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femmes qui ont faconne Apple.
아래에 글은 애플이란 기업과 함께했던 다수의 여성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 해외 번역 기사입니다.
애플! 남자들의 역사일까?
애플 역사가 가리키는 주요 인물들을 생각해 보면 당연히 스티브 잡스나 스티브 워즈니악, 미하엘 슈핀들러, 조너선 아이브와 같은 남자들 이름만 떠오르게 마련이다.
하이테크 기업의 절대 다수가 남자들 기업이듯, 애플도 예외는 아니다. 기업 전 직원 중 여성이 30% 정도 밖에 안 되며(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과 비슷하다), 기술이 아닌 부문으로 한정할 경우 35%, 관리자급으로 할 경우 28%, 기술직으로 할 경우에는 20%로 급감한다.(참조: 애플). 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여자들이 꽤 있으며 개발과 디자인, 마케팅, 경영, 소매점 등 전 분야에 인물들이 있었다...
매킨토시 개발자 마스코트(독카우, 이 독특한 이름은 1986-2000년 사이 개발지 커뮤니티 내에서의 농담거리였다)를 만드는데 만족하지 못 했던 수잔 캐어는 뭣보다 1983년, 첫 번째 매킨토시의 시각적인 그래픽 정체성을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이콘부터 서체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디자인을 했었고 나중에는 넥스트의 모험에도 동참했었다.
맥과 윈도의 어머니!
오늘날의 오에스텐에서 그녀의 비전은 사라졌다. 오에스텐이 3D 아이콘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그녀의 업적은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녀는 마이크로소프트와도 작업을 하여... 윈도 3.0에 들어갈 아이콘, 나중에는 윈도 XP에 들어가는 제어판을 디자인했다. 이 시기 이후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디자인을 강의했다.
조앤나 호프먼은 매킨토시를 만드는 팀에 처음부터 들어와 있었다. 직원 번호 5번인 그녀는 최초의 여자 직원이기도 했었는데, 그녀의 발탁은 우연히 이뤄졌었다. 제프 라스킨(Jef Raskin,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처음에 이끌었었다)이 이끄는 제록스 PARC의 한 컨퍼런스에 참여했던 그녀는 컴퓨터 질문에 대해 라스킨과 함께 컴퓨터가 어떻게 생겨야 하는가, 컴퓨터가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를 놓고 즐거운 대화를 나눴었다.
조앤나 호프먼의 아이디어가 워낙에 인상적이어서 라스킨은 그녀에게 애플에 들어오라 제안했었고, 그녀의 강한 성격은 매킨토시의 탄생에 특히 유용했었다. 뭣보다 스티브 잡스가 라스킨을 쫓아내고 팀을 맡기로 한순간, 잡스의 아이디어에 그대로 맞서고 자기 아이디어를 관철 시켰던 극히 드문 인물 중 하나가 그녀였다.
스티브 잡스에게 맞섰던 여인
매킨토시 팀은 잡스와 싸워서 이긴 사람들에게 상을 주는, 풍자의 의미가 짙은 비밀 수상식을 개최했었고, 1981년과 1982년 연속으로 호프먼이 우승을 차지했었다. 나중에 이런 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스티브 잡스는 그저 웃어넘겼었다.
그 후 조앤나 호프먼은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맥 마케팅을 맡았고, 후에는 넥스트에도 들어갔었다. 그녀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1995년, 신기술의 세상에서 은퇴했다. 호프먼은 매킨토시 휴먼인터페이스의 첫 판을 작성하기도 했었으며, 올가을에 나올 스티브 잡스 전기 영화에서 케이트 윈즐렛(Kate Winslet)이 그녀의 역할을 맡는다.
IBM에서 29년을 보낸 후, 1996년 애플에 기술수석책임자(CTO)로 들어온 그녀는 애플에서 좋은 기억을 남기지는 못 했었다. 행콕의 임무는 유용한 운영체제 전략을 세우기였으며, 계속 연기되는 나머지 윈도에 비해 난관에 빠져 있다는 인상을 남긴 시스템 8, "코플랜드(Copland)" 프로젝트를 취소한 다음, 그녀는 윈도 NT와 선 솔라리스의 커널에 관심을 가졌었다.
