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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Jun 16. 2019

<기생충>, 우리가 불편해하는 이유  

본문은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재밌었는데, 좀불편했어


불편하다. 영화를 본 후에 흔한 관객들의 반응들이다.


일단 영화가 재밌었던 이유는 실생활에서 쉽게 볼 법한 갑과 을의 이야기를 녹여냈기 때문이다. 평소에 마주하는 갑-을의 관계성 이야기로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지만 영화 특유의 유머코드로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갑-을의 이야기의 진입장벽을 낮춰 관객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모두 일자리를 구했다고 좋아하는 기택이 식구들. <기생충>의 공식스틸컷

가령 기택(송강호)의가족이 ‘생존’을 위해 동익(이선균)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입담과 연기자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유쾌하게 풀어냈다. 연기자의 능청스러운 행동과 달리 한 명씩 집에 들어갈 때마다 뜬금없이 웅장하게 흘러나오던 클래식 음악은 묘하게 잘 어울렸다. 마치 영화의 뒷이야기를 암시하는 복선처럼.


다혜와 기우, 그들이 둘만 있을 떄 프레임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기생충>의 공식스틸컷

우리에게 첫 번째로 ’불편함’을가져다주었던 씬은 과외선생님 기우(최우식)가 다혜(정지소)에게 입을 맞추는 장면이다.다혜 역시 기우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로 이뤄진 행위이지만, 우리는 여전히불편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일단 둘의 관계가 성인-학생의 신분이라는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학생이었던 다혜가 과외 선생님 기우를 남자로 보게 된 계기가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기우가 다혜를 다그치며 했던 행동(팔목 잡는 행위) 때문이다. 사소한 행동일 수도 있지만, 세상 밖을 잘 알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어떤 ‘설렘’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서도 안되지만) 선생님이라면 ‘선’을 엄격하게 지켜야하는데, 지키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기우는 자발적으로 선을 넘었다. 본능적인 행동일 수도 있고, 자신과는 상반된, 모든 것을 다 가진 민혁(박서준)에 승리의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후자의 이유도 있기 때문에 영화 후반부에 그는민혁이 집안 가보 중 하나라고 준 돌을 들고 다니며, 자신의 현 위치를 지키기 위해(들키면 다시 시궁창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문광의 가족을 음해하기 위한 무기로 활용하지 않았을까.    

기택과 충숙.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장난'이었을까. <기생충>의 공식스틸컷

두번째, 관객의 마음을 불편함으로 일렁이게 한 씬은 바로 동익의 가족이 캠핑을 나가고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기택의 가족이 술판을 벌일 때다. 프레임 밖의 관객들이 누군가 집안에 들어올까봐 노심초사하는 상황에서 기택의 가족은 오늘만 사는 사람들처럼 술판을 늘어놓는다. 관객들의 긴장이 풀어질 때 즈음 충숙은 농담으로 기택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 늘상 충숙 앞에서 기를 못 펴는기택이지만, 이번에는 기택은 충숙에게 손찌검을 하려고 한다. 순간차가운 기류가 흐르고, 그네들의 자식들은 “진짜로?” 라는 장난 식의 말을 던지며 사소한 일인 것처럼 취급한다. 기택은다시 눈빛이 온순해지며 마치 자기가 한 행동이 연기인 마냥 넘어간다. 그저 그네들이 장난치던 평소 일상처럼. 이는 후반부에 동익의 부부가 ‘냄새’로 기택을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을 때, 기택이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전개로 이어진다. 사실상, 일상과 폭력/살인 따위의 악행의 간격은 멀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군데군데 불편한 요소들이 묻어있는 국면에서 우리의 불안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기폭제는 바로 집의 지하에서 문광(이정은)의 가족이 기생충처럼 숨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목격하면서부터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아마도 감독이이 스포를 우려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이 집안의 돈을 차지할 수 있는 ‘기생충’ 자리를 위해 혈투를 벌인다.차마 그들이 동경하는 혹은 혐오하는 상층 세력 기택의 가족에게 총알을 겨누지 못하고, 을과 을이 서로의 목을 향해 칼을 겨눈다. 우리는 결정적으로 이곳에서 불편함을 마주한다.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는 ‘갑이 을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나 생각’을 비난하지 않고, 비슷한 처지의 을과 을이 잔인하게 싸우는 장면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딘가 모르게 친숙한 기택의 동네. <기생충>의 공식스틸컷

갑-을의 관계가 일상적인 우리 사회에서 바로 ‘우리’, ‘나’의 이야기이니까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회의감을 느낀다. 문광의 남편 근세(박명훈)가 카스테라 사업이 망했다는 이유로 빚 독촉을 피해 큰 저택의 지하실에 숨어 유아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비정상적으로 저택의 주인 기택을 신봉하는 장면에서는 끔찍함 뿐만이 아니라 잠깐의 실수로 몇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을 초래한다는 현실을 절감하게 한다. 이때 우리는 비정상적인 사회의 현실과 개개인의 상태를 되돌아보게 된다.  


영화의 ‘결’ 부분이기도한 다송(정현준)의 생일 날, 상류층이 모인 자리에서 근세는 살인을 저지른다. 아내(문광)의 죽음, 수십년간숨어 살아온 그의 시간들이 감정을 대변하듯 폭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그의 비도덕적이고 극악무도한 행위는관객들을 경악케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유 모를 불편함을 느끼도록 한다.근세가 느끼는 감정 역시 우리가 느껴오던 감정의 경계와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갑-을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억울, 분노 등의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갑에 대항해도 바위에 계란 치는 격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쉽게 ‘단념’해버리는 반면, 영화속 근세는 그렇지 않다. 그의 감정을 비도덕적으로 표출한다. ‘그가살인을 저지를 만큼의 죄를 저지른 범죄자이지만 우리는 그와 유사한 감정을 느낀다’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다시 기택의 식구는 원점, 아니 원점보다 더한 극악의 형편에 놓인다. 그리고, 개개인의 노력으로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도 보여주지 않는다.그저 희망을 기원하는 우식의 독백으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자 다짐하는 우리의 모습과 유사한 장면으로 마무리될 뿐이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기택의 일상. 이곳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까. <기생충>의 공식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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