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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Feb 02. 2023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많이 좋아질 것이다. 인생이 더 나아질 것이다. 그럴 수 있을 거다.




 눈물이 난다. 10년 동안 참 많이도 울었다. 눈물만 모아도 몇 리터는 나올 거다. 그만 울고 싶다. 그래도 요즘 정말 많이 좋아졌다.

사는 게 무섭고 자신 없었는데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인생이 어쩜 이리도 알 수 없을까. 인생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남은 것도 남긴 것도 없다. 글이라도 남기는 게 맞다고 본다. 뭐라도 되겠지. 다시 예전처럼 웃을 수 있을까. 이래서 글 쓰는 게 무섭다. 생각이 나를 파고든다. 글을 써도 행복한 날이 오겠지. 생각이 많아도 기분 좋은 말들이 나올 때가 오겠지. 혼자 있는 곳은 이제 외롭지도 않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근데 이제는 괜찮다. 혼자가 좋다. 사람을 못 만난 지 오래되었다.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늘 싸우고 있다. 격정적인 시간들이다. 고통 속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제 조금씩 아주 천천히 시계 침이 흐르는 것 같다. 소리가 들린다.

 내가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답이 없다. 혼자의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 속에 혼자서 문제가 만들어지고 답을 찾는 일은 지쳤다. 슬프고 아프다. 억울하고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까 싶었다. 평범히 행복하고 평범히 불행하기를 바란다.

 어릴 때는 절대 평범히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빠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이라 했다. 맞다. 정말 평범하게 사는 게 참 어렵다. 내 인생에는 총량이 있다. 웃은 만큼 울고 행복했던 만큼 불행하다. 너무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서 그런가? 그때부터 필연적이게 이 모든 일들이 이어져 있던 걸까.

 

 그립다. 보고 싶다. 나는 혼자 있다. 어딨는지 궁금하다. 다시 만나길 기도한다. 다시 만나게 되면 할 말이 몇 가지 있다. 내 인생에 짧게 있었는데 평생을 남을 것 같다. 다시 시작하면 이것들도 괜찮아지겠지? 내가 힘들어서 자꾸 과거를 붙잡고 늘어지는 거다. 구질구질하다. 쿨하게 살고 싶은데. 보고 싶다. 잘살기를 빈다. 나도 모두도 모든 것을 잊고 사는 게 편할 거다. 그래도 자꾸 어딘가에서 추억이 흐른다. 슬픈 일이다. 정상적인 시간에 흐르지 못하고 정류장처럼 당연히 마주하게 되는 것들 때문에 힘들다. 그래도 주기가 길어지고 있다. 훨씬 덜 울고 덜 가슴 친다. 많이 좋아지고 있다. 제발 이제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 분명 그럴 거다. 낙관과 긍정의 힘이 어떤지 요즘 실감한다. 이뤄낼 수 있으리라.

 글이 이래서 무섭다. 혼란스럽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생각이 삐죽삐죽 나온다. 그럼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이 말도 내 말이고 저 말도 내 말이고 서로 끝단에 있는 감정도 다 내 꺼라서 혼란스럽다.


 갖지 못한 것들은 나를 고단하게 한다. 결핍이 집착을 만들고 파멸로 이끈다. 인생 이대로 끝나는 줄 알았다. 창 앞에서 많이 울었다. 슬펐다. 사람들 속에서도 너무 외롭다. 외로워서 여름에도 춥다. 정신을 못 차리겠다. 울렁거리는 마음과 시선 때문에 토할 거 같다. 이렇게 유약하게 살 줄 누가 알았을까.

