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惑)을 설계한다는 것

— 하늘의 뜻을 모르는 채 쓰는 메모

by leehyojoon ARCH

혹(惑)을 설계한다는 것

— 하늘의 뜻을 모르는 채 쓰는 메모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들었는데,

감히 하늘의 뜻을 안다 할 수 있을까.



공자는 오십에 지천명이라 했다.

삼십 이립, 사십 불혹, 오십 지천명.

나는 그 단계표를 오래 붙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인 적이 없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말은 너무 단정하다.

이미 무언가를 내려놓은 사람의 표정 같다.

완성된 사람의 언어 같다.



나는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것들이 있고, 아직도 흔들린다.

완성이라는 말이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글은 지천명을 선언하는 글이 아니다.

불혹에도 혹했고 지천명에도 천명을 모르겠는 사람이,

그래도 여기까지 온 궤적을 천천히 더듬는 글이다.



정리하려는 게 아니다.

정리된다면 쓸 이유가 없다.

그냥 써야 할 것 같았다.


써야 할 것 같은 충동이 있을 때 쓰지 않으면,

그 말들은 몸 안에서 썩는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출발은 말놀이다.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렸다.

혹하지 않는 나이가 아니라,

본책이 끝나고 덧붙은 시간.

오독이라 생각했다.


나중에는 그 오독이 더 정직한 독법이었다고 느꼈다.

언어는 때로 실수 속에서 더 정확해진다.






하나. 삼십, 이립이라 했지만


서른 즈음의 나는 버티고 있었다.

서 있는 것과 버티는 것은 다르다.


서 있는 사람은 기반이 있다.

버티는 사람은 기반 없이 하중을 견디고 있다.



두 자세는 겉에서 보면 비슷하다.

안에서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 차이를 알면서도 버티는 쪽을 택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건축설계를 직업으로 삼고 있었다.

재개발, 재건축, 지구단위계획. 남의 땅의 구조를 그리는 사람이었다.


설계도 위에서 건물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살 자리를 배치했다.

어디에 무게가 실리는지, 어떤 구조가 얼마의 하중을 견디는지 계산했다.

하중과 지지, 응력과 변형. 그 언어가 몸에 박혀 있었다.



퇴근하고 나면 내 삶의 구조가 어디 있는지 모른 채 잠들었다.

남의 집을 설계하는 사람이 자기 집의 평면도를 그려본 적 없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제사장이란 닉으로 정했다.

제사장이라는 닉을 달고 사람들과 모였다.

사적 동호회, 카페 모임, 온라인에서 시작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자리들.

거기서 누군가 제사장을 제가사장으로 읽어 사장님이라 불렀다.

부담스럽다고 썼다.



단순한 겸손이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를 아직 사장으로 세우지 못했다.

권위보다 의례, 결과보다 지속, 완성보다 과정에 서 있는 사람. 그래서 제사장이 더 편했다.

사장은 도달한 사람의 이름이고 제사장은 아직 빌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다.


나는 빌고 있었다.



"인디오의 제사장은 기우제를 실패한 적이 없다네요. 무조건 비올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나… 끈질긴 놈이 마지막에 웃게 돼 있다."



비가 올 때까지 계속 지내면 된다.

그 논리로 버텼다.

기반이 없으니 의지를 내세웠고 확신이 없으니 끈기를 말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이립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이립은 서는 것이다.

기우제는 무릎을 꿇는 것이다.

나는 서는 척하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서른 이후의 부록으로 주어지는 삶."



서른 이후를 처음부터 부록이라 불렀다.

본책을 아직 쓰지 못했다는 자각이었는지, 못 쓸 수도 있다는 자기방어였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어쩌면 둘 다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 두 가지는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둘. 마흔, 불혹이라 했지만


마흔이 되면 혹하지 않을 줄 알았다.

목련이 피는 계절에도, 어떤 문장 앞에서도, 어떤 얼굴 앞에서도.



마흔이 된다고 감각이 무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게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강윤후라는 시인의 시가 있다.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 부록으로 들린다 /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 봄이 온다 /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 머뭇대는 바람처럼 / 마음이 혹할 일 좀 / 있어야겠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당황했다. 이미 써둔 문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혹은 꺼냥… 단지 불혹이 아닌 부록의 삶을 살고있다고 자위합니다."



내가 먼저였는지, 읽고 영향을 받은 것인지 지금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읽고 내 문장으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 가능성을 지우지 않겠다.


기억은 자기에게 유리하게 편집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 해도, 그 말이 내 안에서 올라왔다는 감각은 있었다.

감각까지 부정하진 않겠다.


감각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쓸 수 있는 것이 없어진다.



시인은 마흔에 목련꽃 근처에서 다시 혹할 일을 찾는다.

나는 서른부터 이미 혹하고 있었고 그것을 부록이라 불러서 처리했다.

