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어젠다 키핑을 생각하다(2.18)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장면들>을 읽고

by 머무는바람

선거철이다.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유독 마음을 정하기 곤혹스러운 시간들이다. 아니 곤혹스럽다기보다는 날이 밝으면 이쪽저쪽 할 것 없이 터져 나오는 후보들과 관련된 뉴스에 짜증스럽다는 편이 맞을 게다. 뉴스에 나오는 바가 모두 진실일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지상파와 종편이 다르고 종편은 또 그들의 시각에 따라 접근한다. 그만도 벅찬데 유튜브를 비롯해 페이스북 등 SNS에는 한 가지 진실이 오만 가지 모양으로 변형되고 왜곡되어 그들이 보고 싶은 대로 바라보길 강요한다. 나는 또 나대로 내가 보고 싶은 것들만 찾아보고 스트레스라도 받을라치면 옳다구나 한 종편을 틀어놓고 심심풀이 땅콩 오징어 씹어대듯 궁시렁 대면서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이래도 좋은 건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 중에 과연 진실은 있기나 할까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바로 이 <장면들>. 2020년 1월 뉴스를 떠나 있음에도 17년 연속 ‘언론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는 언론인 손석희. 선거 국면 후보 검증을 명쾌히 해내던 그의 인터뷰가 그리운 시점이다. 그의 20년 현장 속 어떤 장면들이 소개됐을까 하는 궁금함과 선거를 차분히 바라볼 만한 작은 팁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장면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손석희의 JTBC 행을 시작으로 오늘날의 JTBC의 위상을 갖게 된 두 사건,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국정농단 태블릿 보도 과정과 탄핵 정국에 이은 대선과 미투을 자세히 다룬 1부 <어젠다 키핑을 생각하다>와 그의 언론관이 드러난 2부 <저널리즘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로 구성되었다.


다시 마주한 그 배, 세월호는 8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그날의 장면으로 또렷하게 상기되었다. 앞다투어 세월호에 대한 뉴스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내고 슬그머니 관심을 거두던 이들과는 달리 521일 간 세월호를 붙잡고 끝끝내 놓을 수 없었던 사람들. 어젠다 세팅(의제 설정)에 그치는 것이 아닌 사회적 변화를 위해 어젠다 키핑(의제의 지속, 유지)이 중요하다는 외침. 결국은 사회적 변화에 그 지향이 닿아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다. 그 사회적 변화라는 건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기본으로 하는 합리적인 자세로 기존의 체계와 현상에 안주하지 않는 진보, 즉 ‘합리적 진보’로 나아가 만나게 되는 인본주의와 민주주의 실현의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바다의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와 함께 그 먹먹한 시간을 버텨내는 것, 그들에겐 그것이 합리적 진보이고 인본주의이며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저널리즘이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탄핵의 장면에서는 세간에 나돌던 가짜 뉴스와 그보다 더 많았던 조작설, 그리고 권력자들에 의해 견고하게 설계되던 어젠다 세팅(프레임 싸움)을 목격하게 된다. 탄핵된 대통령의 메시지 속 ‘진실’은 그와 구별되는 ‘진실은 단순해서 아름답고 단지 필요한 것은 그것을 지킬 용기뿐’이라는 시민들의 말로 고쳐졌다.


가끔은 고구마 같고 가끔은 하얗게 말라버린 입술의 창백함 같았던 여러 분야의 희로애락이 담긴 인터뷰들은 당시의 인물들을 고스란히 소환하였고 언론인 손석희의 고민은 담백하지만 치열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웅장하게 힘만 들어간 것은 아니다. 보도국 기자들에 얽힌 일화들은 인간적인 거리감을 바짝 당겨주는 미덕을 두루두루 보여준다. 어느 시점에서 웃어야 할지 매우 당황스러웠던 그들만의 어색한 개그 본능이 절로 떠오르는 대목이다.

앵커브리핑과 엔딩곡, 비하인드 뉴스, 팩트체크 등 뉴스룸만의 다양한 시도가 있었기에 드라마 보듯 본방사수를 하던 기억이 솔솔 피어난다. 개인적으로 그 중 단연 으뜸은 앵커브리핑이다. 어쩜 그렇게 뉴스에 딱 맞게 깔끔하면서도 뭉클한 정리를 할 수 있는지, 따로 떼 내어 한 장르가 되어도 좋겠다 싶었다.


“언론인의 역할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를 가능한 한 재미있게 만드는 겁니다.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예술가와 같은 일이지요.”


인터뷰이 알랭드 보통의 말을 빌자면 손석희는 가히 예술가라고 할 만하겠다. 그것도 언론의 현대사를 조금은 빛나게 한 위대한 예술가라고.

1988년 MBC 노조 파업 때 “공정방송 쟁취” 리본을 달고 나갈 용기도, 달지 않을 용기도 없어서 양복 안쪽 와이셔츠에 리본을 달았던 30대의 손석희는 어떻게 푸른 수의를 입고 저렇게 해맑게 웃음 띤 얼굴을 할 수 있었을까. 보도에서 내세웠던 그의 “사실, 공정, 균형, 품위”의 원칙은 그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으리라. ‘짜릿한 시작이 아닌 고통스러운 지속’, 언론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태도에도 일면 통하는 바가 크다. 삶의 변화를 위해 고통스럽지만 그 삶을 지속해 나갈 용기와 인내, 그리고 의지와 힘, 결국은 그것들이 인생이 되고 삶이 된다는.

다시 선거를 생각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레임으로 바꾸려 드는 자들로부터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 될, 진실을 잘 찾아 지켜야 할 때이다. ‘짜릿한 시작’을 말하는 이보다 ‘고통스러운 지속’을 위해 일할 후보를 알아봐야겠다. 그 놈이 그 놈이다, 도긴개긴이다 포기하지 말고 우리의 인본과 민주를 위한 안목을 발휘해보자. 그것이 나, 시민의 몫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따뜻한 맞닿음을 꿈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