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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머그 Apr 15. 2016

1세대 아이폰 개발 비화, 철통 보안 애플의 내부.

Top Security Apple

아래 기사는 애플이 아이폰을 개발하는 과정에 대한 애플의 전. 현직 직원들의 인터뷰 기사를 토대로 한 해외 번역 기사입니다. 어느 기업보다도 철저한 보안을 신경 쓰는 애플이라는 기업에 대해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Des anecdotes sur la conception de l'iPhone

애플의 전직 직원이 몇 가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로서 애플은 원래 태블릿부터 개발을 시작했고, 나중에 휴대폰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었다고 한다. 

이후 2007년 아이폰이 먼저 출시되고 2010년 아이패드가 발표되었다. 처음 아이폰 프로토타입을 디자인한 곳에서는 아이팟 미니에 터치 다이얼 휠을 붙여서 테스트하기도 했는데, 2007년 당시 아이폰을 선 보이기 직전 키노트에서 스티브 잡스가 농담으로 공개한 이미지로 유추할 수 있다.


Ars Technica : iPhone Prototype 5"x7" Touch Screen
한쪽 구석에 전화용 인터페이스?


애플에서 전직 iOS 엔지니어링 부장을 맡았던 가나트라(Nitin Ganatra)(현재는 Jawbone CEO이다)는 초기 아이폰 프로토타입을 이렇게 말했다. "휴대폰 같지가 않았어요. 큰 태블릿 크기의 기기에 맥에서 사용할 법한 두꺼운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었고, 디스플레이 한쪽 구석에 전화용 인터페이스가 있었죠."


산업디자인 팀 책임자였던 더그 샛츠거(Doug Satzger)에 따르면 2003년, 터치형 휴대폰 작업을 시작하기 전, 애플은 태블릿 안에 PC를 통합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회의 때 그들은 페이지 넘기기를 흉내 낸다거나, 이미지 안에서 줌 기능을 하는 등 멀티터치의 사용 가능성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프로토타입은 15일 후에 제작되어 나왔는데, 동료인 던컨 커(Duncan Kerr)는 탁자 위에 놓인 화면에 멀티터치 레이어를 붙이고 이것을 타워형 컴퓨터에 붙였다. 즉 컴퓨터에 붙은 아이패드였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 당시 애플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구체화시키기는 어려웠다.

애플 특허 출원 문서에 나온 전화 기능


애플의 엔지니어였던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의 말이다. "아이패드였지만 그때는 아이패드가 아니었죠. 매우 멋졌습니다만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당 기술을 아이폰으로 옮겼어요."


진정한 아이폰 개발은 2005년부터 시작되었고 소규모의 팀으로 움직였는데, 그 당시 터치 화면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아이팟을 처음 개발했던 토니 퍼델(Tony Fadell)이 이끄는 팀은 아이팟 미니를 전화기로 만들어 시연했다고 하며, 그 후 애플은 멀티터치에 특화한 FingerWorks를 인수했고, 아마도 스콧 포스탈(Scott Forstall)이 이끄는 두 번째 팀(P2)에서 이 멀티터치를 연구해서 휴대폰을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토니 퍼델(Tony Fadell) 좌 - 스콧 포스탈(Scott Forstall) 우


애플은 비밀 유지에 많은 신경을 쓰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제품 개발시 그룹별로 여러 가지 다른 등급을 부여하고 직원들 스스로도 함구하도록 한다. 여러 아이폰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아이폰을 스티브 잡스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 실제 아이폰의 모습을 알지 못했다. 하드웨어 디자인을 담당한 조나단 아이브의 작업 공간에는 여러 종류의 아이폰 본체를, 소프트웨어를 담당했던 스콧 포스탈의 팀에는 많은 종류의 시뮬레이터를 사용해 작업이 이루어졌다.

초기 아이폰 시뮬레이터 PowerMac G3, 1999년 제품

전직 애플 직원 가나트라는 "실제 작동하는 아이폰 하드웨어가 나오려면 오랜 기간이 걸리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은 파워맥 G5에서 돌아가는 아이폰 시뮬레이터를 개발해 맥오에스에서 많은 소프트웨어 테스트를 했습니다."

"그 후 제일 낮은 사양의 맥을 갖고 테스트를 했는데, 왜냐하면 그 당시 파워맥 G5는 고성능 컴퓨터급이었거든요. 개발하다 보면 당연히 성능 문제가 불거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Freescale MX-31로 추청되는 기기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개발 중인 아이폰과 비슷한 환경을 갖추기 위해, 엔지니어들은 오에스텐을 돌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종인 파워맥 G3 블루를 선택했다고 한다. 나중에 개발팀은 아이폰용 개발킷을 받기는 했으나, 그 또한 실제 아이폰과 같은 작은 프로토타입이 아닌 하드웨어 개발킷 Freescale MX-31로서 큰 크기의 보드에 모뎀과 안테나 액정화면이 붙어 있었다.


iPhone Prototype


2009년 이베이에 나온 아이폰 프로토타입의 첫 번째 OS 베타 버전

이 단계에서 아이폰에 대해 포스탈 팀과 아이브 팀은 극도로 분리가 이뤄졌는데, 그 당시 아이폰 프로젝트의 관리자였던 앤디 그리뇬(Andy Grignon)의 말이다. "결국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두 개가 됐습니다. 인터페이스 하나는 스티브 잡스가 직접 임명하여 제작된 인터페이스였고, 다른 하나는 오직 테스트용으로만 제작된 인터페이스였죠. 문자 보내기와 통화는 가능했지만 빨갛고 파란 보기 흉한 인터페이스였습니다"


개발자 인터페이스

개발이 진행되면서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와이프에게도 말하지 못하도록 서명한 비밀엄수 서약서를 들고 포스탈과 스티브 잡스가 서명을 해야 만 진짜 인터페이스에 접근할 수가 있었다. 가나트라에 따르면 이런 과정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해가 안 가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서명을 하여도 진짜 인터페이스에 접근이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분리되어 개발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불만 사항이 생겨 났다고 한다.


조니 아이브의 아이폰 시제품

하드웨어를 담당했던 조니 아이브의 개발팀은 아이폰 실제 소프트웨어 없이 상상으로 가늠해 보기 위해 별도로 스크린샷을 붙여 외형을 디자인했었다고 한다. 이 시제품은 2006년에 제작된 것으로 삼성과 특허 소송 재판 때 증거 자료로 나왔던 모델이다.


한 담당자는 2개의 공간을 이동하며 업무 했는데 정확한 인터페이스가 준비된 공간과, 다른 한쪽 방에서는 칠판에 인터페이스 모양을 그려 놓고 설명해 줘야 했다. 그러던 중 스콧 포스탈이 스티브 잡스에게 가서 보고하는데 "담당 엔지니어들이 실제로 진짜 인터페이스를 본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스티브 잡스가 하나의 제품 개발에 철저한 보안과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제작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iPhone 드림팀

2007년 iPhone 출시 당시 스티브 잡스와 그의 주역 임원들입니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에 아이폰은 없었을 것입니다.


왼쪽부터 소개
Philip W. Schiller (필 쉴러): 애플 마케팅
Tony Fadell (토니 퍼델): iPod 담당
Jonathan Ive (조니 아이브): 디자인
Steve Jobs (스티브 잡스): 애플 CEO
Scott Forstall (스캇 포스탈): iPhone 소프트웨어
Eddy Cue (에디 큐): 인터넷 서비스


번역 : 위민복

구성 : 김영권

애플에 대한 모든 것. 케이머그

https://kmu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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