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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편집장 Dec 31. 2021

시문학으로 읽는 식민지 인문학 2

#최남선 #바다

1. 왜 지리학인가


    최남선은 17세의 나이로 두 번째 일본 유학길을 떠난다. 그는 1906년 9월 와세다대학 고등사범부 지리역사학과에 입학하지만, 1907년 3월 27일 ‘모의국회 사건’에 항의하여 다른 조선인 유학생들과 동맹퇴학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약 6개월 간의 유학생활은 그의 세계관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바로 ‘지리’와 ‘역사’라는 ‘학문’이었다. 1차 유학 시기 이후 지리와 역사 공부에 열중했다는 진술과 <소년>지를 비롯한 그의 여러 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지리와 역사에 관한 그의 관심과 연구는 식민지 시대의 담론 중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남선을 위시하여 여러 학자들이 이른바 ‘국학(國學)’에 몰두하기 시작했는데, 일제의 식민담론에 맞서기 위해 ‘조선적인 것’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孤軍奮鬪)였다. 특히 최남선은 이전의 전근대적 지리학을 비판하고 새로운 ‘근대적 지리학’을 제시하는데, 가장 먼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이었다.      

    “지리학은 풍수설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사람의 길흉을 점치는 방법은 아니다”라는 유길준(<서유견문>)의 지적처럼 그 당시 풍수지리학은 미신과 같이 폐지해야 할 ‘구습(舊習)’으로 여겨졌고, 최남선 역시  근대적인 지리학에 천착한다. 그의 지리학에 대한 관심은 <소년>과 <역사ㆍ지리연구(歷史ㆍ地理硏究)>와 같은 정기 간행물(잡지) 발행, <대한지지(大韓地誌)>, <외국지지(外國地誌)>, <한양가(漢陽歌)>, <경부철도가(京釜鐵道歌)>, <세계일주가(世界一周歌)> 등의 단행본 발간, 조선광문회를 통한 <택리지(擇里志)>, <도리표(道里表)> 등의 지리 관련 고전서적 발행을 통해 잘 드러난다. 최남선에게 있어 ‘지리’는 곧 식민지라는 영토주권적 질서 안에서 민족의 문제이자 식민지 현실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 文次郎)는 <조선산악론(朝鮮山岳論)>과 <조선전도(朝鮮全圖)> 등의 지리서를 내면서 한반도를 토끼로 비유(1903)하자, 최남선은 이에 반박하여 <소년> 창간호의 ‘봉길이 지리공부(鳳吉伊地理工夫)’란 코너에서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에 비유한 지도를 소개하며 「대한의 외위형체(大韓 外圍形體)」(1908)라는 글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는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세계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여 ‘국난(國難)’을 극복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반도는 토끼인가, 호랑이인가. 사실 뭐든 똑같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최남선의 ‘지리학’에 대한 관심은 역사 속의 국토(國土)의 의미와 더불어 한반도의 문화 유적과 식생, 그리고 민족의 생활 양식(민속학)까지 뻗어나갔다. 그는 국토 순례를 다니면서 문화 유적을 예찬하는 기행문과 시조를 많이 썼고, 점차 ‘육지’가 아닌 ‘바다’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기획을 확장하기에 이른다. 그에게 있어 한반도라는 육지가 민족의 터전이라면, 바다는 새로운 세계로 열려 있는 공간이자, 개화 문명이 들어오는 곳이었으며, 식민지 조선 ‘소년’들의 소망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2. 바다의 상징, 현해탄   

  

