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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현 Sep 25. 2019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 리뷰

  얼마 전, 모 대학교에서 여학생을 대상으로 "예쁘다"는 발언을 한 남학생이 학생회 차원의 제재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해당 대학교의 학생회는 여성의 외모에 대한 발언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의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는 종종 정의로움을 위해 아름다움을 포기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저자인 스캐리는 정의로움의 영역에서 아름다움을 추방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고찰하고 있다.

  먼저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응시가 대상에게 피해를 끼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시선이 대상화 혹은 물화를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일단 정원이나 시처럼 감성력 없는 대상들은 피해에서 빗겨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상들은 시선으로 인해 피해를 입기는커녕 오히려 혜택을 얻기 때문이다. 가령 아름다운 시에 대한 관심은, 그 시가 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하지만 감성력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응시는 어떨까? 스캐리는 지각 받는 사람의 상처받기 쉬움만큼, 지각하는 사람의 상처받기 쉬움이 강조되지 않는 상황이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한다. <파이드로스>에서 아름다운 소년을 본 남자는 온 몸이 떨리는 신체적 감각을 겪으며 소년에게 숭배의 자세를 취한다. <새로운 인생>에서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보자 위험에 노출된 사람처럼 온 몸이 굳어버린다. 비록 사람이 대상은 아니지만 '스탕달 신드롬'도 이와 같은 견해를 보충할 수 있다. 스탕달은 아름다운 미술작품을 감상하다가 무릎에 힘이 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현상을 경험했고, 이후에 동일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정신의학자 마게리니에 의해서 연구되기도 하였다.(위키피디아)

  이쯤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모든 응시가 정의로운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예컨대 고다이바를 훔쳐보는 톰의 사례까지 정의로움의 영역에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지각되는 자의 취약함은 드러나 있는 반면, 지각하는 자의 취약함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추방되어야 할 것은 아름다움이 아닌 관음증이다.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응시가 피해를 끼친다는 논변이 시선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라면, 시선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아름다움에 반대하는 논변도 존재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정의로움에 대한 관심을 방해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스캐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정의로움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낸다고 반박한다. 아름다움은 분배적인 속성을 가지는데, 이와 같은 속성은 롤스가 말한 "모든 사람의 상호 관계의 대칭"으로서 공정함과 이어진다. 즉, 심미적인 공정함(fairness)과 윤리적인 공정함(fairness)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스캐리는 롤스의 정의로움에 대한 유명한 사고실험을 아름다움에 접목시킨다. 만약 후대의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하늘을 보여줄 것인지 무지의 베일 속에서 결정한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것에 동의할 것이다. 실제로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한 한국의 사람들은 아이들이 파란 하늘을 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사람들이 아이들의 호흡기 건강이나 마스크를 쓰는 불편함뿐만 아니라 하늘의 아름다움에 대해 걱정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처럼 아름다움은 곧 "탈자기화"를 초래한다. 머독의 예를 따르자면, 그녀가 황조롱이의 비행을 주목했을 때 자기 자신만을 위해 봉사하던 마음이 더 널찍한 정신적 행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던 사람들도 미래 세대의 푸른 하늘에 대해서 걱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적 확장은 우리를 평등함으로 이끌어간다. 결국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우리를 더욱 정의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스캐리는 우리가 중심인물이 아닌 주변인물이 될 때 평등 상태에 더 가까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아렌트(1963)의 정의에 대한 발언을 떠오르게 만든다. "정의는...그 자신을 주목받는 자리에 놓음으로써 갖게 되는 모든 쾌락을 아주 조심스럽게 피하도록 처방한다."

  오늘날 정의로움을 자처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날카로운 비판의식이다. 어느 순간부터 미술 작품들도 아름다움보다는 메세지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작품들은 시대의 아름다움이 아닌 추악함을 들추고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아름다움에 주목한다는 것은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진한 태도로 비춰진다. 스캐리는 아름다움에 관한 착오를 저질렀을 때 지각의 근본적 변경을 가져온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아름다움 자체에 대해 "철썩" 혹은 "쿵" 하는 지각의 무너짐을 겪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여기 스캐리의 아름다운 문장과 책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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