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으로 봉사활동을 간 여자친구가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전형적인 산골 동남아 학교의 교실과 건물들이었다. 하지만 그 공간들에는 어떠한 생소한 이질감이 깃들어 있었다. 뭐랄까, 따뜻했다. 따뜻한 공간이라... 머릿속의 점들이 이어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 점들이란 무엇인가. 내 머릿속에는 이상할 정도로 구체적인 기억들이나 단편적인 사실들이 머리를 떠다니고 있다.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은데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열심히 아우성치는 그런 기억들. 장면들. 어쨌든 내게 의미가 있으니까 시간의 풍화를 견딘 걸 텐데, 그 의미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그런 수많은 점들이다. 어렸을 적 소파에 올라가 쏟아지는 비를 관망하던 기억, 유치원에 많았던 부러진 장난감들, 영국에 놀러갔을 때 마주한 막다른 길, 지방에 내려갔을 때 잘못 내려버린 빈 지하철역 등등등 굉장히 사소하고 아리송한 것들 투성이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이런 점들 중 몇몇이 엮여서 의미를 가짐을 인지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지, 그 점들은 원래부터 의미를 가졌었고, 그 의미는 내 행동원리의 한 조각이 되어 기능해왔다. 나는 그 점들을 엮는 실을 재발견하는 셈이다. 그것이 점들이 이어지는 감각이다. 어제 서술했던 덕후에 관한 깨달음도 약간 다르긴 하지만 이어진 점들의 영역에 발을 담그고 있다.
나는 내가 어릴 적 살던 아파트 입구의 으슥함, 그곳을 비추던 여름빛의 따스함, 집 앞 상가의 골프연습장 냄새, 처음 본 무당벌래의 기이함, 고즈넉하게 낙후된 길들의 외로움을 상냥한 시선으로 추억한다. 이 점들은 따뜻한 공간이라는 관념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그제 깨달은 것이다. 사실 그 따뜻함이라는 게 뭐냐 묻는다면 여자친구의 말처럼 "묘한 아름다움"이라고밖에 못하겠다. 그게 가장 적확한 표현이다. 진실된 삶의 향이 담긴 공간이라 해야하나. 위선적이지 않은 공간? 사랑받는 공간? 눈웃음을 지으며 인지하는 공간? 너무나도 포근한 나머지 사람들이 현재를 살아가게 하고, 모든 게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존재하게 하는 공간. 보통 어릴 적 속해있던 공간들이 대부분이다. (여자친구의 사진 속 공간들도 어린아이들이 사용하는 공간들이었다.) 당연한 수순이다. 우리는 좋든 싫든 살면서, 그런 따뜻하지 못한, 차갑다 못해 영혼을 잃어버린 각자만의 공간들에 훨씬 더 오랜 시간 속해 있다. 감옥같은 중학교, 정신병원같이 흰 유치원 교실, 개성없는 상가의 추한 뒤편, 똑같은 모습으로 메말라있는 아파트들, 삭막한 학원가. 그런 사랑받지 못하는 공간 속의 사람은 공간의 생기를 빨아먹고, 공간은 사람의 개성을 빨아먹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생한 채 모두가 스스로를 조금씩 잃어간다. 시간이 지나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할 때쯤 차가운 공간은 일상이 되어있다. 나처럼 따뜻한 공간이 낯설고 묘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차가운 공간으로 둘러싼다.
내가 걷기를 극도로 꺼려하는 그런 특정한 공간들이 있다. (그 사실 또한 내 머릿속을 유영하는 한 점이었다.) 저 공간들이 뭐길래 나는 근처에 가지도 않으려 할까. 정말 오랫동안 궁금해했다. 그 공간들은 내 삶 속 가장 차가운 공간들이었다. 죽어버린 공간을 거니는 것이 모두의 일상이었을지언정, 나는 그 공간들이 내뿜는 좀스러운 한기를 알게모르게 거부해내고 있었다. 아직 마음속에 따뜻한 공간의 점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경우, 정말 다행히도 그 점들은 먼 과거에만 포진돼 있지 않았다. 몇 년간 거의 내일 들렀던 국어선생님의 교실, 그리고 잠시 이틀간 머물렀던 국어선생님의 통나무집, 빛나는 눈을 가진 친구들의 방과 그곳에서 오간 담소들이 따뜻한 공간의 존재를 내게 무의식적으로 상기시켜줬다. 막상 그 당시에는 그 공간들이 마냥 정겨울 뿐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정겨움 이면에는 더 묵직한 의미가 있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따뜻하거나 차가운 공간은 심리적인 관념이다. 같은 물리적 공간이더라도 당연히 개인의 서사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다르니까. 물론 우리가 거쳐가는 물리적 공간의 대부분은 차갑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공간이라는 건 어쨌든 인간과의 상호작용으로 탄생하고 죽는 데다가, 워낙 모호해서, 내가 어느 정도 그 존재와 구성을 주도적으로 주무를 수 있다. 내가 학교라는 차가운 공간 안에 국어선생님 교실이라는 따뜻한 공간을 마련했듯이 말이다. 그래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단계는, 내가 사진 몇 장에 얽힌 사유로 따뜻한 공간이라는 개념을 되찾았듯이, 일단 그 개념을 확실히 재발굴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정말 의지와 마음가짐의 문제 아닐까 싶다. 따뜻한 공간의 조건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니, 그 조건을 지향하며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그 공간에 누가 있기를 바라는가? 나는 그곳에서 뭘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중얼거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