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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현 Oct 02. 2019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뷰

“한국은 ‘도덕 지향성 국가’이다. 한국은 확실히 도덕 지향적인 나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한국인이 언제나 모두 도덕적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 지향적’과 ‘도덕적’은 다른 것이다. ‘도덕 지향성’은 사람들의 모든 언동을 도덕으로 환원하여 평가한다. 즉 그것은 ‘도덕 환원주의’와 표리일체를 이루는 것이다.”(p. 13)

  8년간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한 오구라 기조의 첫 문단은 촌철살인이다. 한국인들은 확실히 도덕 지향적이다. 그들은 정치에서만 도덕을 찾지 않는다. 유튜브에서도 도덕을 찾고, 웹툰에서도 도덕을 찾는다. 이러한 현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오구라 기조 교수의 말대로 일본의 드라마는 “감정이 식었으니 헤어져” 하고 끝나지만, 한국의 드라마는 "내가 왜 너와 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을 구구절절 읊는다. 덕분에 커플들이 연애를 하는 드라마도 서스펜스를 얻게 된다. 일본은 칼로 이기는 것을 정정당당하게 생각하는 반면에, 한국은 말로 이기는 것을 정정당당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한국인의 도덕 지향성의 원천을 오구라 기조는 성리학에서 찾는다. 조선은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는 ‘소중화’를 주창할 정도로 중국보다 더 유교적인 국가였다. 성리학은 ‘이’와 ‘기’의 조합을 중요시하며 한국인을 분석하는 틀로써 사용된다. 흔히 외국인들은 한국인에 대해서 “감정적이다” 혹은 “정이 많다”고 표현하지만 이것은 한국의 일면만을 본 것이다. 한국인의 공적인 측면, 즉 ‘이’가 지배하는 측면은 냉혹한 세계이다. ‘이’란 곧 질서를 의미하는데, 단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사람들을 줄세우는 일원적인 질서이다. 한국인들이 교육에 목을 메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를 주문처럼 외우는 까닭은 이러한 질서에 따라서 자신의 신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보통 한국으로 단기간 여행을 오는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질서를 경험할 시간 없이, 시장바닥과 밤거리에 가득한 ‘기’의 측면만 보고서 한국인을 감정적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이’에 따른 질서는 국제관계에서 중국-한국-일본에 서열을 놓는다. 국내에서는 양반-평민-노비의 서열을 놓는다. 그러나 이렇게 ‘이’의 정함과 탁함에 따라 님-나-놈으로 구분짓는 서열은 인도의 카스트제도나 일본의 봉건제도와 같이 폐쇄적인 서열이 아니었다. 조선의 신분제도는 어느정도 개방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가능했으며, 때문에 한국 민족 특유의 낙천적 성격이 나타난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식으로 몰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이’에 대한 몰입은 반작용으로 ‘기’의 팽창을 가져오게 된다. 한국인들의 유흥 문화는 ‘기’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또한 ‘이’의 세계에서도 ‘기’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아무리 능력있는 사원이라도 회식 자리에서 음주가무를 뽐내지 못하면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화가 그것이다. 조던 피터슨이 음양이론을 통해 혼돈과 질서의 균형을 말하였듯이, ‘이’와 ‘기’는 순환을 이루며 균형을 만든다.

  한국에서 평생을 산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오구라 기조의 분석은 꽤나 정확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단점을 꼽자면, 일단 그가 분석 이론으로 사용하는 ‘이기론’은 반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성리학에 따라 “이기불상리불상잡”, 다시 말해 ‘이’와 ‘기’는 떨어져 있지도 않고 섞이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현상을 사후적으로 분석한 뒤에 “원래 이와 기는 떨어질 수 없어” 하는 식으로 모순을 극복해도 반박할 방법이 없다.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사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것과 같다.

  또한 책의 후반부에 오구라 기조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간접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 한국인들이 반일감정에 사로잡혀 과학적으로 역사를 보지 못한다는 식의 서술인데, 식민지 근대화론이 과연 유의미한 이론인지는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약간의 단점이 있지만 한국인을 탁월하게 분석한 책이다. 특히나 오구라 기조 교수가 한국에 8년동안 살면서도 한국인의 질서에 제대로 섞이지 못했다는 후기가 책의 신뢰감을 더해주면서도 뭔가 씁쓸하게 느껴졌다. 리뷰를 통해 다루고 싶은 주옥같은 내용들이 많지만, 모두 담을 수 없어 이만 줄이겠다.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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