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런 남자.Ⅰ

버스 길게? 쓴 글_'必須多言 & 수다에 뭔 요점??'이란 글을 다듬다.

by leehyojoon ARCH

버스에서 길게? 쓴 글_'必須多言 & 수다에 뭔 요점??'이란 글을 다시 다듬어 올립니다.

수다스런 남자.Ⅰ


1. 필수다언

새벽 1시 7분의 버스는 거의 비어 있었다. 종각역까지 가는 심야버스. 창밖으로는 서울의 잠들지 않은 불빛들이 흘러갔다. 나는 휴대폰 메모장을 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必須多言.


필수다언. 내가 만든 조어다. 不須多言, 불수다언에서 '불'자를 빼고 '필'자를 넣었다.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뒤집어서, 반드시 여러 말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바꾼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글이 너무 길다", "요점이 뭐냐", "좀 줄여 달라". 하지만 나는 요점이 없는 인간이다. 어떻게 요점만 이야기하고 살 수 있나?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수다를 무척 좋아한다.


수다에 뭔 요점이 있나?



2. 심해의 물고기

버스가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그 진동 속에서 나는 계속 글을 썼다. 한 자 한 자, 전각을 새겨 넣듯이.


심해에 사는 물고기일수록 피부는 더 연하고 물렁물렁하다고 한다. 물의 압력을 견디려면 역설적으로 더 부드러워져야 하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도 망치 든 건축가인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투쟁이 아니다. 세상을 향해 던지는 포효가 아닌, 단지 쫑알거림이다. 사람과 나누는 '수다'이다.


과묵한 남자는 압력이 없는 걸까? 그런 건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나는 수다스런 남자로 살기로 했다.



3. 황해의 밥상

나홍진 감독의 영화 『황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대개 초반의 액션 시퀀스를 말할 것이다. 칼에 찔리고 도끼 휘두르고, 선혈이 쫄쫄 흐르는 장면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다른 장면이다.


하정우가 중국에서 밀항한 후, 허름한 민박집에서 눈을 뜨는 장면. 얼굴은 까칠하고 눈은 충혈되어 있다. 요즘 배고픈 나처럼. 입에서 허연 김이 담배연기처럼 새어 나오는 겨울이었다.


밥상에는 김과 김치, 냉면그릇에 담긴 밥이 전부다. 제대로 된 밥그릇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그리 초라했을까? 하정우는 찢어질 듯 입을 크게 벌리고 밥과 김을 구겨 넣는다.


배우의 '먹는 연기'가 죽이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을 생략해도 영화의 플롯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밥을 향해 맹렬히 숟가락질해야 했다. 여기에는 단순히 '입으로 씹어서 뱃속으로 들여보내다'라는 '먹다'가 아닌 다른 무엇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먹기 전과 먹은 후가 다르다는 것. 그가 밥을 먹는 모습으로 죽음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것. 이 영화에서 밥은 곧 삶이었다.



4. 고도를 기다리며

내가 비를 기다리고, 언제고 비가 오길 고대하듯,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자신의 어제를 기억한다. 그리고 내일을 기약한다.


그가 깨어있음으로 해서, 그리고 그와 함께 친구 에스트라공이 계속 고도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릴 것임을 알기에, 그가 그리는 세계가 그리 허망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릴 테니까.


그들처럼 내 삶도 허망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여전히 비를 기다릴 것이다.



5. 현장의 밥

일상으로 가보자면.


우리가 흔히 쓰는 "밥 먹고 합시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유독 내가 몸담고 있는 현장, 노가다판에서는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다. 꼭 현장의 점심때 즈음에는 꼭 빠지지 않고.


"실장님, 밥 먹고 하죠?"


일하다 보면 항상 배고픔을 못 챙기는지라, 시간은 어느덧... 그럼 누군가 항상 말한다. 절대 레퍼토리는 바뀌는 법이 없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럼 유독 미안해진다. 나 때문에 다들 식사가 늦었다고. 부랴부랴 서둘러...


나는 일하다 보면 시간 개념이 없어진다. 유체이탈. 가끔 약속도 잊어버린다. 그래서 연인에게 까인 적도 있다. 쓰리 아웃 체인지. 세 번 늦었다는 거다.


어떻게 이 레퍼토리는 사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걸까?


이 말은 '밥'과 '일', 그리고 삶이 등치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를 고민하는 건 무의미하다.



6. 사라진 첫인사

일상의 안부를 묻는 인사로 "밥 먹었어?"라고 한다. 또한 내 카톡에서도 아침에 젤 처음 날리던 그녀에게의 첫인사가 "밥 먹었어?"로 시작되었다.


이젠 하지 않는다. 이젠 더 이상 그에겐...


꼭 밥에 목숨 건 놈처럼. 잊힌 마음은 그리도 아프다.


당신은 날 가진 적이 없기에, 또한 당신은 날 버리지 않았다. 그러게 잊힐 뿐이다.


