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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자라는알라씨 Jul 12. 2022

휴직서를 제출하며

좋은 엄마가 될게


"000 선생님 안녕하세요? 2학기 복직 또는 휴직 연장 관련 안내합니다. 서류 제출하러 교무실 방문 부탁드립니다."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항상 이맘때면 복직 또는 휴직 연장 서류를 처리하기에 난 이 문자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나의 육아휴직은 2022년 8월 31일부로 끝나게 된다. 항상 서류는 미리 제출하여 교육청을 승인을 받아야 하기에 7월과 12월은 교감선생님들에겐 인사 서류를 처리하느라 바쁜 달이다.

원래대로라면 난 복직서를 제출하고 2학기에는 다시 교사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첫째와 6살이 된 둘째를 보며 '한 학기의 적응 기간이 지나면 나도 마음 놓고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겠구나'란 희망 가득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몇 개월의 고민 끝에 복식 대신 휴직 연장을 택했고 이날 학교도 휴직 연장을 한다는 사유로 방문을 했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이기도 하고 독서와 학습 습관을 엄마와 함께 만들어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엄마의 부재로 인해 원치 않은 학원을 뺑뺑이 돌리며 돈과 시간을 쓰기도 싫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건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은 둘째 때문이다. 그나마 엄마 아빠 앞에서는 '좋다'는 표현도 '슬프다'는 표현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꼭 가면을 쓴 사람처럼 좀처럼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은 둘째다. '아직 한국에 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원래 수줍음이 많은 아이잖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치부했던 내 생각이 최근에는 '저렇게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 두면 언젠가는 폭발할 수도 있겠다. 이대로 두면 큰 일어날 수도 있어'란 생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은 곧 나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졌다.

'혹시 내가 아이들이 어릴 때 마음을 잘 보듬어 주지 않아서 일까?'

'내가 아이들을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냈나?'

'내가 너무 엄격하게 아이들을 다루었나?'

'눈에 보이는 행동에만 치중했지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엄마인 내가 알지 못했어.'


첫째가 3살, 둘째가 막 9개월이 되었을 때 복직했던 나는 그야말로 하루하루 생존하기에 바빴다. 새벽에 남편이 출근을 하면 아이들을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옷 입히고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까지 모두 나의 몫이었다. 눈도 채 뜨지 못한 아이들에게 물수건으로 세수를 하고 누워있는 상태로 옷을 입히고 아침은 최대한 간단하게 먹였다. 아이들의 심기를 건드려 울음이라도 터트리는 날에는 시간이 더 지체되기에 최대한 빨리 먹을 수 있고 아이들이 원하는 음식 위주로 먹였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과자가 아침식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뭐라도 먹는 날이면 그래도 내 마음은 편했다. 어린이집 간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양치를 대충 하고 바로 가방을 메고 집을 나오면 7시 40분. 차에 태워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1등이었다. 하원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더 놀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구를 뿌리치고 빨리 집으로 데리고 오면 나의 시선은 아이들보단 산더미처럼 쌓인 집안 일로 향해 있었다. 아침에 정리하지 못했던 이부자리, 아침 먹고 그대로 쌓아놓고 간 설거지와 빨래까지. 거기에 저녁 준비까지 해야 했기에 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아이들이 잠이 들면 그때서야 부족했던 수업 준비를 하고 잠이 들었다. 그러면 또 똑같은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아이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다는 건, 심리를 파악한다는 건 사치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난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어떻게 해서든 오늘 하루 잘 버티려는 하루살이에 불과했다.


휴직을 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은 나는 이제야 아이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아이들을 두고 다시 아침 일찍 서둘러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일상을 시작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도 적응 잘하고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며 선생님을 엄마처럼 편히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우리 아이들은 선생님이 불편한 아이였다. 선생님이 물어보는 말에만 대답하고 '지금 기분이 어때?'라고 물으면 단순히 '좋아요'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아이, 불안감을 마음속에만 간직하는 아이들이다.


3년 만에 방문한 학교는 낯섦 그 자체였다. 이미 교감 선생님 두 분이 모두 바뀐 상태였고 올해는 교장선생님도 새로 오셨다. 3-4년 전 같은 학년을 했던 선생님도 거의 전근을 가셨기에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찬 학교에 오니 묘한 긴장감이 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수업 중이었는지 복도마다 정적이 흘렀다. 3층에 위치한 교무실에 들어서니 서무 업무를 보는 선생님 두 분만이 앉아계셨다.


