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수다와 고양이
고양이가 사라진 것은 화요일 아침이었다. 정확히는 화요일 아침 6시 30분경, 내가 평소처럼 눈을 떴을 때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사실 그 순간을 묘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 마치 잘 알던 방의 구조가 하룻밤 사이에 조금씩 바뀐 듯한 기분. 루이스 칸이 말했듯이 공간은 빛으로부터 태어나는데, 그날 아침 내 방에 들어온 빛은 평소와 달랐다. 더 차갑고, 더 직선적이었다.
고양이 이름은 '다케시'였다. 일본 이름을 가진 한국 고양이. 친구가 '기타노 다케시'*를 좋아해서 붙인 이름이었는데, 친구가 이사를 가면서 나에게 맡겼다. 그게 2년 전 일이다.
'다케시'는 말 많은 나와 달리 과묵한 고양이였다. 하루 종일 창가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거나, 소파 위에서 잠을 자거나, 가끔 내 발치에 와서 몸을 비비거나. 그게 전부였다. 야옹 소리도 거의 내지 않았다. 피터 줌터가 말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감각'이 있다면, '다케시'에게는 그런 것이 있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고요함을 만들어냈다.
"너는 정말 조용하구나." 내가 가끔 말을 걸면 '다케시'는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초록색 눈으로, 아무 말 없이.
나는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작은 사무소라서 직원은 나를 포함해 세 명뿐이다. 사무실은 3층 건물의 2층에 있었고, 창문으로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보였다. 계절마다 그 나무는 다른 빛을 만들어냈다. 봄에는 연초록, 여름에는 짙은 녹색, 가을에는 노란색, 겨울에는 검은 가지들이 창문을 가로질렀다.
그날 오전 내내 나는 '다케시' 이야기를 했다.
"고양이가 갑자기 사라졌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창문도 다 닫혀 있었고, 현관문도 잠겨 있었는데. 이상하지 않아? 고양이가 순간이동을 할 리는 없잖아. 그런데 정말 어디에도 없어."
직원들은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는 척했지만, 내가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자 점점 지루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의 시선이 컴퓨터 모니터로, 도면으로, 창밖으로 향하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가 말한 '거주하는 기계'처럼, 그들은 각자의 업무라는 기계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혼자 밖으로 나왔다. 사실 직원들이 나와 함께 먹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말이 너무 많다는 것도.
근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면서 알바생에게 물어봤다.
"혹시 고양이 본 적 있어요? 회색 고양이인데, 크기는 중간 정도고, 꼬리가 좀 짧은 편이에요."
알바생은 대학생으로 보였다. 그녀의 손가락은 계산대를 두드리며 미묘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 무표정함 속에도 일종의 온도가 있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냥 적당한 온도.
"고양이요?"
"네. 제가 기르던 고양이가 사라졌거든요. 혹시 이 근처에서 본 적 있나 해서요."
나는 계속 설명했다. '다케시'의 특징, 성격, 평소 습관까지. 알바생은 점점 지쳐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어깨가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축 처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죄송해요." 내가 마지막에 말했다. "제가 좀 말이 많아서요."
알바생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마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의 말 많음을 인정하는 걸 들었던 모양이다.
"아니에요. 그런데... 혹시 고양이가 꿈에 나타난 적 있어요?"
"꿈에요?"
"네. 제가 어릴 때 기르던 강아지가 죽었는데, 그 후로 몇 달 동안 꿈에 나타났거든요. 마치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처럼."
나는 그 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케시'가 죽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편의점의 형광등 불빛이 갑자기 너무 밝게 느껴졌다. 안도 다다오가 말한 '자연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정반대의 빛이었다. 인공적이고, 차갑고, 어떤 그림자도 만들지 않는 빛.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도 '다케시'는 없었다. 나는 평소처럼 저녁을 준비했다. 파스타를 삶고, 토마토소스를 만들었다. 물이 끓는 소리, 올리브오일이 팬에서 지글거리는 소리, 토마토가 으깨지는 소리. 모든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다. '다케시'가 있을 때는 요리하는 내 발밑에 와서 앉아 있곤 했는데.
"다케시야, 어디 있니?" 혼자 중얼거리며 파스타를 휘저었다. "네가 없으니까 이상해. 말상대가 없으니까."
그때 깨달았다. '다케시'는 내 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존재였다는 것을. 물론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지루해하거나 피하지도 않고. 그의 침묵은 비어있는 침묵이 아니라 가득 찬 침묵이었다.
밤 10시쯤, 나는 아파트 복도로 나갔다. 혹시 '다케시'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복도는 조용했다. 가끔 TV 소리나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부분의 집은 조용했다. 나는 각 층을 돌아다니며 다케시를 불렀다.
"다케시야! 다케시!"
내 목소리가 복도에 메아리쳤다. 몇몇 집에서 불빛이 켜졌다. 아마 내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일들은 그냥 해야 하는 것이다. 논리나 예의와는 상관없이.
그날 밤 나는 '다케시' 꿈을 꾸었다. 꿈에서 '다케시'는 아파트 옥상에 있었다. 우리 아파트는 15층 건물인데, 꿈 속 옥상은 실제보다 훨씬 높았다. 마치 하늘에 닿을 것 같은 높이였다.