 내 인생 화려할 줄 알았다. 모자람 없이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 사는 게 쉬웠다. 세상이 자신만만했다. 사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인생 총량 맞추려 이 고생을 하는 건가 싶다.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오래 했다. 저주했고 원망했다. 거인 포스터에 사는 게 숨이 차다는데 맞다. 사는 게 숨이 차서 살기 싫었다. 당연하게 주어진 숨을 쉬는 게 기본값인 인간인데 그 기본값이 무너지니 삶이 멈췄다. 생각도 멈췄고 기계같이 살았다. 나에게 왜 그러고 사냐고 물었다.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왜 그렇게 사냐 물었다. 화가 나고 눈물 나고 억울했다. 내 생존전략이 되었다. 이 격정적인 시간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그게 기간이 길어지니 습관이 되고 이제는 체내화되었다. 

 많이 혼란스러운 시기들이었다. 그나마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고등학교 때지만 가장 혼란스러운 때도 바로 그때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었다. 자꾸 부정하게 되고 과거의 나를 찾고 나를 인정할 수 없었다. 내면의 지축이 흔들리니 세상이 흔들렸다. 그때부터 많이 울었다. 안 운 날이 없이 지나갔다.  친구관계가 불안하다고 처음 느꼈던 거 같다. 인간관계란 내가 가진 최고의 재능이며 만만한 것이었다. 인기투표에서 1등만 하던 내가 사람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그게 제일 힘들었다. 인간관계와 사회적 네트워크를 내 정체성으로 삼았던 거 같다. 혼자 있던 시간이 없었고 외로운 게 뭔지도 몰랐다. 주변은 늘 북적였고 내가 웃는 것이 부럽고 다시 태어나면 나로 태어나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게 내 재능이고 나의 자랑이었다. 사람 사귀는 일은 나에게 너무 쉽고 재밌고 장난스러웠다. 그 모든 게 무너지니 가장 먼저 무너지고 있던 나는 완전히 점철되었다. 갇혀 나올 수가 없었다. 외로움은 길고 길고 깊고 깊고 길고 또 길고 영원하리만큼 길고 춥고 외롭고 길고 깜깜하고 잠들어있고 또 길고 깊다. 


 감정에 쉽게 흔들리고 감정이 태도가 되는 인생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감정의 기폭은 크고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낙차는 높고 빨라서 습관적이고 일상적이나 생생하고 충격적이다. 나를 부여잡고 쥐어짜 내서 고통스럽다. 감정은 물감처럼 갑자기 내 안에 툭 튀어나와서 혈액보다 빠르게 번지는 것이라 사는 게 괴롭다. 시공간을 느낄 수 없고 불안한 나 자신만 생생하게 느낀다. 불안은 주변 모든 것을 요동치게 한다. 심장이 멎을 거 같고 죽을 거 같고 죽을 거 같다. 근데 이제는 괜찮다. 그러길 바랐잖아. 기다려온 거잖아. 하면 모순되게도 안정을 되찾는다. 죽는 게 무서우면 죽을 거 같고 죽는 게 안 무서우면 살만해진다. 웃긴다.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다. 이런 삶에서 배우는 게 많았다. 

 내 삶에 교훈을 얻으라는 소리가 미웠다. 남의 삶 살아보지도 않고 나를 응원해 주는 소리들은 나를 더 고통스럽고 치졸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고통이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나를 보는 일도 스트레스다. 그렇게 또 나를 질책하고 스스로 못되고 못나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치부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머리를 쳤다. 나를 다독이는 동시에 현실을 직시하라고 쳐댄 거 같다. 눈물은 비지엠으로 백그라운드에 깔려줘야 맛깔난 상황이 연출된다. 눈물은 흐르고 흘러 어디로 갔을까. 눈물을 타고타고 내 미움은 사라졌을까. 1분 대기조처럼 불쑥 튀어나오는 미움의 감정은 여전히 있다. 왜 미워해?라고 묻고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당연히 있는 시간이지만 그게 전부인 사이들인데 왜 미워하냐고 묻는다. 마치 스쳐 지나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웃기고 우습다. 피해의식이고 낮아진 자존감이고 안타까운 모습이다.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과거에서 꺼내와서 현재에 끌어다 놓고 그 안에 나도 넣고 다시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왔다가 인형극처럼 모든 것을 지배하면서 만남을 생각한다. 이제 그런 생각은 접었다. 