당시 애플 팬들은 장-루이 가세(Jean-Louis Gassee)의 BeOS에 주목하고 있었지만, 행콕은 분명 솔라리스에 운을 걸었었다. BeOS는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으로서 당시 애플 시스템 7이 할 수 없었던 영상 여러 개를 한꺼번에 돌리는 멀티태스킹 능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후보는 행콕이 절대로 선호하지 않았던 넥스트스텝이었다. 그녀를 여러 가지로 비판할 수는 있었지만, 그녀는 실용적이었으며, 엔지니어 중 한 명을 통해, 넥스트가 애플에게 운영체제 시연을 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었고 그녀는 시연을 허용했다. 나머지 역사는 잘 알려져 있다...
엘런 행콕과 스티브 잡스는 결코 죽이 맞지 않았다. 잡스는 행콕을 때때로 "멍청이"라 불렀었고, 넥스트 인수 이후에도 행콕은 애플 내부적으로 솔라리 커널 사용을 위해 운동을 벌일 정도였다.
길 아멜리오가 떠난 직후, 엘런 행콕도 애플을 떠났다. 2006년, 그녀는 하이테크 기술 업계의 합병과 인수에 특화된 회사, Acquicor Technology를 다른 스티브(역주: 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창업했다.
애플과 산업계를 만든 위대한 이름들의 그림자 안에서 조디 아카나는 애플과 늘상 처음 만나는 이름이다. 2000년 말부터 그녀가 애플 제품 포장 책임자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의 여러 제품들에 대해 대단히 세련됐으면서도 모습과 향기,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주는 장본인이 그녀이다.
그로 인해 이런 재미있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너선 아이브와 함께 긴밀히 협력하는 그녀는 애플에서 일하는 방식을 크게 바꾼 장본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녀는 특히 모든 디테일을 팀이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개방형 공간을 내세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특히 초박형 아이맥 포장과 아이포드 터치의 유명한 가죽끈, 아이패드 스마트 케이스와 같은 중요한 특허를 서명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iOS에 포함되는 이어폰을 다시 작업하기도 했었다.
캐롤라인 로즈는 매킨토시를 처음 선보이던 80년대의 애플과 성숙했지만 자기 자신을 변화 시켜야 했던 90년대의 애플 등 여러 시대에 걸쳐 애플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다. 그 사이 기간에는 그녀 역시 넥스트의 모험에 합류하기도 했었다.
이 모든 경력에서 공통점은 하나, 글쓰기다. 당시 개발자 커뮤니티는 매킨토시의 기술적인 측면 모두를 아우른 그녀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녀는 Inside Macintosh의 첫 세 볼륨의 대부분을 작성했었고, 당시 이 책은 진정한 성서로서 매킨토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아키텍처와 API가 어떤지를 모두 알려주고 있었다...
애플이 개발자 커뮤니티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면 그 공은 다 이 Inside Macintosh에게 돌아가야 했다. 물론 Inside Macintosh도 시대의 흐름에 맞서지는 못 했다. CD-ROM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인터넷이 나왔기 때문이다...
캐롤라인 로즈는 2000년대 초부터 자기 사업을 하고 있다.
애플과 저널리스트의 역사는 길다. 애플에게 질문하기란 대개의 경우 바다에 병 던지기나 매한가지이다. 특히 질문이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질문 자체가 내용이 있다면 더 그렇다. 하지만 저널리스트를 필요로 할 때의 애플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케이티 코튼은 수많은 기간 동안 냉탕과 온탕을 모두 제공했던 인물이다. 애플 뉴스에 대한 소문을 만들어내서 수 억 달러어치의 광고 예산을 절약해 준 장본인이 그녀이기 때문이다. 국제 홍보부 부사장이자 스티브 잡스와 18년을 함께 일했던 그녀는 상호 합의에 따라 자기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2014년 애플을 떠났었다.
