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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쿤 나나 Aug 28. 2024

02. 진상손님

-여행의 선택은 내가 한 것!

오늘은 총 3팀이 예약되어 있다

그중 한 팀은 30명이 넘는 인원이 예약되어 있다고 연락을 받았다.

많이 판다고 수당을 더 받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무리 알바라지만 기왕 하는 거 샵에 도움이 되어야겠다 마음먹는다.

태국에 온 패키지여행객들은 총 3곳의 쇼핑센터를 가게 된다.

물론 쇼핑도 싫고 불포함 옵션이 있는 게 싫은 여행객들도 있다.

그런 경우 여행비용을 더 내고 노쇼핑, 노옵션상품으로 여행을 하면 된다

그 비용이 2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선택이 쉽지 만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왕복 비행기표값이 50만 원 정도인 시기라고 가정해 보자

3박 4일의 패키지여행이 1인당 299,000원이라면 대박찬스라고 생각될 것이다.

이 금액에는 항공료와 호텔숙박요금, 식사비, 교통비, 가이드비를 포함한 가격이라면 파격이다.

단, 그런 여행을 예약했다면 감수해야 할 것이 있다.

마치 유튜브 영상을 무료로 보기 위해 광고를 보는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유명가수가 지역축제에 와서 공연을 한다면 무료관람이기 때문에 미리 가서 줄도 서고 좌석에서 대기하고 인지도가 없는 지역가수의 무대도 봐줘야 하는 나의 수고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패키지여행에서는 쇼핑과 불포함 옵션을 견뎌내야만 진정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가이드가 내민 옵션이 마음에 들어 추가금액을 내고 즐겼다거나 아니면 옵션을 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시간이면 된 것이다.


쇼핑도 마찬가지이다. 쇼핑샵에 들어갔다고 해서 모든 제품을 살 필요는 물론 없다. 필요한 게 있고 가격이 맞고 구매의사가 있으면 사면되고 그 모든 게 아니라면 쇼핑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단, 3박 4일 나를 가이드해 준 가이드에게 괜스레 미안해지지 않는다면 혹은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어떤 손님은 쇼핑은 안 하겠다고 하며 가이드에게 약간의 팁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모처럼 나온 해외여행이 눈치 보고 때론 힘든 것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여행업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여행사에서 손님을 모으는 모객단계에서부터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모객이 되니까 낮추고 낮춘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낮은 가격에 여행의 좋은 내용과 서비스까지 바라기는 힘든 일이다.


다시 정신 차리고,

오늘의 손님 중 가장 많은 인원의 정보를  미리 숙지한다. 

미리 다녀온 다른 쇼핑샵의 구매내역을 듣고 구매력, 팀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엄청나게 깎고 또 엄청난 서비스를 요구했다고 한다.

멘트사도 알바들도 마음의 준비를 한다.

피곤한 시간이 예상된다.

매장에 도착한 이들은 다양한 연령대의 몇 그룹이 모인 팀이었다.


나에게 라텍스베개와 방석을 구입한 할머니는 네 자매가 부부동반 여행을 오게 되었다고 했다

평균연령 70대 중반.

나이보다 세련된 느낌은 있었다.

판매원인 나를 존중해 주는 척하며 아닌듯한 행동과 말투, 나는 그냥 웃는다.

한 30~40분만 참으면 되니까 웃음과 과장된 공손함과 상냥함으로 참아본다.

할머니는 제품이 너무 좋다고 칭찬하며 엄청난 할인을 요구했다

이런 패키지여행 많이 다녀봤고 다른 나라도 많이 가봤다고 하시며 깎아달라 신다

적정한 할인이면 허용이 되지만 샵에도 가이드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 할인은 어쩔 도리가 없다.

팔아도 이익이 없는 판매는 할 수가 없다

밀고 당기고 겨우겨우 극적타결을 했다

계산을 하고 베개와 방석은 진공포장을 하게 된다.


거기서 끝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라텍스쇼핑이 끝나고 특산품 차와 커피를 시식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할머니는 큰언니라며 다른 할머니를 나에게 연결시켜 주셨다

자기가 베개 사라고 꼬셨다고 하신다

여러 종류의 베개를 베어 보고 만져본다

남편과 본인 베개를 선택하고 가격흥정을 하신다

판매에도 룰이 있고 할인도 마지 노선이 있다

정말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가격을 말씀드렸다.

그 아래의 가격으로 판매하면 안 파는 게 나을 가격이다.

실랑이는 짜증으로 이어지고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요구하신다

죄송하다, 최고로 해드렸다, 말씀드려 봐야 막무가내다

나 역시 점점 내면의 짜증이 올라온다

속으로는 끓어도 얼굴은 미소로 말투는 애교로 포장해 본다

큰언니 할머니는 급기야 안 해도 될 말, 선을 넘는 말을 하신다.

"나 이런 쇼핑센터만 종일 오는 여행 너무 싫어!

나 진짜 구경하고 관광하는 여행하고 싶었다고!

쇼핑 필요 없는데 하나 팔아주려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냥 싸게 줘!"


아 진짜 이 할머니! 아르바이트생의 마음을 후벼 판다.

휴!

감정을 최대한 누르고, 살짝 멋쩍은 미소로 얘기한다. 그리고, 애교를 버무린 작은 목소리로

"어머니 고생 많으시죠? 근데 제가 잘못한 거 아니잖아요

 기왕 오신 여행인데 기분 좋게 쇼핑하세요.

 저도 최대한 가격 맞춰드릴게요"


옆에 있던 동생 할머니가 큰언니할머니께

"언니! 여행은 우리가 선택해서 왔잖아, 이 사람한테 그러면 어떻게 해"


결국 원하는 가격과 제시된 가격의 간극, 1만 원의 차이는 좁히지 못하고 판매는 무산되었다.

샵에서도 최저가격이라는 게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더 예쁘게 말했어야 했나? 내가 더 어떻게 했어야 했지? 혼자 생각해 본다.

그래도 화 안 내고 짜증 안 내고 목소리 높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가이드에게도 상황설명을 해둔다. 나중에 뒷말이 나오면 나도 변명의 여지는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여행의 선택은 여행자 스스로 했다

말이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의 여행이라면 내용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쇼핑, 옵션은 강요하진 않지만, 그런 시간을 잘 견뎌낼 나 자신인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여행을 예약하고 비행기를 타야 한다

여행상품을 이미 선택했고 비행기를 탔고 여행지에 도착했다면 여행을 즐기자!

마음에 안 드는 것, 일정과 다른 것들이 있으면 가이드에게 문의는 하되 선은 지키자!

가이드도 판매원도 혹은 현지의 국민이든

나의 아랫사람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진상이 되지 않는다


여행의 선택뿐 아니라 어떠한 선택이든 본인이 선택한 것은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물론 허위, 과장, 속임수가 있었다면 책임의 주최가 달라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 선택의 책임자는 나다.


손님은 가시고 기 빨리는 시간도 일단락되었다.

나는 다음 손님을 또 기다린다.

안 사도 좋으니 예의는 있었으면...

오늘도 사인을 보낸다

루카 마~~(태국어: 손님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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