 근 2년이 심했다. 그전에는 사람 생각도 안 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나 사는 게 정말 벅차서 사람 생각도 못 했다. 나 사는 거 조금 정리되니까 그제야 사람 생각이 났다. 그리움이 그렇게 사무치는 줄 처음 알았다. 사람이 그리워서 가슴 치는 일이 그렇게 슬프고 애잔하고 비참한지 몰랐다. 울면서 가슴 치는데 내가 터질 거 같았다. 기억이 나고 그리워지면 그냥 빵 터졌으면 싶다. 죽기 전에 다시 만나길 바라면서 다시는 안 만나길 빈다. 이제 나는 기억에 아주 희미하게 남은 인물 n번 정도겠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게 비참하고 웃긴 일이다. 잊는 속도의 차이가 그쪽과 나의 비참함과 구질구질함을 차이 나게 한다. 2년 동안 꿈에 많이 나왔다. 힘들 때는 기억도 안 나니 꿈에도 안 나왔는데 웃기게도 꿈에 나와서인지 어느 순간 기억이 나서인지 전후 관계는 모르겠으나 둘이 동시에 들이닥쳤다. 그 또한 힘든 일이었다. 아파서 우는 것도 그것대로 힘들고 생각나서 우는 것도 그것대로 힘들었다. 무언가를 혼자 꾸역꾸역 그리워하는 내가 싫었다. 그만하고 싶었다. 근데 2년은 이어졌다. 그래도 이 시간을 지나 이제 꽤 잠잠해지고 담담해진 걸 보면 빠른 회복이지 싶다. 꿈에 나오면 하루 종일 심란했다. 눈감았다 뜨면 그때로 리셋되어 있길 바랐다. 나는 인복이 좋다. 내가 타고난 팔자 중에 하나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거쳐온 모든 사람도 진짜 좋은 사람들이다. 누군가를 놓쳐버리고 후회하는 시간은 억겁과 같다. 평생 살면서 문득 생각나지 않을까.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2년 동안은 그 그리움 때문에 죽는 줄 알았다. 그리워하는 감정은 파도처럼 거세다. 순식간에 밀려와서 전부 집어삼킨다. 그래서 그리워하다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요즘은 안 그래서 아주 괜찮다.


 요즘은 감정이 꽤 잔잔하다. 티비를 봐도 밥을 먹어도 괜찮다. 나는 울렁이는 감정이, 웃긴 걸 봐도 억지로 웃어야 하는 것이, 밥을 먹을 때마다 심장이 뛰고 체할 거 같은 것이, 가장 안정적인 집에 가족들과 있어도 울렁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정상인 줄 알았다. 그렇게 10년을 살았다. 나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깨달을 쯤에는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사는 것을 잠시 멈출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재밌는 게임도 하다가 지치면 pause를 누르고 영화도 마찬가지고 책도 보다 덮을 수 있는데 사는 것은 왜 그게 안 될까. 아무 일 없이 아무도 없이 사적인 공간에서 나 혼자 휴식을 취해도 그게 쉬는 게 아닌 사람은 어떻게 쉬어야 하나 생각했다. 잠을 택해도 깨기 마련이니 다시 이어지는 악몽 같은 것들이 싫었다. 잠으로 도피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건 나를 더 삐뚤빼뚤하게 만들었다. 아무도 깨지 않는 밤에 울었고 모두가 일하는 아침에 숨죽여 잤다. 그런 삶은 더더욱 나를 힘들게 했다. 잠은 도피처가 될 수 없었다. 벅찬 삶을 몰아내기 위해 쉬는 한숨이 될 수 없었다. 자각하지 못해도 은연중에 알아갔다. 그렇게 삶의 멈춤은 나를 눈물 나게 했다. 살기 싫었다. 나는 자주 생각했고 위험했고 슬펐다. 이렇게 살기 싫은 것이 나를 완전히 밖으로 내몬다는 것이 슬펐다. 안타까웠다. 아무것도 나를 정신 차리게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 안에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어 새삼스러웠고 고마웠다. 이름 안에 많은 것이 담겨있다. 단지 석 자 그뿐일 수 없다. 이름은 거울보다도 많은 것이 있다. 그게 나를 살게 하였다. 