    1876년 개항(開港)을 통해 개화기 시대가 도래했지만, 1900년대 식민지 조선의 시인들에게 ‘바다’라는 소재는 낯선 것이었다. 김기림과 임화, 정지용과 오장환 등의 ‘바다’ 시편들에서도 바다는 여전히 이국적 세계이자 낯선 공간이었다. 식민지 바다 시편에 자주 등장하는 ‘현해탄(玄海灘)’이라는 공간이 바로 그것인데, 현해탄은 1905년 9월부터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관부연락선이 오갔던 해역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식민지 조선의 많은 청년 지식인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넜고, 일본이 조선의 식량과 자원 등을 침탈하여 본국으로 수송했던 뱃길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의 수많은 노동이민자들이 일본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민족 이산(離散, Diaspora)의 비극적 행로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해탄이 조선 전반에 걸쳐 유명해진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그것은 1926년 8월 4일 도쿄에서 활동하던 극작가 김우진과 성악가 윤심덕이 귀국하던 도중 현해탄 관부연락선에서 바다로 동반 투신하여 자살한 사건이었다. 젊은 유학파 연인의 동반 자살이라는 생소한 사건에 매스컴의 비상한 관심이 쏟아졌고, 윤심덕이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취입한 노래 <사(死)의 찬미(讚美)>는 이들의 낭만적 사랑의 상징물로서 소비되었다. 이 과정에서 현해탄은 ‘정사(情死)’의 낭만적이고도 신화적인 공간으로 ‘심상지리화’되었다.     


 <1절>
광막曠寞한 황야荒野에 달리는 인생人生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世上 험악險惡한 고해苦海를
너는 무엇을 차즈러 가느냐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世上아 나 죽으면 고만일가
행복幸福 찻는 인생人生들아 너 찾는 것 서름

<2절>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運命이 모두 다 갓고나
삶에 열중熱中한 가련可憐한
인생人生아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者로다
― 윤심덕 <사死의 찬미讚美> 중에


김우진과 윤심덕의 자살 사건이 보도된 조선일보.

    

<사의 찬미> 가사지. 가사가 정말 절절하다. 밤늦게 술 한 잔과 함께 들으면 울컥 할지 모른다.


    원곡은 루마니아 작곡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h, 1845~1902)의 관혁악 왈츠 <다뉴브 강의 잔물결>인데, 윤심덕이 원곡에 한국어 가사를 붙인 것이다. <사의 찬미>는 일본에서 발매된 최초의 조선어 노래였고, 윤심덕과 김우진의 동반 자살로 인해 이 음반은 일본과 조선 전역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전대미문의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이후 이들의 이야기는 1991년 장미희와 임성민 주연의 영화 <사의 찬미>로 개봉되기도 했고, 최근에는 뮤지컬이나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로 재탄생되기도 하였다.


윤심덕 <사의 찬미> 원곡
https://www.youtube.com/watch?v=QGeGn1uib_g


    결국, 한국 근대문학의 출발점에서 ‘바다’는 서구문명의 유입과 새로운 세계로 열려 있는 공간이자,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바다는 일제의 조선 수탈의 현장이었으며, 조선 침략의 행로에 불과했다. 그런 의미에서 바다라는 공간은 식민지 조선에 대한 현실 인식과 그에 따른 절망과 비애, 제국 일본과 외국에 대한 동경이라는 양가적 감정이 그 어디보다도 가장 먼저 형상화된 곳이라 할 수 있다.    

 

3. 바다를 망각한 조선     


    다시 최남선으로 돌아오면, 그는 ‘현해탄’이 유명해지고 시인들이 바다를 동경하고 노래하기 한참 전에, ‘바다’에 대한 이해가 각별했다. 말 그대로 ‘선구자’였던 것이다. 그는 개화기 계몽 주체로서 자기 스스로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바다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역사를 강조한다.     

    최남선은 <소년> 창간호(1908)부터 시작해 줄곧 바다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역사가 조선에 없음을 비판한다. 그동안 조선이 “삼면환해(三面環海)한 반도국(半島國)”인 것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다를 통해 다른 나라를 탐험한 걸리버와 로빈슨 등에 주목하면서 해양 진출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그는 「해상대한사(海上大韓史)」라는 글을 <소년>에 12회에 걸쳐 연재하며 바다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환기시켰고, <소년>에 「海에게서 少年에게」, 「千萬길깁흔바다」, 「三面環海圖」, 「바다 위의 勇少年」 등 자신의 시를 발표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로빈손 無人絶島漂流記」 등과 같이 일본소설 번역본을 게재하기도 하였다.



일본소설 <로빈슨 표류기 無人島大王> 표지다. 확실히 일본 느낌이 있다.