시인이 혹의 회복을 바란 자리에서, 나는 혹을 덤의 시간 안에 넣어두었다.


방식이 달랐다.






셋. 마흔다섯 즈음, 천수답에서


201✘년 여름 밤이었다.


닉네임은 '천수답에서 밤걷는'이었다.

천수답은 하늘에서 비가 와야만 물이 채워지는 논이다.

관개가 없다.

수로를 내거나 양수기를 돌리거나 할 수 없다.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을 기다리는 땅.


농부는 하늘을 보며 논을 지킨다.

채워질지 모른 채 곁을 지킨다.

나는 그 이름 아래 밤을 걷고 있었다.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비를 기다리는 자로.


"낮부터 깨어있었더니.. 졸 힘들어. 꼭 늦잠잔 하루살이 처럼… 하루도 버겁네.. 빨리 밤이 왔으면 좋겠어. 이 생경스런 풍광이 아닌 익숙함이 그립다."


"아듀 발정의 세월아~ 피뜨거운 40대.. 금방 지나길 빌어봐."


"쓰고 보니 말이야 이게 대체 뭔소린지 모르겠어. 결코 네거티브한 건 아닌데. 왠지 모를 울화에 잠시 끄적이고 싶었어. 일단 이리 토악질하고 나니 쩜 편해진 걸로 만족해. 서평같지도 않은 서평... "



그날의 기록이다.

낮이 생경했고 밤이 그리웠다.

드러남이 버거웠다.

어두워지면 자신이 얼마나 기울어 있는지 보이지 않으니까.


밤이 오면 윤곽이 흐려지고 그 안에서 조금 쉴 수 있으니까.



밤은 감추는 것이 아니다.

밤은 드러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그 차이가 그때의 나에게는 중요했다.



그 밤만큼은 설계자의 습관을 내려놓은 순간이었다.

구조를 세우지 않고 그냥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오래 망가진 글이라 불렀다.

지금은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다.


형식이 없는 것과 정직한 것은 다른 말이 아닐 수 있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나는 형식을 점검하고 있었다.

서평같지도 않은 서평이라고 자평했다.

설계자의 습관은 무너진 데서도 남는다.

어느 구조물이든 무너질 때 무너지는 방식이 있다.


나는 무너지면서도 그 방식을 관찰하고 있었다.






넷. 마흔아홉, 무게를 달다


201✘년에 나는 시간을 그램으로 환산했다.

49gram.

50gram.



나이를 무게처럼 달아보며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계산했다.

건축 일을 한 사람이 자기 시간을 하중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다.

무게는 설계의 언어다.


하중이 얼마인지 알아야 어떤 구조를 놓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견딜 수 있는 무게와 견딜 수 없는 무게 사이에 구조물의 운명이 있다. 나는 내 운명을 그램으로 달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이 사람에게 길들여졌는지도 모르겠어. 왜일까? 처음엔 그냥 모른척하고 싶었어. 그리고 저럴 수 있다는 거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



어린 왕자의 여우를 그 글에 붙여두었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이미 흔들리는 것. 미래가 현재를 앞서 점령하는 것.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상대가 없어도 상대의 시간표대로 몸이 움직이는 것. 나는 그 상태를 감추지 않고 기록했다. 감추면 기록이 아니니까.



같은 글 안에 이것도 있었다.



"만날지 말지 고민이라면... 오히려 거리를 두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흔들림? 그것 역시 한 번이면 족했다. 적어도 난 지켜야 할 인연이 있지 않는가. 구태여 그 관계의 무게를 더 늘릴 필요는 없다. 지금도 충분히 심심찮게 버거운걸."



거리를 두겠다고 썼다고 거리가 두어진 건 아니다.

기록이 결심은 아니니까.

그리고 결심이 행동은 아니니까.


문장은 의지를 선언하지만 몸은 다른 방향으로 기운다.

나는 그것도 알고 있었다. 알면서 썼다.



"그 균열을 가장 먼저 확인한 건 나, 당사자였다. 모든 걸 알게 된 순간에도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균열을 보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결정하지 못했다.

설계자는 균열을 발견하면 보수 방법을 먼저 생각한다.

철거를 생각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게 그 시기다.



"이제 곧 나의 49gram은 끝이 난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도 있다."



낙관이 아니었다.

무게는 계속 쌓이지만 아직 버티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구조가 버티는 한 계속 쓴다.

그것만 알고 있었다.






다섯. 오십, 지천명이라 했지만



오십이 되었다.



"지천명이라는데.ㅠㅠ 어쩌다 보니 50gram... 쉰의 무게를 지탱하며. 아직도 난 여전히 사춘기."



그때 쓴 말이다.

자조였는지 고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직하다.



사춘기는 혹의 계절이다.

감각이 몸보다 앞서 달리고 이성이 감각을 따라잡지 못한다.