 나에게 또 다른 도움의 말을 찾았다. 나는 늘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거다. 이 말은 너무 터무니없어서 오히려 나의 상태를 확인시키는 말도 아니고 적당히 중립적인 척하면서 내 편을 들어주는 말이다. 나는 늘 괜찮다. 괜찮은 정도는 지하에서 지상의 가장 낮은 끄트머리쯤이다. 어쨌든 지상이니까 이 말은 나를 다시 꽤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 이 말이 좋다. 쉽게 맘에 들어하지 않고 1분이면 질려하는데 이 말은 두 달 정도 된 거 같다. 나는 늘 괜찮다. 거짓말이다. 근데 그렇게 만들어줄 거 같다. 딱히 말의 힘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건 느껴진다. 나를 진짜 괜찮은 지상으로 조금씩 끌어올려 줄 거 같다. 나는 늘 괜찮다. 진짜 좋다. 진짜 괜찮은 거 같아서 좋다.


 앞으로 괜찮은 삶이 있을 거라 믿는다. 인생의 총량은 이제 많이 맞춰졌다고 믿는다. 겸손해지는 시간들이었다. 소수가 무엇인지 느꼈고 세상에서 소외되는 것이 무엇인지 느꼈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이 이런 양면성을 가질 수도 있다 느꼈다. 상황이 사람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을 배웠고 인상과 표정 눈빛도 바뀌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타고난 원초적인 기질은 어딘가 깊숙이 안에 아주 단단한 원석처럼 작아지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다녔다. 기억이 괴로운 것을 배웠다. 사람을 적당히 좋아하고 사랑하고, 때가 되면 잊는 것이 사는 데 편한 것이라고 배웠다. 말하지 않는 것을 묻지 않는 게 고마운 것이라는 걸 알았다. 알아도 모른척해 주는 이들이 고마웠다.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말하기 싫으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게 배려라는 것을 배웠다. 이 집에 태어나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진작 모든 걸 멈추고 육체의 자유를 찾아 하늘로 뛰어들었을 거다. 나라서 살았다고 생각했다. 가끔 이런 경솔과 자만은 나름 자존감에 먹이가 되어주어서 하는 것이 좋은 듯하다. 또 배운 것들은 내가 사람을 쉽게 봐왔다는 거. 인간관계란 게 당연한 건 줄 알았으니까.


 인생이 알 수 없는 것이라 재밌다는 사람들의 말이 싫었다. 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서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고 살았다. 마음에 생채기가 나 있어 누가 살짝 건드려도 득달같이 싫어하고 울어대니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았다. 안 하려 해서 진짜 안 할 수 있던 건 아니었지만. 생이 알 수 없는 것이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 재밌고 그게 인생이라면 그 속에 뼈저린 아픔과 고통도 있겠지. 살아보니 그 또한 지나고 그래서 애써 에둘러 재미라는 말 안에도 넣을 수 있겠지. 나의 재미는 아니나 인생의 재미라는 거겠지.


 노력의 배신은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았는데 사람은 참 끈질기다. 어쨌든 살아있는 한 계속하게 된다. 많이 쉬었으니 다시 잘살길 빈다. 나에게 큰 운이 왔으면 좋겠다. 운이 먼저 나를 일으켜주면 좋겠다. 일어나려 해도 불행이 넘치니 자꾸 주저앉게 되는 거 아닌가. 이젠 일어나지도 않는다. 나를 일으켜 세워주길. 스스로 구원할 힘을 잃으니 구원받고 싶다. 나에게 힘이 생기길. 다시 잘 살 수 있길. 용감해지길. 자신감을 갖길. 행복하고 사랑할 수 있길. 도전하고 실패 속에서 배울 수 있길 바란다.






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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