     따라서 큰 틀에서 보면, 잡지 <소년>의 전체를 아우르는 주요한 키워드가 곧 ‘바다’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바다는 새로운 세계로 열려 있는 공간으로서 개화 문명의 바람이 불어오는 잠재력으로 충만한 공간이었고, 이러한 공간을 ‘소년’들이 제대로 인식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에 이어 1910년 한일합병조약에 따라 국권이 피탈되었고, 한반도는 제국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 영토의 경계에 대한 분쟁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간도 지방을 두고 청(淸)과 첨예한 갈등을 보였고,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침범이 빈번해졌다. 또한 일본은 조선의 확정된 국경선 내 영토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행정구역을 확정짓고 인구 조사를 실시하는 등 이제 조선 땅의 주인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이 되었다.

    이러한 국제 질서의 재편 속에 최남선은 조선이 ‘반도국’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며 독특한 논리를 전개한다. 그는 바다와 육지를 서양문화와 동양문화로 보고, 동서 문화가 화합하여 세계적 문화가 성립될 장소로 한반도를 지목한다. 한반도가 곧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이제 한반도는 중국에 붙은 토끼(고토 분지로)가 아니라, “반도(半島)는 그 지형(地形)이 대륙(大陸)으로 향(向)하는 먹을 것을 구(求)하난듯키 해양(海洋)을 등지고 입을 딱 버리고 잇고 대양(大洋)으로 향(向)하야는 손님을 영접(迎接)하듯키 육지(陸地)를 의지(倚支)하야 발을 쑥 내여 밀고 선”(「海上大韓史(9)」) 호랑이의 형상으로서, 역동적이고 팽창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최남선은 그동안 반도국이고 연해국인 조선이 바다를 잊어버린 민족이 될 수밖에 없는 데에는 호머와 바이런과 같은 대문장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바다와 관련되어 기록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바다를 망각한 민족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 책임 여부를 사대주의(중국-대륙)에 치우친 고려 문인에게서 찾으려 했고, 그는 신라의 탈해왕, 수로부인 더 나아가 고조선의 단군으로까지 바다 서사의 시초를 찾아간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과 ‘바이킹 신화’를 가지고 있는 노르웨이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역시 바다과 관련된 건국담을 가지고 있는 민족의 나라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최남선의 논의는 지리적 요소에만 몰두하지 않고, 역사와 문화까지 아우르려는 일종의 ‘기획’이었다. 그것은 바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개화기 지식인의 뼈아픈 고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4. 해에게서 소년에게     


     최남선은 바다를 가장 완벽하고 진실한 공간으로 본다.    

  

바다는 가장 完備한 形式을 가진 百科事彙라 그속에는 科學도 잇고 理學도 잇고 文學도 잇고 演戱도 잇슬 뿐아니라 물한아로 말하야도 짠물도 잇고 단물도 잇스며 더운물도 잇고 찬물도 잇스며 산ㅅ골물도 잇고 들물도 잇으며 東大陸물도 잇고 西大陸물도 잇서 한번 떠드러보면 업난 것이 업스며 바다는 가장 진실한 材科로 이른 修養秘訣이라 …(중략)… 큰사람이 되려하면서 누가 바다를 아니보고 可하다하리오마는 더욱 우리 三面에 바다가둘닌 大韓國民=將差이 바다로써 活動하난 舞臺를 삼으려하는 新大韓少年은 工夫도 바다에 求하지아니하면아니될 터인즉 바다를 보고 불뿐아니라 親하고 親할뿐아니라 부리도록 함에서 더 크고 緊한일이업난지라
― 「嶠南鴻瓜」 부분(<소년> 2년 8권)     


    그에 따르면, 바다는 ‘과학(科學)’, ‘이학(理學)’, ‘문학(文學)’, ‘연희(演戱)’도 있는 ‘백과사휘(百科事彙)’로서 ‘큰사람’이 되려면 바다를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최남선은 앞서 언급했듯이 반도국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더불어 ‘조선의 ‘신대한소년(新大韓少年)’이 바다로 나가 새로운 문명과 지식을 배우기를 독려한다. 그는 「바다 위의 용소년(勇少年)」라는 작품에서 “굿은마음 굿센팔을 밋고의지해/ 이런중에 견대나온 공력이나서/ 오래잔해 바다정복 끝이나겠네”라는 표현을 통해 바다를 정복하고 그 위에 선 소년의 모습을 ‘계몽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다시 말해, 최남선은 식민지 조선의 소년들이 거친 바다로부터 배우고 그렇게 길러진 힘을 통해 다시 바다를 정복해 나가는 진취적인 ‘용소년(勇少年)’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최남선은 육지와 대립되는 바다를 온갖 악한 마음과 사람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공간이자 무한한 힘으로 보고, 모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바다를 식민지 조선 ‘소년배(少年輩)’가 경험하여 한반도의 억압된 현실 상황을 탈피하고,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와 체계가 수립되기를 희망한다.     