"다케시야, 왜 여기 있어?" 꿈 속에서 내가 물었다.
다케시는 처음으로 말을 했다. "너는 너무 말이 많아."
"그래서 떠나는 거야?"
"아니야. 나는 원래 말이 없는 고양이야. 그런데 너와 있으면서 점점 말하고 싶어졌어. 그게 무서웠어."
"무서웠다고?"
"말을 하면 변하게 되거든. 나는 변하고 싶지 않았어."
꿈에서 깨어나니 새벽 4시였다. 이상한 꿈이었다. '다케시'는 한 번도 말을 한 적이 없는데. 하지만 그 꿈은 어떤 면에서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다케시'의 목소리, 그의 표정, 심지어 그의 체온까지도 생생했다.
며칠이 지나도 '다케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실종신고를 할까 생각해봤지만, 고양이 실종신고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대신 주변에 전단지를 붙였다. '다케시' 사진과 함께 <고양이를 찾습니다>라고 적은 전단지를. 편의점, 지하철역, 아파트 게시판에 붙였다.
며칠 후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혹시 고양이 찾으시는 분이세요?"
"네! 혹시 다케시를 봤나요?"
나는 '다케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생김새, 성격, 특징까지. 20분 동안 설명했다. 전화기 너머 그 사람의 숨소리가 점점 짧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런 고양이는 못 본 것 같은데요. 죄송해요."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웃었다. 내가 또 너무 많은 말을 했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케시'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를 찾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졌으니까.
일주일이 지났다. '다케시'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다케시'가 정말 사라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날 저녁, 나는 평소보다 일찍 집에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났다. '다케시' 냄새였다. 그건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였다. 고양이 사료도 아니고, 털 냄새도 아니고, 그냥 '다케시'의 냄새였다. 피터 줌터가 말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감각'이 바로 이런 것일까.
"다케시야?" 내가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거실로 들어가자 소파 위에 무언가 있었다. '다케시'가 좋아하던 장난감 쥐였다. 분명히 며칠 전까지는 침실에 있었는데.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다케시'가 돌아왔다고. 비록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다케시야, 너지?" 내가 조용히 말했다. "네가 돌아온 거지?"
바람이 불었다.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는데도 바람이 불었다. 커튼이 살짝 흔들렸다. 그 움직임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마치 안도 다다오가 말한 '자연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다케시' 사료가 조금 줄어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어제보다 적어 보였다.
나는 직원들에게 말했다.
"다케시가 돌아온 것 같아.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다고요?"
"응. 하지만 분명히 있어. 느낄 수 있거든."
직원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들의 시선 속에는 걱정과 회의가 섞여 있었다. 아마 내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다케시'가 돌아왔다는 게 중요했다. 비록 보이지 않는 형태로였지만. 어쩌면 이것이 그가 선택한 존재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변하지 않기 위해서.
그날부터 나는 다시 '다케시'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내 생각을 나누었다. '다케시'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지만, 들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달이 지났다. 사람들은 내가 혼자 말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나는 계속했다. '다케시'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어느 날 저녁, 나는 '다케시'에게 물었다.
"너는 왜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돌아온 거야?"
바람이 불었다. 항상 그랬듯이.
"아, 알겠어. 너는 내가 너무 말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 말을 들어주고 싶었던 거지. 하지만 모습을 드러내면 다시 변할까 봐 걱정되었던 거고."
커튼이 살짝 흔들렸다.
"괜찮아. 나는 변하는 게 무서워하지 않아. 사람은 원래 변하는 거니까. 고양이도 마찬가지고."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베개 옆에 '다케시'가 누워 있었다. 실제 '다케시'가. 살아있는, 따뜻한 다케시가.
"다케시야!" 내가 기뻐서 외쳤다.
'다케시'는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야옹 하고 울었다. 마치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것처럼.
'다케시'가 돌아온 후, 나는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말이 많았지만, 이제는 들어주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다케시'가 한 달 동안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내 말을 들어주었던 것처럼.
사무소에서도 직원들의 말을 더 주의 깊게 듣기 시작했다. 그들이 짧게 하는 말 속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이스 칸이 말했듯이 공간이 빛으로부터 태어나듯이, 진짜 대화는 침묵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편의점 알바생이 나에게 말했다.
"고양이 찾으셨어요?"
"네. 돌아왔어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제가 그때 꿈 이야기 했던 거 기억하세요?"
"기억해요."
"사실 저도 말이 많은 편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귀찮아해서 요즘에는 별로 말을 안 해요."
나는 그 알바생과 30분 동안 이야기했다. 그녀는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고,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너무 많아서 소설로 쓰면 너무 길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말이 많은 건 나쁜 게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다만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뿐이죠."
그 후로 나는 가끔 그 편의점에 들러서 알바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내 말을 들어주었고, 나는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작은 대화의 공간이 하나씩 만들어져 갔다.
'다케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가끔 야옹거리며 대답을 했다. 여전히 과묵한 고양이였지만, 완전한 침묵은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소통하며 살아갔다. 말 많은 나와 과묵한 '다케시', 그리고 때때로 만나는 다른 말 많은 사람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