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속삭이는

임철우/현대문학 .................사삶(4.3)을 만나다

by 머무는바람

기억이 기억에게, 역사가 역사에게

-<돌담에 속삭이는>을 읽고


한라산 중턱의 하늘을 까마귀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수놓는다. 4.3 평화 공원 입구, 돌들이 가득 담긴 붉은 문주에는 화려한 시화가 빨래처럼 널렸다. 제주 4.3 72주년 추념 시화전이 한창이다. <돌담에 속삭이는>이라는 제목을 단 이 시화전에서 그날의 사연을 품은, 닮은 듯 다른 많은 순이 삼촌을 만난다. 어느 시의 밝은 이미지만 생각하며 역설적으로 이런 발랄한 제목을 택했나 싶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사실, 4.3을 소재로 한 소설이었구나! 그리고 그날로 내리읽어낸 <돌담에 속삭이는>. 먹먹함과 다행스러움, 그 중간 어디쯤에서 책을 접는다.


이야기는 1948년 12월 소개령으로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버린 월산리, 그곳에서 은퇴 후 제주의 전원생활을 꿈꾸던 한민우가 자신의 주변에 어른대는 4.3의 처참한 진실을 찾아 나가며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상처도 함께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얼마간의 변형을 가하기는 했지만 폭낭 할망과 오백 신령, 서천 꽃밭 섬과 시왕 맞이 등 제주의 설화와 무속을 동원해 그지없는 위로를 그려낸다. 한 손에 잡히는 작은 사이즈에 하얀 표지, 저 여인은 왜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 속에선 아이의 목소리와 집요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 목소리와 시선의 주인공은 몽희. 토벌대에 끌려간 엄마를 기다리다가 몽구, 몽선과 함께 불에 타 죽은, 까맣게 속을 태운 아픈 역사의 다른 이름이다. 떨어진 꽃송이가 되어 여전히 엄마를 기다리는 몽희는 자신들의 존재에 시선을 맞춰줄 주인공 한(민우)을 알아본다. 자발적으로 버려짐을 택한 유기견 망고를 통해 자신들이 곁에 있음을 은근히 알리기도 하고 한이 뒤돌아볼 때까지 응시하곤 한다. 왜 한이었을까?


몽희는 한이 보이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는 눈,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눈, 그런 특별한 눈을 가졌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눈에서 한없이 깊고 캄캄한 어둠의 동굴, 텅 빈 구멍을 보았다. 몽희는 한의 텅 빈 구멍을 ‘아파하는 마음’이라고 얘기하고 나는 그것을 ‘공감’이라고 부르고 싶다. 보이지 않지만 실재했던 아픔,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계속되는 아픔을 같이 할 수 있는 마음, ‘공감’ 말이다. 그 ‘공감’은 한의 일방적인 것이 아닌 어린 시절 보지도 못한 아버지의 죄를 상속받고, 어머니의 이른 죽음으로 그리움을 껴안고 살아가는 한의 아픔을 알아챈, 어머니를 기다리는 몽희의 마음이 서로 맞닿는 지점이다.


한은 잃어버린 마을 월산리 이야기를 들으며 소리 없이 사라져 간 그때의 멈춰진 시간을 정성껏 위로한다. 꽃송이로 남은 몽희의 시간도, 살아남아 힘든 삶을 잇는 윤 할머니의 시간도. 모두가 말을 빼앗긴 섬이 되어야만 했던 제주 사람들의 잃어버린 시간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음이다. 우리가 눈을 감고 있는 한. 그래서 또 알겠다. 표지의 ‘감은 눈’은 우리의 자화상이었구나! 우리는 애써 그날의 아픔을, 몽희의 이야기를 눈감은 채 외면해 왔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만이 가진 특별한 눈이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있어야만 했다. 눈 돌린다고, 눈 감는다고 잊히거나 없던 일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무차별적인 죽음 앞에 놓인 몽희와 어린 윤 할머니가 위태롭게 흔들린다. 몽희 엄마는 저 죽음은 모두 꽃이라고, 유채꽃이고 제비꽃이고 동백꽃이라고 흔들림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살아남은 윤 할머니에게 우리가 환호성하는 제주의 사계절 꽃잔치가 얼마나 두려운 죽음의 너울이었을까? 그들의 고된 흔들림에 세월호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가 오버랩 된다. 우리는 그의 의로웠던 행동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에게 얼마나 많은 꽃들이 바다에 흩뿌려진 아픔으로 남았을지, 그 흔들림의 시간을 온통 홀로 버텨내고 있는 파란 바지의 의인에겐 눈 감아버린 우리가 아닐는지.


돌담에 자리 잡은 몽희는 북촌 너븐숭이 4.3 기념관 앞마당의 애기 무덤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그 돌무덤 사이사이 수많은 몽희들의 물기 머금은 눈빛이 빛난다. 몽희들이 안타까운 사람들의 마음을 쌓아 올려 만들어진 돌탑이 위로의 몸짓으로 우뚝하게 섰다. 애기 무덤에 놓인 장난감과 사탕과 인형이 돌탑의 바람과 술래잡기하듯 잔망스럽다.


이제는 또 다른 몽희들도 엄마를 만나 서쪽 하늘 꽃밭 섬을 찾아갈 수 있었을까? 폭낭 할망을 비롯해 사람들의 상처를 막아주지 못해 온몸이 괴롭다는 제주의 오백 신령의 간절함이 지극하다. 제주가 일만 팔천 신들의 섬인 것은 그들이 돌봐줘야 할 제주 사람들의 상처가 그만큼 크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주의 반짝임에는 이들의 물기가 배어 아릿한 슬픔이 어렸음을 안다. 신령과 한의 배웅을 받아 서천 꽃밭 섬을 찾아가는 길이 힘들지 않기를, 그곳에서 행복하게 머무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욕심이 아니기를 기대해본다.


‘돌담에 속삭이는’건 4.3의 몽희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라는 도청 방송으로 5.18 광주의 마지막 적막함을 깨우던 여학생의 절절함과 “전원 구조”가 아닌 아직 많은 아이들이 그곳에 있다는 4.16 세월호의 외침이 돌담 바람 길에 함께 수런거린다. 이제 그 속삭임에 우리가 대답을 할 차례이다.


“총알에 맞았다. 아! 나는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다!”


얼마 전 5·18기록관이 공개한 일기의 이 한 문장에 역사와 국가의 정의 앞에 부끄러움 대신 당당할 수 있음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어린 대학생의 마음이 우리의 대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기억이 기억에게, 역사가 역사에게 깊은 연대와 위로를 보낸다. 제대로 눈 뜬 우리가 바로 기억이고 역사이다.


“바람도 없는데 나무 이파리 하나가 유독 저 혼자 파르르 떨리거나, 혹은 보일락 말락 까닥까닥 흔들리는 걸 본 적이 있다면, 십중팔구 우리가 거기 있었다는 흔적이야.”(p.208)


돌담에 내려앉은 한 조각의 바람, 늦게 찾아온 하얀 눈 위로 통째로 떨어져 유독 빨간빛이 낭자한 동백꽃 사이, 바닷가의 무심한 파도와 백사장에도 4.3은 살아있는 정의로운 역사로 두 눈에 또렷해진다.

작게 쌓아 올린 돌탑의 자갈돌이 바람도 없이 또르르 굴러 내린다.

또다시 우리 옆에 몽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