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절현(伯牙絶絃)
친구의 절교 선언
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해 온 죽마고우(竹馬故友)가 있었습니다. 10여 년의 공백기를 지나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여전히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유일한 사람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재회의 기쁨도 잠시, 우리는 종교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습니다.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는 내게 차가운 절교를 선언했습니다.
그 충격은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나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던 친구가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밀려왔습니다.
마치 백아(伯牙)가 그의 연주를 알아주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더 이상 거문고를 타지 않겠다며 줄을 끊어버린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심정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단절을 넘어선 깨달음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 속 백아는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연주를 멈추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나 역시 친구의 절교 선언 앞에서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듯한 절망에 빠져 모든 인간관계를 끊어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문득, '한 사람의 부재가 내 인생의 연주를 멈추게 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친구의 절교는 그저 신념의 차이일 뿐, 내 존재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백아처럼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는 것은 지혜로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 그의 연주를 듣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끊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웃과 소통
절교의 아픔을 딛고 나는 블로그 나라에서 새로운 이웃들과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글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이웃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기적처럼 블로그 이웃이 8천 명이 되었습니다. 나를 떠난 친구는 단 한 명이었지만, 이제는 8천 명의 이웃들이 내 글을 보고 공감하며 댓글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백아절현은 깊은 공감의 소중함을 말해주지만, 역설적으로 단 한 사람의 이해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이해받을 수 없습니다. 친구의 떠남은 뼈아픈 경험이었지만, 덕분에 나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수많은 블로그 이웃을 얻는 전화위복의 계기를 맞이했습니다.
글쓰기로 이어가는 새로운 연주
이제 나는 백아절현을 다르게 정의합니다. 백아가 줄을 끊은 행위는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절망의 표현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내면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무모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에서 소중한 인연이 끝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삶의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의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백아절현은 비극이 아닌, 자존감의 회복을 알리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자신의 악기를 내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는 내 글을 보는 사람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과 그들을 사랑하는 글을 쓰는 연주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