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맞닿음을 꿈꾸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by 머무는바람

따뜻한 여행이었다. 일곱 개의 단편은 일곱 개의 행성을 여행하는 것 같은 새로움을 주었다. ‘SF’, ‘우주 개발’, ‘과학 기술의 발전’, 지극히 문과적인 성향의 나에게는 읽기 전부터 사뭇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과연 이러한 소재로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함이 앞섰다. 걱정과는 달리 이야기는 내가 마치 미래의 우주 어느 한구석에 있는 듯이 자연스럽게 잘 읽혔다. 일곱 개의 행성을 만나는 듯한 새로움과 동시에 미래 우주 속 등장인물들이 묘하게도 지금의 우리와 닮아 있어서일까? 미래의 이야기 속에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골똘히 공감해 볼 수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마을, 모든 면에서 완벽한 행복을 뒤로 한 채 고통과 비탄으로 가득한 시초지 지구로 떠나는 데이지와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 그들이 원한 건 자신들만의 행복이 아닌 사랑하는 존재가 억압받는 그 세계에 맞섬으로써 함께 행복해지는 일이다. 조금 더 나은 지구를 위한 그들의 선택이 지금 이 지구별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적이 위로되었다면 과언일까? 분명히 분란과 혼란이 가득한 현실이지만 사랑하는 이(그것이 연인이건, 자식이건 간에)를 위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이 가치 있는 일임을 인정하고 응원해주는 위로랄까?


최초로 외계 생물체를 조우한 <스펙트럼>의 ‘나’의 할머니 ‘희진’은 또 어떤가? ‘희진’은 낯선 외계 생물체의 삶을 이해하고 그 방식을 알아가며 존중한다. 그들의 행성을 지켜주기 위해 탈출 후 20여 년간의 시간을 떠돌기도 하고 그들에 대해 어떤 단서에도 침묵하면서 허언증 노인을 자처하기도 한다. ‘희진’의 소통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외계 생물체에게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로 관찰된다. 멀리 우주에 가 닿기 전에 나의 옆 사람에게, 나의 지구인에게 먼저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로서 귀 기울이고 도달하려는 존재가 되어 보는 것도 좋겠다.


일곱 살 이하 아이들의 뇌 속에서 사랑, 이타심, 윤리와 같은 가치를 알려주는,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 외계 생명체와의 공생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실재하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는 정신적인 것! 우리는 너무 쉽게 그것들을 지나치기 일쑤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들이 우리에 의해서가 아닌 다른 생명체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가정이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공생 가설>의 ‘수빈’이 느낀 “무언가가 아주 그리운 감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우리도 ‘류드밀라’처럼 애초에 우리가 가졌던 “그 아름다운 세계”를 잃지 않고 순수함을 지켜내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그리움 같은 아쉬움을!


‘류드밀라’를 향한 그리움은 먼저 간 가족을 잊지 못하고 기약 없는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향하는 우주선을 기다리는 ‘안나’의 그리움과 닿아있다. 백 번을 넘게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쌓아올린 그리움. “같은 우주 안에 있”다는 위로는 마음을 울리지 못한다.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 안에 있다는 사실이 그리움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남자는 이미 가족들은 세상을 떠났을 거라고, ‘안나’의 그리움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폐기돼야 할 그리움이라는 게 있는 것일까?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 그리움 아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다리는 일뿐”인 ‘안나’의 모습에서 실향민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일인지. 언제가 될지 모르는 통일을 기다리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의 그리움을 그만두라고 충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하는 이를 억압하는 세상과 맞서고 외계 생물체와 조우하며 단단한 뒷모습으로 가족을 찾아 나서는 씩씩한 등장인물들이 영락없이 여린 우리들의 모습임을 보여주는 것이 <관내 분실>이다. 망자의 ‘마인드’를 만나고 추모할 수 있는 도서관에서 잊힌 이들에 대한 탐험이 시작된다. 생전에 그리 큰 애정을 못 느꼈던 엄마의 분실된 ‘마인드’를 찾기 위해 흔적을 더듬어나가는 지민과 남동생, 그리고 아빠의 모습에서 또렷해지는 것은 생전에 외롭고 이해받지 못했던 엄마의 실체였다.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한 사람으로서의 삶! 이제는 자신이 살아낼 삶일 수도 있는 엄마의 외면당했던 삶을 제대로 목도하게 된 지민은 늦은 이해와 화해를 전한다. 도서관에서조차 ‘분실’될 정도로 흐릿해진 사람 ‘은하’가 거기에 있었다. ‘엄마’ 이전의 ‘디자이너 김은하’를 만나면서 비로소 지민은 엄마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은하’는 다시 세상의 기억과 손잡고 딸 지민의 ‘엄마로서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응원은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해서>의 ‘재경’에게서도 필요하다. 출산을 겪은 48세 비혼모, 동양인, 만성 전정기관 이상 등의 이력으로 성공한 소수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의 주목을 받는 재경. 하지만 ‘재경’은 새롭게 얻게 된 사이보그의 몸으로 우주가 아닌 바다로 뛰어들고 세간의 비판은 커져만 간다. ‘재경’을 동경한 ‘가윤’은 이모의 뒤를 이어 우주비행사가 되고 ‘재경’의 선택을 받지 못한 ‘터널 너머의 우주’를 만나게 된다. ‘재경’은 정말 아무 일도 안 했다고 비판받아 마땅한 것일까? 앞서간 ‘재경’의 길이 없었다면 ‘가윤’이 그 길을 나서기 힘들었을 수 있다. 또한 세간의 과도한 기대에 대한 부담을 우리 마음대로 재단할 일도 아니다. ‘재경’의 이야기에서 한때 한국인 최초 우주인이라 환호 받던 한 과학자가 결혼으로 국적을 바꾸었다고, 또 국민의 기대를 모았던 단체에서 탈퇴한다는 이유로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먹튀 논란에 휩싸였던 일이 상기됐다. ‘재경’을 보면서 그 우주인의 심정이 되어 읽히는 것은 왜일까? 그들은 하나의 ‘길’을 만들었고 앞선 그들의 도전 덕분에 ‘유리천장’을 깬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뜻을 펼칠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은 그렇게 존중되어야 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실행한 ‘재경’을 보고 무모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나는 용기라 읽으며 응원을 보내게 된다.


쓸쓸하고 아쉽고 안타까움의 와중에서도 역시 따뜻한 여행이었음을 다시 느낀다. 공상과학, 미래의 우주, 행성과 외계 생명체...... 미래의 이야기였음에도 능히 지금, 이 순간 마주칠 수 있는 사건들이라고 생각이 드는 건 아마도 이 이야기들의 뿌리에 사람에 대한 고민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의 세계가 이상적인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둘 중의 하나라는 식의 질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먼 미래에도 우리는 여전히 지금처럼 사람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져야 할 것인지, 인간성의 가치를 어떻게 유지할지를 끊임없이 질문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질문의 답은 결국 나는, 우리는, 그리고 인간은 어떤 시간을 살든 그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존재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시간에는, 우주의 시간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짙게 쌓일 것이다. 서로에 대한 따뜻한 맞닿음을 꿈꿀 수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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