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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Jul 14. 2018

#90 <땐뽀걸즈> 그저 재미있던 걸요?

<땐뽀걸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대 시대, 그때도 우린 춤을 췄다. 종교의식을 차치하고서라도 원시인들은 춤을 통해 감정표현을 했으며, 흥이 오르면 황홀경에까지 이름으로써 '의도적인 즐거움'을 맛보았다고 추측한다. 의도적인 즐거움. 춤을 추면 왜 즐거울까?


'춤'이란, 몸이 가진 '유동성'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리듬 하나하나를 붙잡기 위해 우리는 일상에서 쓰지 않은 근육을 이용하고, 몰입하게 되면 일상 속에서 억눌린 감정도 분출하게 된다. 경직된 근육은 유연해지고,  기계적인 감정도 어느새 생명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춤이, 만인이 사랑하는 보편적인 예술이라는 점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구조조정 중인 조선소가 가득한 거제도. <땐뽀걸즈> 스틸

여기 춤으로 세상과 하나가 되는, 혹은 세상과 맞서는 8명의 아이들이 있다.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보다 조선소 취업으로 이어지는 이 곳, 거제여상에서 8명의 아이들은 '땐(스) (스)뽀(츠)' 대회를 준비한다. 물론, 처음엔 그들의 자의는 아니였다. 학교에 잘 나오지 않거나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떈뽀'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제안한 사람은 다름 아닌, 체육선생님.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미 이전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땐스 스포츠를 가르치기 위해 서울을 오가며 연수를 받은 경력이 있는 열의에 가득찬 선생님이다.  
 

일상은 재미없고 조선소 취업은 해야겠고. <땐뽀걸즈> 스틸

본래 KBS 스페셜 다큐로 제작되었기에 작위적인 장면보다 있는 그대로의 리얼한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일반적인 좌충우돌 청춘 영화였다면 아이들의 서사를 차례로 풀어나갔을 텐데 여기선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선생님과 다함께 춤 연습하는 씬들이 주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장이 되어야 했던 아이, 재교육을 받기 위해 아빠가 서울로 떠난 아이, 동생과 함께 사는 아이 등 각자의 사연 있는 아이들이였다는 사실은 영화의 중반부 가서야 알게 되었다. 그저, 초반부는, '학교에 무관심한 아이들', '그렇지만 그자체로 아름다운 아이들이', '친근한 아빠같은 선생님과 함께', '댄스 스포츠를 배운다' 정도였다. PD는 그저 아이들이 연습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듯 했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땐뽀' , 아이들에게 가장 재미있는 놀이다. <땐뽀걸즈> 스틸

그토록 학교라면 질색하는 아이들이 댄스 스포츠를 선뜻 시작하고,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앞서 말한 '춤'이 가진 특징 때문이다. 경직된 일상에 바람을 넣어주는 것. 학교 수업으로 가득찬 일상에, 이미 생계전선에 뛰어들어 바쁜 일상에 숨통을 터주는 것이 바로 '댄스 스포츠'다. 이른 나이에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현빈'은 피곤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고 언니에게 말한다. 춤추러 다니는 것. 힘들지만 재밌다고 말한다.      


공연 당일날 멋진 무대는 다함께 하는 연습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땐뽀걸즈> 스틸 

그러나 '춤' 만으로 아이들을 끌어모을 수 없다. 천방지축 아이들을 모아주는 무언가, '대회' 라는 목표는 아이들이 매일 수업을 마친 후, 의무적으로 춤연습을 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목표가 없었다면 아이들이 춤연습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가 있었기에 과정이 중요해졌다. '목표'에는 강제성이 불가피하지만, '과정'에는 자발성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자발적으로 연습에 참여함으로써 아이들은 무기력한 일상에 활기를 되찾아갔다. 수동적인 객체에서 주체성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대회 당일날 무대를 잡는 카메라도 완성된 공연을 보여주는 게 아닌, 아이들 각자 동작 하나하나를 과거 연습 장면과 교차하며 보여준다.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공유하는 경험도 아이들을 이끌었다. 댄스 스포츠는 홀로 유려하게 공연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 장르다. 음악 뿐만 아니라 파트너의 반응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것은 함께 춤을 추고 있다는 연결되는 듯한 감정을 준다. 간혹 다같이 연습이 끝난후 선생님이 사온 치킨을 먹는 시간도 함께 공유된 감정을 선사한다. 동시에 힘듦 또는 성취감을 느끼고, 동시에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감정과도 대체될 수 없을 것이다.


칼군무 뿐만 아니라 파트너 간 호흡이 중요한 '땐뽀' <땐뽀걸즈> 스틸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사람이 있었다. '땐뽀 동아리'를 만든 것도, 아이들을 연습시키고 동기부여하는 것도, 야식을 사오는 것도, 그 중심에는 선생님이 있었다. 연습에 빈번하게 불참하는 현빈과, 그런 현빈을 걱정하는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현빈은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어려운 집안 사정을 떠듬떠듬 이야기하고, 선생님은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리고, '그래서 술 뭇나'라고 던지듯 묻는다. 더 깊이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의 상처받은 내면 속 깊은 감정까지 구태여 물어보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이후 '선생님은 몰랐다. 네 사정 알았으면 여기 들어오라고 말도 못 꺼냈지' 라고 담담하게 공감해줄 뿐이다. 공감하는 선생님. 이런 선생님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선뜻 춤을 배우려 하고, 춤추는 것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거제여상팀은 댄스 스포츠 대회에서 입상을 한다. 입상소식을 먼저 알고, 이를 아이들에게 전하는 선생님의 표정은 모든 걸 가진, 행복감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이었다. 입상한 사실도 기쁘지만, 이 소식을 알게 된 아이들의 모습에 더 행복해한다. 아이들도 기뻐한다. 거의 처음으로 노력해서, 그것도 함께 이룬 것이기 때문에. 그 행복감은 스크린을 뚫고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내게도 전해져 왔다. 결과적으로 상을 받아서 느끼는 성취감이라기 보다, 지난한 연습 과정, 그리고 공연까지 일련의 프로세스를 함께 거쳤기에 느낄 수 있는 뿌듯함 그리고 후련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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