오십에도 그 질서가 바뀌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사춘기인 셈이다.


그게 부끄러운 일인지 아직 모르겠다.



지금은 아직 중반부다.

반이 남았다.

나는 아직 이립을 반복하고 있고, 불혹은 해체했으며, 지천명은

유예 중이다.



지천명을 이렇게 읽어보려 한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비가 오지 않을 때도 천수답 옆에 있는 것.

하중이 계산 밖으로 나갈 때 그 초과를 인정하는 것.

설계도에 없는 하중이 걸릴 때 도면을 고집하지 않는 것.



조금, 아주 조금 도달했는지 모른다.






여섯. 혹을 설계한다는 것



방치된 혹은 나를 끌고 간다.

설계된 혹은 내가 데리고 간다.



이렇게 쓰고 싶다.

항상 그랬냐고 물으면, 아니다.



혹이 이긴 날이 있었다.

경계를 넘은 적 있고, 결정하지 못한 채 쓸려간 적 있고, 설계한다고 믿으면서 사실은 방치한 적도 있다.

어디가 먼저 무너질지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무너진 적이 있다.

예측한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 무너졌다.



그 흔적들을 지우고 싶지 않다.

무너진 자리가 지도가 된다.



젊은 날의 혹은 방치였다.

감정이 곧 결정이 되었고 충동이 곧 방향이 되었다.

피가 뜨겁다는 말로 정당화했고 밤이 오길 기다리며 낮의 생경함을 피했다.


뜨거운 것이 옳다고 믿었다.

식는 것이 죽는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혹한다.

그 순간 동시에 거리를 두려 한다.

이게 어디서 시작된 감정인지, 어디까지가 욕망이고 어디부터가 허기인지, 얼마만큼의 하중이 걸릴지 계산해 본다.


욕망과 허기는 비슷하게 생겼다.

채워지는 방식이 다르다.

그 차이를 읽는 데 이십 년이 걸렸다.



혹을 없애는 게 아니라 혹의 작동 방식을 관찰한다.



지금도 어떤 날은 설계 따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오늘도 어떤 얼굴 앞에서 잠깐 계산을 놓쳤다.

계산을 놓쳤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그래도 달라진 점이다.






일곱. 부록에 대하여



"부록 때문에 본책을 사는 경우도 있다지만... 본책이라도 충실히 채워나가야 할텐데."



마흔 이전에 써둔 말이다.

지금은 다르게 읽힌다.



부록이라 불렀던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의 나다.

본문은 따로 없었다.


매번 덤이라 여겼던 것들이 본문이 되었다.

부록이 본문보다 밀도 있을 수 있다.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본문은 목차를 따르지만 부록은 필요한 것을 담는다.

나는 오래 부록을 살았고 그 안에서 더 필요한 것들을 담았다.



닉네임이 바뀌었다.

바빌론여행자, 제사장, 천수답에서 밤걷는, 49gram, 망치든건축가.

각각의 이름이 그 시기의 상태였다.

유랑자, 생존자, 비를 기다리는 자, 무게를 재는 자. 같은 사람이 다른 상태들을 통과하며 계속 기록했다.

지우지 않고.



닉네임을 바꿀 때마다 이전의 것을 지운 게 아니라 다음 것을 더한 것이다.

켜켜이 쌓인 이름들이 한 사람의 지층이다.



나는 더 이상 내 시간을 부록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본문이라 부르지도 않겠다.

지금 쓰고 있는 중이라고만 하겠다.


목차는 아직 닫히지 않았고 마지막 페이지는 아직 모른다.



마지막 페이지를 아는 사람은 쓰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혹한다.

목련이 피는 계절에도, 어떤 문장 앞에서도, 아직 오지 않은 것들 앞에서도.



강윤후의 시인은 마흔에 목련꽃 근처에서 다시 혹할 일을 찾았다.

나는 한 번도 혹하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게 불혹은 도달점이 아니라 해체 대상이었다.



혹을 없애고 싶지 않다.

혹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문장이 움직이는 이유이며 관계가 아직 정지하지 않았다는 신호다.

혹이 없는 사람의 문장은 정확하지만 차갑다.


나는 차가운 문장을 쓰고 싶지 않다.



다만 이제는 혹이 나를 끌고 가지 않게 하려 한다.

무너질 수 있는 만큼만 기울이려 한다.

버틸 수 있는 만큼만 흔들리려 한다.


항상 그러냐고 물으면, 모르겠다.



지천명에 이르렀다 하나 천명은 모른다.

혹을 설계한다고 쓰지만 가끔은 여전히 밤이 빨리 오길 바란다.


201✘년 여름처럼, 이 생경한 풍광이 어서 어두워지길.






— 지천명을 지나는 중임에도, 문 앞에서




02.22. 2026 망치든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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