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 목요일 아침, 점심을 먹으며 나중에 볼 동영상에 저장해놓은 빈티지 가구에 대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가구 하나하나의 이름과 특징을 세세히 열거하며 나도 저렇게 한 분야에 깊숙이 파묻히고 싶다고 생각하던 와중, 그 유튜버는 스스로를 가구 덕후라 지칭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일련의 점들이 연결되는 듯했다. 그리고 꼭 방금 깨달은 내용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여태까지 그 무엇도 사랑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비슷한 시기에 깨달았다. '사랑이란 뭘까'라는 문학소녀 같은 고민을 하던 와중 '나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상당히 존재론적인 의문도 나를 강타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저 영상을 보다가 불현듯 느꼈다. 우습게 들리지만, 나는 덕후가 되고 싶어한다. 내가 말하는 덕후란 무엇일까. 흔히 사회성도 없고, 괴짜같은 사람을 덕후라는 개념과 결부짓지만, 덕후라는 건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어떤 개념이냐 분야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예로부터 인복이 있어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나를 둘러싸 왔다. 그리고 소름끼치게도, 내가 친구로 여기는 아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덕후였다. 누군가는 역사와 정치를 사랑했고, 누군가는 벌레를 사랑했으며, 누군가는 언어를 누군가는 예술을, 모두들 무언가를 열심히 사랑해내가고 있었다. 내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친구일수록 더 깊이 무언가를 사랑했다. 반면 나는, 이런저런 무언가를 좋아하긴 했지만 사랑하지는 못했다. (않은 건지, 못한 건지는 애매모호하다만) 그래서 여태껏,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그런 독특한 친구들을 사귀어왔던 것이다. 나도 그들 같아지고 싶었으니까.
내 행동원리의 큰 가닥을 하나 잡아내서 무척 기뻤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하나.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었는데, 왜 이제야 눈치챈 건지 살짝 어이가 없기도 했다. 어쨌든 향후 삶에 대한 방향성이 미약하게나마 잡힌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앞으로 뭐하고 살래'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진짜 모르겠다" 대신 반쯤은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으니까. 근데 어떻게 하는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왜 나는 못하는 걸까. 내가 누군가에게 곁을 절대 내주지 못하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친밀하더라도 한 명을 제외한 그 누구와도 일정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그게 비인간적 관계에까지 적용되는건가. 아니 애초에 비인간 인간 나눌 것 없이 그냥 내가 곁을 내주지 못하는 건가. 일단 곁을 못 내준다는 건 확실한데, 그러면 비인간에게는 왜? 가 내가 대답해내야하는 질문 되시겠다. 사실 '인간'에게 왜 곁을 못 내주'었'는가에 대한 대답은 이미 했다. 그냥 내가 너무 까다롭고 이상론을 펼쳐서 19년간 그럴만한 인간을 못 만났던 것이다. 너무나 명쾌하고 대책없다.
하지만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 인간은 거기에 없다. 그래서 거기, 즉 내가 인지 가능한 범위 내에 나타나기를 기다려야한다. 한편 비인간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이미 내 인지가능범위 내에 놓여있기에 그냥 쓱 보고 집어들면 된다. 서로간에 오가는 상호작용의 질감과 방법론도 판이하게 다르다. 인간간의 상호작용은 양측 모두에게서 촉발될 수 있는 반면, 비인간간의 상호작용은 언제나 인간측에서 기원한다. 그리고 전자는 매게를 요하지만, 후자는 매게를 딱히 요하지 않는다. 즉, 어찌됐든 일단은 인간이 다가가야 한다. 어쩌면 그게 핵심일지도? 집어드는 것도, 상호작용을 개시하는 것도, 다가가는 것이다. 나는 보통 다가감보다는 다가옴을 당하는 편이였고, 최근에서야 다가간다는 것을 서툴게 이뤄내는 중이다. 다가간다는 것은 단순히 먼저 말문을 연다는 정도가 아니다. 내가 먼저 온전하지는 않을지언정 약간이나마 곁을 내주어야 한다. 나는 그걸 못한... 이제는 과거형이려나. 할 수 있을지도? 어쨌든 사람한테 다가가는 것보다는 쉽긴 할거고, 언제든지 끊어내도 무방한 그런 관계 아닌가. 그렇다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근데 비인간이라는 건 너무나도 많다. 정말 너무나도 많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인간은 그 수가 명확히 제한돼 있지만, 내가 접할 수 있는 비인간은 (인터넷 덕분에) 한도 끝도 없다. 당장 내 친구들만 해도 비인간적 관심이 정말 다양한 곳을 향해있다. 철도, 항공, 언어, 그래픽 디자인, 역사, 유럽사, 지질학, 등등등. 도대체 어떻게 누구를 골라서 다가가야할지 곤란할 따름이다. 하지만 조금 생각을 전개해보니 이런 가설도 떠오른다. 내가 마음에 드는 인간에게 나도 모르게 다가가듯이, 이미 과거의 내가 어느 정도 다가가놓지 않았을까. 그러면 선택지가 엄청나게 한정되긴 한다. 어디보자, 건축, 글쓰기, 일문학, 코딩...? 더 있을텐데 막상 떠올리려니까 머릿속이 텅 빈다. 만약 내가 끌리는 것이 그 비인간적 개념 자체가 아니라 그 개념이 내포하는 어떤 형질이라면? 예컨대 창작의 즐거움이라던가, 논리의 전개 및 탐구, 미적 감상 등등등.
가끔, 아니 자주 이렇게 시작하기도 전에 질문이 너무 많아진다. 그러다 쉬운 일을 어렵게 부풀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경험상 이럴 때는 내 성격과는 정말 맞지 않지만 무작정 시작해보는 게 좋다. 하나씩 다가가 볼까. 근데 어떻게 다가가지? 친구들한테 물어볼까? 책을 사? 유튜브? 아 모르겠다. 그냥 직감에 맡기련다. 이러면 항상 끝끝내 어찌어찌 잘 풀린다. 중간에 좋은 조력자가 뿅하고 나타나기도 하고, 그냥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기도 한다.
글을 쓰겠다는 선언이 무색하게 바로 더 중요한 일 겸 프로젝트가 제 일상에 나타나버렸습니다...그래서 몇 달에 걸쳐서 글쓰기를 등한시하고 있었네요. 그 프로젝트들이 끝난 몇 주 전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기는 매일 쓰고 있고, 일기에서 한 사유 중 가치있는 것을 뽑아내 수필로 쓰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