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상담받기 전

쉬운 것이 하나 없던,

by 내모

내담자가 되기 전에 우리는 정말 많은 고민을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생각의 소용돌이 안에 한동안 갇혀 있었다.

이해 받는 데 자신이 없으면서도 이해받고 싶은 기분...

이 양면적인 면모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해서 이전에 써놨던 짧막한 글자들을 읽고 있는데

상담 받아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마음의 여유도 없지만

그 상담실에서 담아 나온 말들이 지금까지도 내 아군이 되어주고 있으니까.

든든하다





#10


혓바닥을 닦는 것은 마치 신발 밑창을 솔로 박박 문지르는 그것의 느낌이 든다.

틈새에 낀 먼지들을 털어내기 위해 틈 사이를 후벼 파는 손놀림.


#11


내가 그 날들에 관해 글로 남긴다면 그 끝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알코올 없이 잠들 수 있는 날이 올지 확신이 없다.


뭔가를 해 나가는 게 숨이 막힌다.

움직임이 멎고 누군가와의 대화조차 망설여진다.

내가 재미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웃게 만들어야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쉬운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애초에 난 머리가 좋지도, 의지가 충만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를 뛰어넘을 그 이상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겨를도 없고, 오랜만에 결려온 친구의 전화도 통화 버튼 누르기를 망설이다 휴대폰을 뒤집어 버렸으니까.


#12


쫓기다 잠에서 깼다.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덩치들.

처음 만난 사람이 날 잡아 넘기려 하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도록 무서운 꿈이었다.

#13


오롯이 내 감정만을 표현하려면 나는 분노의 유사어를 찾아보고 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지만 그들에게 분노함도 동시에 사실이다.


#14


다시 돌아오려고 한다. 그날의 내가.

이제는 버틸 자신이 있고, 흐르는 데로 놔둘 여유도 있는데.

감정이 상하고 버둥거리는 건 아주 나아지지는 않았다.

불쌍해서.

사람들이, 내가, 아픈 게 불쌍하다.

뭔가를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들어오는 것들을 발로 차 낸다.

배울 수도, 생각하기도 힘들다.


하나씩 천천히. 그 자체가 나에게는 무겁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기억과 생각을 피하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영상을 눈이 빨개져라 쳐다본다.

이 모든 시나리오를 삭제하기만 하면 내 머리와 마음에는 충분한 공간이 생길 텐데.

포기 못하고 허용도 못하는 나 자신을 알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다.


죽는 게 가장 빠르겠지만.


#15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하고 싶은 말.

내 이야기를 믿어주기를. 나도 잘 믿지 못하는 내 이야기를.


가장 충격이었던 왜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느냐는 말.

5년을 기다렸다.

솔직히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다가 결국 사라질 줄 알았는데,

어느 시점 이후로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는 것 같다.


난 그 시절 나에게 남은 전부라 생각한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

혹은, 그냥 알량한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은 것일지도.


가족에게 비밀로 해달라며 그 사람 앞에서 애원할 때는

가족이 이 모든 사실을 알 바에는 이 사람이 나를 마음대로 해도 좋았고, 결국 내 죽음에 정당성이 생기니 상관없다 생각했다.


내가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은 셈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1. 상담받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