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일까, 사업자일까?
'선생님'에 대한 책임감
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Oct 28. 2021
한국으로 출국하는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요즘은 지인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에 한창이다. 나와 그들은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전혀 다른 지역에 살아 마주칠 일도 없고 인연 맺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냥 남남으로 지낼 수 있었던 관계가 ‘해외 살이’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마주하면 더 특별한 인연처럼 여겨진다.
나는 주로 이곳에서 만난 엄마들과 아이들 학교, 학원 이야기, 남편 회사 이야기, 집 계약 이야기, 회사에서 학비는 지원되는지,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인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초등학생 이상 자녀를 둔 부모를 만날 때면 학원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메뉴다. '외국에도 학원이 있냐' 의아해하겠지만 한국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한국 학원들이 들어서 있다. 선택의 폭은 넓지 않지만 피아노, 발레, 태권도, 검도 등 예체능 계열부터 영어, 수학, 국어 등 학원 종류가 다양하여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불안한 학부모들은 외국에서도 쉽게 학원의 늪에 빠진다. 코로나로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도 한국 학원만은 불을 끄고 몰래 운영했다는 말에 한국 엄마들의 학원 사랑은 실로 대단하다고 느꼈다.
아이를 발레 학원에 보낸다는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 발레학원 지금도 다녀요?”
“이제 그만뒀어요.”
“왜요? 이제 코로나도 좋아져서 학원들 다 문 열었던데요?”
“선생님이 한국으로 가버렸어요.”
“네? 갑자기요?”
“네. 우리 아이 수업이 4번 남았는데 환불도 못 받았어요. 문자 한 통 남기고 그냥 한국으로 갔지 뭐예요.”
“그럼 환불금은 어떻게 해요?”
“카톡으로 연락을 했더니 연락 두절됐어요.”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선생님'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어쩜 그럴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 엄마는 수업료를 받고 갑자기 한국으로 떠나버린 사람이 비단 그 발레 선생님만이 아니라고 했다. 친구 엄마가 말하길 어떤 피아노 선생님은 몇 천만 원어치의 수업료를 받고선 학부모들에게 말도 없이 그대로 한국으로 떠나버렸다고 했다. 물론 그들도 코로나로 인해 수업못하는 날이 길어지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따라온 학생과 자기를 신뢰하고 자녀를 맡긴 학부모를 생각한다면 그런 무책임한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사교육이라 하더라도 그들도 엄연히 교육자고 학생들에겐 선생님이다. 과연 그들은 외국에서 선생님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을까? 외국에 사는 한국 학생들에게 내가 가진 재능을 활용해 도움을 주고자 했을까, 아니면 단지 한국보다 돈 벌기 쉽다고 여겨서일까? 내가 볼 때 그들은 교육에 대한 어떤 사명감보다 한국식 교육을 원하는 외국에 사는 학생들을 돈으로, 그들의 부모를 돈 뽑는 기계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나도 한참 아이들 유치원을 새로 알아보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상담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중 한 유치원 원장님의 행동과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원장 선생님은 유치원 투어를 하면서 “우리 원에서는 한글과 수학 공부 열심히 시켜요.”를 강조하며 말하셨다. 보통 유치원 투어를 하면 원장님은 원에서 추구하는 교육 철학, 교훈, 유치원에서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교육 내용 등을 팸플릿으로 보여주며 유치원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 유치원은 원을 소개하는 자료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오직 한글과 수학 공부에 중점을 둔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장은 "원에서 많이 시키기 때문에 집에서 따로 하지 않아도 돼요’를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선생님, 혹시 원에서 아이들끼리 싸우거나 다툼이 일어나면 어떤 원칙으로 해결하시나요?”
“그런 문제에 따로 원칙은 없고 선생님들이 다 알아서 하세요. 워낙 경력이 많으셔서 선생님께서 재량껏 해결하십니다.”
원장 선생님의 말에서 원을 운영하는 교육 철학도, 원칙도, 인성을 위한 교육 내용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오로지 '아이들에게 국어, 수학만 열심히 가르쳐 학부모들을 좋아하게 만들자'라는 일념만 보였다.
이곳에서 유치원이나 학원을 운영하는 분 중에 '한국산'이라며 턱없이 비싼 원복비를 요구하거나 학부모에게 불리한 환불규정을 적용하고, 교육과 관계없는 다른 사업체를 함께 운영하시는 분도 만났다. 적어도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라면 아이의 성장 과정에 있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과연 그들은 교육자일까?사업자일까? 학생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 위해 그들은 어떤 고민을 할까? 아님 단지 돈줄로만 바라볼까? 그들이 갖는 '선생님'에 대한 무게감이 어느 정도 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