그녀의 사임은 저널리스트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 그녀는 Re/Code가 지적하듯 "악의 여왕" 이라든가 "주술사", "차갑게, 그리고 멀게", "여왕벌" 등 악평도 많이 받았었다. 분명 "노 코멘트" 혹은 전혀 이유 없이 "작은 기업들을 애플이 인수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와 같은 그녀의 유명한 반응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사임 발표에 대해, 그녀를 비판하든 비난하든 그녀가 훌륭하게 일했다는 점만은 모두가 동의했다. 그녀는 뭣보다도 애플의 이익을 중시했으며 상당히 강하게 다뤘었다. 그녀와 스티브 잡스는 서로 잘 통했었지만, 분명 좀 온건한 팀 쿡과는 궁합이 별로 안 맞았을 것이다.
애플에 들어온지 27년 되는 킴 보랏은 오에스텐 사용 대부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여자이다. 애플의 여러 운영체제의 업데이트를 관장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프로그램 관리"부 부사장인 보랏은 iOS와 오에스텐 관리를 맡아 왔으며,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업데이트도 하나부터 열까지 관리하고 있다. 그녀는 또한 너무나 치밀하고 세세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녀와 드니스 영 스미스, 그리고 앤젤라 아렌츠는 애플 공식 사이트에 있는 3명의 여자 임원이다. 잭슨은 팀 쿡이 중요시 여기는 환경 책임자이며, 팀 쿡에게 직접 보고하는 임원으로서 애플에 제일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 중 하나이다.
잭슨은 애플 제품 및 운영, 제품 공장이 환경과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관리하고 있으며, 100% 재생 가능 에너지로 운영하는 데이터 센터 건립의 책임도 그녀가 맡고 있다.
애플에 들어오기 전에 그녀는 미국 환경보호국(U.S.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을 이끌었으며 그곳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맡고 있었다. 비록 재빠르게 애플을 또 비판하기는 했지만 그린피스는 그녀의 임용을 축하했었다. 최근 그녀는 애플 제품의 "손쉬운 사용"의 책임을 맡기도 했다.
리사 잭슨과 마찬가지로 드니스 영 스미스 또한 팀 쿡에게 직접 보고하는 임원이다. 1997년부터 인력 관리 부문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 왔던 그녀는 현재 전 세계 인력 관리부 부사장을 맡고 있다.
애플 스토어 직원들을 공식적으로 맡기 전에도 그녀는 스토어의 직원 관리를 맡아 왔었으며, 전 세계 애플 스토어 직원 관리와 관련돼 있다면 그 또한 그녀가 맡은 일이다.
카리스마가 있는 앤젤라 아렌츠는 애플 워치의 발표 때 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었다. 2014년 5월 애플에 들어온 그녀는 애플스토어 부사장을 맡으면서 온라인 판매도 맡았다. 따라서 처음으로 모든 애플 스토어가 한 명의 책임자를 맞이하게 된 것인데, 그녀는 저지방 소다와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로 알려져 있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영국의 기성복 업체인 버버리의 CEO였던 그녀는 지금까지 컴퓨터와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알려진 회사가 디자인한 시계를 판매해야 한다는 새로운 도전을 맞이했다. 여러 애플스토어에서 애플워치를 대중에게 어떻게 선보일지, 애플스토어 직원들이 애플워치를 어떻게 팔지까지 그녀가 답할 것이다.
컴퓨터와 가전제품 업체로서 애플이 새 시장을 공격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다시금 탈바꿈할까? 애플이 새로운 전환에 성공한다면, 그 공은 아무래도 앤젤라 아렌츠에게 있을 것이다.
이 기사에 나온 인물 말고도 물론 여러 인물이 있다. 낸시 하이넨(Nancy Heinen)이나, 하이디 로이즌(Heidi Roizen), 리타 레인(Rita Lane), 제니퍼 베일리(Jennifer Bailey), 이자벨 마에(Isabel Ge Mahe, 무선기술 책임자), 벳시 라파엘(Betsy Rafael), 그리고 최초의 아이폰과 아이포드 나노, 모블미의 디자이너이자 파이널컷프로 스튜디오, 로직 스튜디오 소프트웨어를 맡기도 했던 새라 브로디(Sarah Brody)도 빠뜨릴 수 없겠다...
요컨대 애플을 세계 최고의 하이테크 기업으로 만든 여러 익명의 직원들도 있다는 얘기다.
원문 : MACG
번역 : 위민복
글.구성 : 케이머그
KMUG 애플에 대한 모든 것. 케이머그
知識記錄 김영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