"밥이 없으면 밥 이외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여기서 나에게는 '밥'이 '삶'이요, '비'가 '삶'이요, '밥'이 '비'다. 세상에 이런 논법도 있나? 귀납도 아니요, 연역도 아니요.



7. 건축가의 현실

지금 나에게는 일하고, 집에 들어가 밥을 먹는 '일상'이 없다.


밥은 생명이긴 하나, 또 어떤 밥을 먹을 거냐가 중요하다. 굶주릴지언정 쪽팔리지는 말아야 하는데...


나의 멘토 중 하나인 친한 동생은 말한다. "형, 업자는 가오가 생명이유..." 그런데 나는 네임밸류가 없다. 뭐로 가오를 세워야 하나?


건축가로 살아오면서... (나는 건축사는 아니다. 오해 마시라.)


보통 '건축설계사'란 직업으로 오해를 받지만 사실은 그런 직업은 없다. 다만 '건축사법'에 의한 '건축사'만이 설계를 하고 인허가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건축사는 소위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군에 속한다. 변호사, 의사, 변리사, 검사, 그리고 건축사.


문제는, 사람들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젤 '피크기'에 우리들을 찾는다는 거다. 송사에 휘말렸을 때 변호사를 찾고,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찾는데, 그럴 때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무언가 부탁하는 입장인 거지.


그런데 반대로 사람들이 가장 목이 뻣뻣할 때 건축사를 찾는다는 거지. 그럴 때 사람들은 눈에 뵈는 게 없어져. 세상에 자기보다 잘난 놈이 없어 보이거든.


이땐 아무리 조언을 해도 먹히지 않고, 겸손? 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만만찮지 않아. 아니면 나의 개념이나 설계의도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거겠지만.


인터넷에서 이상한 사진 들고 와선 그대로 해달라고 우긴다 어떤 사유로 이 현장과 맞지 않는다고 해도 무조건 우기고 본다. 빤히 보이는 이걸 해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런데 말이야, 아쉬운 건 요사이 그런 사람들도 없다는 거야. 내가 왜 지금 그딴 인간들을 그리워하는 거지?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냐.



8. 움직이지 않는 경제

그래서 망치까지 쥐어들었지만서도 여전해.


회사에서 월급 받는 것도 만만치 않고, 자영업을 하는 분들도 마찬가지고. 들어온 돈으론 은행 이자 충당하느라 바쁘고, 사는 집이 가격이 하락하였으니 손해 보곤 못 팔고.


살던 집이 팔려야 이사도 갈 텐데, 당최 사람들이 움직여야 말이지. 움직여야 떨어지는 떡고물이라도...


그런데도 이번에 나는 일을 저질렀어.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했거든. "장마에는 빨래를 널지 마라"라는데 궁여지책이지.


마음이 조급해져서 이것저것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아지는데, 할 수 있는 게 고작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뿐이라 속상하다. 걸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정작 멀쩡히 걸어 다닐 때는 뭐 하고 있었지?


자기 비하, 자책은 아니다.



9. 양파 썰기

비가 온다는 장마를 핑계로, 감정이 시키는 대로 글을 싸지른다.


나는 글로 울화를 푼다. 술로는 못 풀고. 울게 되거든. 차라리 글은 냉철할 수 있고, 평소 질척 질척한 내가 쿨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울고 싶은 날에는 조용히 서걱서걱 파를 썬다는 친구를 따라, 지금 양파를 썰고 있다.


썅, 존나 눈물 난다. 눈물이 맵다.


양파를 썰는지, 눈물을 썰는지 아른아른하다.



10. 버스에서 내리며

설마 글을 쓰다 말고 이 버스 안에서 순간이동으로 부엌에 가서 양파를 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겠지?


이제 버스에서 내려 종각역으로 걸어가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必須多言. 필수다언.


결국 이 긴 글도 필수다언의 실천이었다. 수다에는 요점이 없다. 삶에도 요점이 없을지 모른다. 그저 우리는 계속 이야기하고, 계속 기다리고, 계속 밥을 먹고, 계속 살아갈 뿐이다.


사람과 나누는 '수다'입니다. 必須多言.


종각역 입구에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일도 나는 수다스런 남자로 살 것이다. 요점 없는 이야기들로 세상과 소통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말할 것이다.


그것이 내 방식의 존재 증명이니까.



에필로그: 댓글들

며칠 후, 온라인에 올린 이 글에 댓글들이 달렸다.


"길긴 기네요 ㅎㅎㅎ 고도를 기다리며~ 이 작품 대학 동아리 때 연출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밥도 여유 있게 풍부하게 맛있게 먹어야 제맛인데, 항상 조미료 덩어리에 가공된 반찬들 빨리빨리 먹는 문화... 이런 현실이 싫네요."


"이야기의 두서는 약한 거 같은데 묘하게 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비를 몹시 기다린다. 밥 먹는 게 중요하다. 비는 곧 밥이다."


나는 그 댓글들을 읽으며 웃었다. 사람들이 내 수다를 들어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必須多言. 반드시 여러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이 수다스런 남자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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