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책은 없었다."
조금 유치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유행어가 떠올랐다. 이 책을 페미니즘 책으로 분류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저자인 레이철 시먼스는 여성학을 전공했다. 이 책은 여성학자인 벨 훅스를 인용하며, 사회가 여성에게 남성과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또한 여성이 “대체 공격"을 사용하는 이유는 사회가 소녀들에게 가시적인 폭력을 금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위의 내용만 본다면, 이 책은 평범한 페미니즘 서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여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모두 여성이다. 시먼스는 비구조화 인터뷰 방법으로 또래 여성으로부터 관계적 폭력(이 책의 용어에 따르면 “대체 공격”)을 당한 여성들을 조사한다. 많은 피해자들은 어린 시절 겪었던 상처로 인해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성보다 남성들을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낀다고 고백한다. 신기하게도 최근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공포와 정반대이다.
물론 페미니스트들이 대변하는 여성들의 공포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과 여성들 사이에서의 폭력을 이른바 “여적여” 구도로 몰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최근 페미니즘의 경향은 여성들을 순전한 피해자로 낭만화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이미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나 로라 키프니스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내부로부터의 비판을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시먼스는 양육자의 역할을 기대받기에 여성의 폭력성을 억제한다는 사회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동시에 여성이 남성만큼 폭력적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시먼스가 친구로부터 대체 공격을 당한 소녀를 인터뷰 하던 도중, 이를 지켜보던 담당 교사는 따지듯이 이런 말을 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는 여자 친구들일 거예요. 나쁜 측면만 말하면 불공평하잖아요.” 이에 시먼스는 이 책이 여성을 비난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님을 변호한다. 또한 오히려 여성을 순전한 피해자로 낭만화 할수록 또다른 피해자들을 양산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이 책에 종종 등장하지만, 시먼스는 어떠한 이론이나 프레임에 집착하지 않고 오로지 현실 문제의 해결책 제시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장점은 최근 한국사회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예전에 워마드에 반대하던 페미니스트 여성이, 행사에서 직접 워마드 유저들을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글을 본 적 있다. 그들은 남성중심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억지로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했으며, 사실 많이 상처받고 약한 사람들일 뿐이었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이런식의 반응이 실제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심된다. 여성계 지식인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때는 절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도 이 책이 보여주는 미덕을 좀 가져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모쪼록 이제는 의미 없는 갈등이 끝나고, 생산적인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한다.
“희생자 혹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 신념이 따돌림에 대한 기억과 논의를 가볍게 만든 것이다. 우리 행동의 복잡성도 간과되었다. 그 결과 ‘그들에게 맞선 우리'는 '우리에게 맞선 우리’가 되어버린다.”(p. 209)
"우리는 여자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함으로써, 여자는 공격적이지 않다는 틀에 박힌 믿음을 지속시킨다.”(같은 쪽)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먹질을 하는 것이 폭력이라고 배우듯이, 친구가 되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것 또한 폭력임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p. 348)
“소녀들의 공격 행위도 소년들과 같은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며, 교실에서 동등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공격 자체에 대한 정의가 확장되어야 한다.”(같은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