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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색 공원

인생의 깊이를 더하는 동반자

막역지우

by 무공 김낙범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맺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막역지우(莫逆之友)의 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어제 저는 오랜 친구를 만나면서 이 '막역지우'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늦은 저녁, 갑작스레 찾아온 친구의 얼굴은 핼쑥했습니다. 평소의 밝은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무거운 걱정이 깃든 표정이었습니다. 근처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겨 따뜻한 커피를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다가 친구가 입을 열었습니다.


"여편네가 같이 살기 싫다고 이혼하자고 하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한숨 섞인 그의 말에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변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부였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진정한 친구처럼 살아온 부부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네는 부인과 막역지우 아니던가?"


제 물음에 그는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부부의 관계를 넘어 서로의 마음이 막힘없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였습니다. 막역지우란 말 그대로 거스름이 없는 친구라는 뜻입니다. 중국의 고전 논어, 맹자, 장자에서는 막역지우를 단순한 친밀감을 넘어선 관계로 설명합니다. 지적, 정신적으로 깊이 있는 교류를 나누며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관계라고 했습니다.


막역지우는 단순히 오래 알고 지내는 친구와는 다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지는 신뢰와 이해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막역지우는 상대방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문제점을 조용히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강요하거나 간섭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보며 기다려줍니다.


기쁠 때는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는 함께 슬퍼하며 눈물을 나눕니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에는 그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인생의 어떤 고비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참된 벗은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라고 했습니다. 막역지우는 단순한 인간관계를 넘어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가치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존재입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함께 성장해 나가는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친구에게 이러한 막역지우의 의미를 조용히 전해주었을 뿐입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지금 그들 부부는 다시 예전처럼 막역지우로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막역지우의 관계는 특히 예술가들에게 중요합니다. 작가에게는 작품의 길을 함께 걸어갈 정신적 동반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동료 작가나 스승, 혹은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의 존재는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고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진정한 막역지우는 서로의 성장을 위해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비판의 근저에는 언제나 상대방을 향한 진심 어린 애정이 깔려있습니다. 작가가 자신을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고 진실한 경험과 감정을 글로 표현할 때, 독자와도 이러한 막역지우와 같은 깊이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막역지우가 필요합니다.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친구,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친구,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 그런 친구가 있다면 우리의 삶은 한층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막역지우는 단순한 친구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서로의 영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깊은 인연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지는 신뢰와 이해, 그리고 변함없는 애정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 아닐까요?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의 막역지우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동반자로서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막역지우의 모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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