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나의 문장이 되었다

-신경숙의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고(2021.09)

by 머무는바람

아버지에게도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까? 언뜻 쉽게 넘겨버린 의문에 훌륭한 대답을 해 준 책, <아버지에게 갔었어>. 엄마의 사랑보다는 한 걸음 물러선 그 속 깊은 아버지들의 사랑을 담담하게 보여주어 책을 덮고 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의 암전에 빠지기 일쑤였다. 어느덧 1주기 앞으로 다가온 아버지의 기일과 비슷한 시기에 읽게 되어 마음에 남는 장면들이 유독 많았다.


엄마의 입원으로 홀로 J시의 오래된 집에 남게 된 아버지. 딸을 잃고 글쓰기도 멈춰버린 ‘나’가 아버지의 집에 오면서 한 사람으로서의 아버지를 오롯이 목격하고 읽어내는 과정이 그려진다. 요란스럽지 않은 작가의 문체는 그 과정의 진심을 깊이 새긴다. 불시에 세 아들을 잃은 애끓는 부모의 장남, 혹은 작은 어깨로 가족을 지켜야 했던 어린 가장, 한국전쟁부터 4.19혁명, 소몰이 시위의 역사 속 장면을 나이테처럼 그어나간 증인으로서의 아버지가 비로소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펼쳐 보인다. 그저 자식들에게 ‘어느 날의 바람소리’처럼, ‘겨우 메워져 덩어리진 익명의 존재’처럼 막연했던 아버지는 이제 막 희로애락의 구체적인 삶이 되어 긴 그림자를 끌고 또렷이 다가온다.


‘살아냈다’는 말이 이토록 물기를 머금은 단어로 다가설 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그것도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다는 아버지의 고백은 숙연한 선언같이 들렸다. ‘내게는 황송한 내 자식들’이라는 말에서 차마 그 말을 적어내려 가지 못하는 ‘나’처럼 마음 한켠이 툭 꺾여나간다. 아버지를 읽어내려 가며 글쓰기를 이어가는 ‘나’는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의 위로를 받기만 한다. 아버지에게도 필요했을 누군가의 위로, 약해질 때마다 다잡아주는 강건한 시선이 너무나 옹색했음을 그제야 깨닫는다.

자식들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겁이 더럭 났다는 아버지, 그들도 부모가 처음이었던 거구나. 자식을 길러내는 매순간이 불확실한 도전 같은 거였겠구나. 그 마음이 언젠가의 나와 꼭 닮아 있었다. 자식들에게 언제나 든든한 풍경이 되어줘야 한다는 신념은 또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두려움이 됐을까?


우리 남편은 오래 병석에 계시던 아버지를 10살이 되던 해에 잃었다. 병으로 힘드셨던 시아버지는 어린 남편에게 삶에 대한 원망을 퍼부었다고 한다. 당신 기분에 따라 학교도 못 가게 하고 답답함을 끝없이 토해내셨다. 자식을 다 키우지도 못한 채 떠날 날을 받아놓았던 시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더 이상 어린 아들의 풍경이 되어 주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의 그 두려움과 암담함,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얼마만 했을지는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어느 날 남편이 문득 그런 말을 했었다. 자기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와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을 거쳐 가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될 지 사실 잘 모르겠다고. 아버지는 어린 자신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하고. 그제야 원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리라. 자신과 다름없는 자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냥 잘 하면 되지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심상히 넘긴 그 말이 책을 읽는 내내 맴돌았다. 어쩌면 남편도 아버지로서 막막하고 외로웠던 게지. 무심했다. 아버지의 삶을 살고 있는 남편의 등 굽은 뒷모습이, 언젠간 그 길을 걸어갈 두 아들들의 해맑은 웃음이, 서늘한 시간이 되어 목에 맵게 걸려 아프다.

