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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현 Sep 19. 2019

<공정하지 않다> 리뷰

본 리뷰는 출간 전 가제본을 미리 읽고 작성되었음

  작년 여름, 서울대 근처에서 버스를 탄 적이 있다. 관악산에서 내려온 등산객들 덕분에 차는 곧 만원이 되었는데, 한 중년 남성이 혼잣말로(하지만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요즘 애들은 배려심이 없어...조금만 가까이 붙으면 공간이 더 나올 텐데." 그는 만원 버스 안에서도 퍼스널 스페이스를 좁히지 않는 대학생들이 아니꼬웠던 것이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반대로 만원 버스에 꾸역꾸역 올라타는 사람들을 배려심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기성세대에게 청년들은 늘 미지의 존재다. 작년에 출판된 <90년생이 온다>와 같은 저서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궁금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청년들의 심중이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다. 작년 말 현 정권은 이른바 '이영자'현상을 겪었다. 영남의 지지율 감소는 지역감정에, 그리고 자영업자의 지지율 감소는 최저임금상승에 바탕을 둔 것이라 짐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20대의 이탈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국자들이 머리를 싸맸을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보수정권의 교육으로 인한 청년층 보수화"를 운운하며 속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짐작건대 만원 버스에서 "요즘 애들의 배려심"을 찾던 중년 남성과 유사한 심리였으리라.

  청년층과 장년층이 바라보는 '배려'에 대한 관점이 다르듯이 무엇이 '진보적'인지에 대한 관점 또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년세대가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다는 종전의 평가 역시 타당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 <공정하지 않다>의 작가 박원익, 조윤호는 '공정성'이라는 키워드로 90년대 생들이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거시적-미시적 관점을 교차하며 분석한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9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단 '1점' 차이로 대학과 직장이 갈리는 극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다. 동시에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앞장설 정도로 평등한 환경에서 자라왔다. 이는 청년세대가 공정하지 않은 처사를 마주할 때 격렬히 분노하는 특성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남북 아이스하키 통합 팀에 대해서 분개했던 청년들을 기억해보자. 단순히 북한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반동적인 행태이다. 그러나 청년세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시각이야 말로 후진적인 것이다.

  사람들의 편견과 다르게 20대는 세계적으로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진보적인 가치를 중요시한다. 단지 기성정당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이러한 정치 상황을 토마 피케티는 "브라만 좌파와 상인 우파"로 표현했으며, 샹탈 무페는 "선택지가 펩시와 코카콜라밖에 없는 상태"로 비유했다. 따라서 20대들의 새로운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새로운 담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정당과 언론은 20대의 수요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권력형 성범죄의 책임을 남성 일반에게 돌리거나, 간호사들 사이의 '태움' 문제를 문화와 성격의 문제로 환원했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은 채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행태는 전혀 진보적이지 않으며, "최종 보스"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세대갈등, 지역갈등, 젠더갈등과 같은 문제들은 사실 진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는 길에 물리쳐야 할 중간 보스일 뿐이다.

  저자들은 단순히 20대들이 처한 문제점을 분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삶에서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원칙들을 제시한다. 조던 피터슨의 강연과 서적에 젊은 세대가 열광했던 이유는 바로 피터슨이 청년 세대가 따라할 수 있는 행동지침을 말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과 정체성적 혼란을 동시에 겪고 있는 세대에게 "나 때는 더한 일도 겪었으니 너희들이 조금 희생해라"는 식의 참견이나, "너는 무조건 잘못한 게 없으니까 너를 상처 입히는 모든 일은 잘못되었어"라고 말하는 PC주의식 힐링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 저자는 이들에게 누가 더 피해자인지 경쟁하지 말고 세상이 바뀔 수 있음을 믿으라고 제안한다. 90년대 생들은 모두 각박한 환경 속을 살아가고 있다. 서로 차이점을 찾으며 눈에 불을 켜고 상대방에게 사과를 강요하기 보다는, 우리가 왜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지 진정한 원인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

  두 저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가 바로 불평등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현금만 세습되지 않는다. 기업이 세습되고, 학교도 세습되고, 심지어 교회까지 세습된다. "돈도 실력이야"를 외쳤던 정유라의 말에 분노하지 않을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세대나 젠더의 문제를 넘어선다.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자, '공정함'을 외치는 90년대 생들의 분노와 공명하는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은 단단하게 뿌리내린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과연 시민들의 손으로 대통령이 바뀔 거라고는 누군들 생각했을까? 현실은 때때로 우리의 생각보다 더 빨리 변화한다.  

  조윤호 작가는 서로 편을 가르는 싸움에 휩쓸리지 말고,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자는 의미에서 이 책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멀찍이 앉은 나에게는 이 말이 "줄탁동시"라는 단어로 들렸다. 80년대 생인 두 명의 작가가 쓴 이 책이 '탁'이 되고, 나와 같은 90년대 생의 독자들이 '줄'이 되어 사회의 단단한 불평등을 깨뜨린다면, 우리가 바라던 미래는 훨씬 가까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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