 캠퍼스보다 높게 짓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 쿡은 “5층으로 높여서 모형을 만들었을 때는 모양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하 시설에 특별히 흥미를 가졌다. 캠퍼스 남동쪽 구석에 생길 천 명 규모의 강당은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를 제외한 모든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곳이다. 쿡은 기쁜 듯이 말했다. “수개월 전에 미리 일정을 잡아 놓을 필요가 없게 되는 겁니다.”


새 캠퍼스를 얘기할 때, 쿡은 한 단어에 대해 크게 거부감을 나타냈다. “저는 '본부'라는 단어가 싫습니다. 일을 하는 곳이지 명령을 내리는 곳이 아니니까요.” 실제로 어느 그룹이 신사옥에 들어갈지, 누가 기존 사옥에 남을지 애플 직원들은 계속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세 번 정도 고민했습니다. 아마 세 번 더 고민하겠죠.”


1 Infinite Loop에 있는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애플 워치가 트라이앵글처럼 딩! 소리를 냈다. 쿡은 기본형 스포츠 버전의 애플 워치에 하얀색 플라스틱 밴드를 차고 있었다. 거의 2시간 만에 처음 들어온 알림이었다. 쿡은 비서가 애플의 이사인 알 고어(Al Gore)가 회의를 요청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알려주었다.


알림이 와도 쿡은 아이폰을 주머니에서 꺼낼 필요가 없었다. 애플이 생각하는 애플 워치의 채택률을 높일 주요 기능 중 하나이다. 덕분에 쿡은 미키마우스 시계 페이스를 포함한 애플 워치의 몇 가지 기능을 보여줄 기회가 생겼다. 미키 마우스는 1초마다 발을 한 번씩 구르며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스스로가 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한 쿡은 자랑스럽게 애플 워치가 측정한 자신의 운동량을 보여줬다. 


지금까지 50분 동안 운동을 하고, 약 4마일 정도인 8,139보를 걸었다. 일찍 일어난 덕분에 아직 오후 3:30 즈음되었는데 벌써 12시간 동안이나 일어난 상태였다. 그의 업무 시간은, 그리고 그가 애플을 이끌 시간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Apple's Tim Cook leads different
This story is from the April 1, 2015 issue of Fortune. It originally stated that the Siri product launch occurred days after Steve Jobs died. The event was the day before his death.
원문 : http://fortune.com/2015/03/26/tim-cook/

번역 : 위민복

구성 : 김영권

KMUG 애플에 대한 모든 것. 케이머그

知識記錄 김영권

https://kmu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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