수묵화의 묵직하고 굵은 붓 선을 닮은 아버지들의 결 다른 사랑은 온화하다. 아버지와 큰오빠 사이에 오간 편지가 그 온화한 사랑의 다른 모습이다. 그토록 간명하면서도 진솔한 사랑이 담긴 편지는 읽는 내내 따뜻했다. 서로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한없이 공명하는 활자들에서 빙글대는 가족의 행복감. 아버지에게서, 남자 형제들에게서, 그리고 남자 조카에게서 듣게 되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그만큼의 두려움이 인생이 되고 삶이 되었고, 그리고 되어 간다는’ 똑같은 고백이 마음을 치고 간다. 자식들 덕에 살아내고 버텨냈다는, 다 주고도 고마워하는 그 마음은 스스로가 대견해도 좋을 행복 그 자체이다.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는 시간, 고모의 이야기로만 엄마의 이야기로만 이해하던 아버지의 마음을, 그 삶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이야말로 가족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지난 해 예상치 않게 아버지와 이별했다. 쓰러지시기 며칠 전 침대 끝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가족 살면서 너희들 다 힘들게 한 적도 있지만 내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 아버지는 떳떳하다”라며 평소에 안하시던 말씀을 하셨다. 막내인 나는 아버지의 힘든 시간을 옆에서 함께 보냈었기 때문에 쑥스럽지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맞는 말이라고, 당신 아니었으면 그 어려운 시절을 어떻게 건너왔겠냐고, 아버지니까 한 거지 아무나 못한다고, 대단한 거라고 말했던 것이 불시에 아버지를 보내고 내내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미처 감사하다는 말은 못했지만 아버지가 잘 살아오셨음을 말씀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넉넉하고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으나 그나마도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나에게 “내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 아버지는 떳떳하다.”라는 문장이 되었다.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또 하나의 문장을 만났다.

“濟州人으로서 감귤 나무 한 그루 가지지 못했지만, 뒤돌아보면 屈曲많은 生을 열심히 살아 왔다. 가지지 못한 것에 욕심내지 않고 남은 生이 있음에 感謝하며 살리라.”

10여 년을 훌쩍 넘긴 낡은 수첩에 꾹꾹 눌러 써진 아버지의 문장. 아마 암 수술을 받으러 서울로 올라가실 때 남겨 둔 글귀인 듯 했다. 그때 사실 위암 말기 판정이 난 걸 아버지에게만 비밀로 해서 오빠들이 있는 서울 병원으로 모셨었다. 기운을 잃으실까 봐 정확히 검사를 해서 마음을 놓자는 의미지 병세가 심한 건 절대 아니라고 엄마와 우리 4형제는 입을 맞췄었다. 이제 보니 아버지는 벌써 알고 계셨던 거다. 그러면서도 알았다 하시며 홀로 수첩에 유언이 될지도 모를 이 문장을 새기실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외롭고 두려우셨을까 뒤늦게 가슴을 쳤다.

쓰러지시던 날 아침, 출근하는 나에게 집에 좀 들릴 시간이 없냐고 조심스럽게 물으시던 아버지. 끝나고 들르겠다고 대답한 내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때 잠깐이라도 아버지에게 갔었다면 이렇게 후회가 되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아버지는 나에게 평생 읽어 내야 할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 되었다.


삶은 늘 이렇다. 아버지의 삶이 문장이 되고 자식들은 늦어서야 그 문장을 읽어낸다. 일찍이 갖지 못하던 회한에 쌓인 채 그제야 비로소 한 사람으로서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엄마한테 한 번씩 이것저것 물어보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 친구 분 중에 똥복쟁이 삼춘은 왜 똥복쟁이가 되었는지, 10원 짜리 화투를 치던 삼춘(제주에서는 이웃 어른들을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삼춘이라고 한다)들이 싸운 이유는 뭔지, 옛날에 마을마다 돌아다니던 장사치한테 들였던 칼국수 기계는 아직도 있는지, 부모님이 찍은 옛 사진은 어디서 찍은 건지.

갑자기 가버린 아버지 때문에 생긴 버릇이다.

이제는 찾아갈 아버지가 없어서 한없이 불쌍한 나의 쓸쓸함이 주인 잃은 낡은 방안으로 깊숙이 떨어져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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