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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이야기꾼 Aug 12. 2023

세상의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

영화 나의 마더 리뷰

평소에 정말 보고 싶었지만 계속 미루고 있었던 영화다. 원래 SF 영화를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특히 영화의 어떠한 철학 없이 액션만 화려한 영화라던가 아니면 너무 뻔한 신파가 들어가서 그런것 같다) 조금 귀찮기도 해서 미뤘지만 왠지 느껴지는 심오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서 괜히 기대를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단순히 신 인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세지가 있었다.




우선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 초반에 나온 장면이었다. 딸이랑 마더가 한 논쟁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벤담의 공리주의 철학으로 오늘날 복지나 여러 분야에서 논의가 많이 되고 있는 이론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학을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해야하며 그 연구한 법칙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통제해야 사회가 진보하는 콩트의 주장을 통해 공리주의에 대한 딸에 생각이 더 극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에 반박하며 마더는 모든 인간은 고유한 생존권과 가치가 있지 않냐고 반박했다. 이렇게 감독은 기본적인 두 가치를 은연 중에 드러내며 영화의 서사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누구나 생존권과 행복 추구권이 있잖아?


이 두 이론에 대한 마더와 딸의 행동은 역설적으로 나타났다. 모든 인간은 고유한 생존권과 가치가 있지 않은가라고 주장했던 마더는 더 나은 세상 즉 새로운 다수를 만들기 위해 현재 비윤리적이고 부패한 인류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다수를 위해 개인 혹은 소수가 손해를 봐야한다고 주장하던 딸은 광산에 있는 그 소수의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이 역설을 통해 마더는 신인류의 시작이 되는 딸에게 두 가지 이론을 모두 이해시키려고 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밖에서 들어온 미스테리한 여성도 아마 그 실험실에서 양육된 일종의 실패작(?)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그냥 죽인 실패작들(물론 그 과정에서 쌓은 유의미한 데이터들도 있을 것이다)과는 다르게 신류인 딸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더 많은 데이터를 쌓기 위해 그냥 살려둔 마더의 계획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딸이 모든 준비를 다 마쳤다고 생각한 마더는 엄청난 식량(옥수수밭)을 두고 딸의 곁에서 과감하게 떠났다. 그렇게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는 것이 이 영화의 결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마더는 두개의 이론을 동시에 이루려고 한 것 일지도 모른다.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은 결국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우월한 능력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원리이다. 마더는 처음부터 정말로 고유한 생존권과 가치가 있는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 밴담의 공리주의를 실현시키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고유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보통 이런 신인류의 탄생과 관련된 영화는 노아의 홍수를 모티브로 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인류의 멸망에 이은 새로운 인류의 탄생 과연 이 영화의 감독은 어떤 결말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노아의 홍수처럼 멸망한 뒤 신인류는 똑같은 행동 양상을 가지며 타락의 길로 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한편 딸이 마더의 교육을 통해 얻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지식들로 정말 모든 인간이 고유한 가치를 가지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노아 시대에 홍수로 인해 세상은 신인류로 다시 살아간다. 


이 글을 쓰면서도 새로운 생각들이 나고 다양한 가치들이 충돌하는 것 같다. 그만큼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져주는 것이 많고 잘 짜여진 구성과 스토리 라인 이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반전도 나름 루즈 했던 결말을 끝까지 끌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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