"안녕하세요? 저 휴직 교사 000인데요. 오늘 휴직 서류 제출하러 왔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교감선생님하고 약속하셨나요?"

"네. 약속했습니다."

"교감선생님 지금 회의 들어가셨는데 조금만 기다리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기다리는데 몇몇 선생님이 익숙한 듯 교무실로 들어왔다 나가셨다. 나도 3년 전엔 이곳이 익숙한 장소였는데 지금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만큼 불편했다. 무거운 공기에 둘러싸인 체 약속 시간보다 10분이 더 흘렀을 때 복도에서 경쾌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분 한 분이 들어오셨다. 내가 뵈러 온 교감선생님이 맞나 생각하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 000 선생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그동안 카톡으로만 서류 관련 대화를 나눠봤지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다. 생각보다 젊으신 교감선생님에 난 마음속으로 살짝 놀라기까지 했다. 편안한 인상에 말투도 부드러웠지만 우리의 대화는 단지 비즈니스 그 이상과 이하를 벗어나지 못했다.


"날짜 잘 기억해서 쓰신 거 맞죠?"

"네~ 맞습니다."

"그럼 우선 첫째 육아휴직을 17개월 더 쓰시는 건가요? 그리고 이어서 둘째 휴직도 1년 더 쓰시는 거고요? "

"네."

"아이고~ 오래 쉬시네. 다들 아이들 키우시면 빨리 나오고 싶어 하시던데......"


그 말에 순간 나는 작아졌다. 교감선생님의 친근한 말투 속에는 나란 존재는 단지 집에서 쉬면서 애나 보는 사람이란 인식과 이렇게 오래 쉬고 나중에 복직하면 잘 적응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은근슬쩍 새어 나왔다.


"아직은 아이들이 손이 많이 갈 때라서요. 좀 더 키우고 복직하려고요."

"그래요. 복직할 때 되면 아마 저도 없을 수 있겠네요. 지금 교장선생님도요."

교감선생님은 대화를 마치고 나를 필요 이상으로 1층까지 배웅해 주셨다.

"문 나가는 방법은 아세요? 저 버튼 누르시면 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왜 이리 씁쓸한지 교감선생님의 대화 내용이 계속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이고 오래 쉬시네요......'


"엄마 결혼사진 꺼내 줘요."

"응? 갑자기 결혼사진은 왜?"

아침식사로 방울토마토를 넣은 입을 오물거리며 둘째가 말했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엄마 지금 나가야 돼. 지금 이걸 볼 시간이 어딨어? 빨리 씻고 옷 입고 나가야지'라고 했을 텐데 지금은 나도 한결 여유를 부린다. 결혼사진을 보던 딸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큰 아빠, 이모, 고모 등을 찾고 내 하객으로 온 00 이모를 발견하는 대단한 눈썰미를 뽐낸다.


"엄마는 이때 왜 장갑을 꼈어? 아빠는 왜 안 꼈어?"

"소윤이 언니(00 이모의 딸)는 이때 왜 없었어?"

"여기 같이 사진 찍은 사람은 누구야?"


딸아이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살펴보며 궁금증을 마구 쏟아낸다. 딸은 엄마와 한바탕 과거 이야기가 끝난 후 9시가 훌쩍 넘어서야 엄마가 입혀주는 옷이 아닌 자기가 고른 드레스를 입고 룰루랄라 신나 한다.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 잠깐만" 하며 개미들을 관찰한다.

"엄마 이거 엄청 크다. 여왕개미인가 봐." 이렇게라도 조잘조잘 이야기하고 표현해 주는 딸아이가 참 고마웠다.


복직했으면 누릴 수 없는 아침 풍경이다. 아침부터 딸아이와 이렇게 추억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

실에 감사함을 느끼며 처음으로 복직서 대신 휴직서를 낸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엄마로만 살아갈 앞으로의 3년이 나에겐 참 소중하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을 더 깊고 포근하게 안아줘야지. 건강하고 마음이 단단한 어린이가 되도록 엄마가 많이 노력해야지 결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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