1.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때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泰山갓흔 놉흔뫼, 딥턔갓흔 바위ㅅ돌이나

요것이무어야, 요게무어야,

나의큰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디하면서,

때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중략)…


6.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뎌世上 뎌사람 모다미우나

그中에서 뜩한아 사랑하난 일이 잇스니,

膽크고 純正한 少年輩들이,

才弄처럼, 貴엽게 나의품에 와서안김이로다.

오나라 少年輩 입맛텨듀마.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 「海에게서 少年에게」 부분(<소년> 창간호)


<소년> 창간호에 실린 「해에게서 소년에게」 작품 원문


    잡지 <소년>의 기획 의도가 잘 드러나는 작품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는 1연 7행, 총 6연 42행으로 이뤄져 있으며, 파도치는 소리를 형상화한 의성어와 구어체의 문장은 전통시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말줄임표와 쉼표, 의성어의 반복에 의한 속도감과 역동적인 리듬감은 파도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효과를 낸다. 무엇보다 그동안 시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소년’을 전면으로 내세워 새 시대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이 시가 획득한 ‘최초’의 의미일 것이다. 작품에서 드러나 있듯이, 바다는 “태산(泰山)갓흔 놉흔뫼, 딥턔갓흔 바위ㅅ돌” 따위를 때리고 무너뜨리는 강한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힘과 권세 부리는 자들이나 진시황, 나폴레옹 같은 영웅들조차 바다 앞에서 꼼짝 못한다. 그러나 바다는 오직 “담(膽)크고 순정(純正)한 소년배(少年輩)”들을 사랑한다. 이 시의 제목이 ‘少年에게서 海에게’가 아니라, ‘海에게서 少年에게’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바다를 시적 화자로 하여 소년에게 말을 건네고, 소년은 그 바다의 ‘메시지’에 화답하여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변화를 이루는 것. 식민지 현실을 타개하고 새로운 세계 질서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최남선의 ‘바다 기획’이었다.      


5. 소년배


    최남선에게 바다는 무한한 힘이자, ‘소년배’들이 받아들여야 할 가능성의 세계였다. 그는 ‘궁핍한’ 식민지 현실 속에서 소년배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바다로 상징되는 서양의 근대 문명을 최고의 가치로 신뢰하면서도, 조선의 신시대이자 근대화가 ‘소년’에 의해 주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그의 소망은 식민지 지식인 최남선만의 돌파구였다. 물론 서구의 근대 문명을 ‘왜’ 그리고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피상적인 인식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것은 최남선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한계일 것이다. 예컨대 이인직의 <혈의 누>나 이광수의 <무정>에서 드러나듯이 서구 근대 문명을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예찬하지만 철저한 현실 인식 없이 피상적 구호에 불과한 것처럼, 최남선의 ‘바다 기획’ 역시 그러했다.

    이후 최남선은 ‘민족’을 강조하기 위해 ‘바다’에서 ‘산’으로 다시 기획이 전환된다. 태백산, 백두산 등을 강조(「불함문화론」)하며 그 당시 민족주의 담론의 지배적인 흐름에 편승하기도 하였다. 피폐한 식민지 현실이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자 바다를 통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를 지나가면서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식민담론에 맞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식민담론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다가왔다.

    물론 최남선이 ‘바다의 기획’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선이 해방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海洋과 國民生活―우리를 求할자는 오즉 바다」(1953) 등의 글을 통해 바다에 부여했던 이전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바다라는 공간 그리고 ‘소년배’는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무한한 가능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ps : <모던걸 모던보이의 경성 인문학>(연인M&B, 2022)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본 글은 그 책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https://search.daum.net/search?w=bookpage&bookId=6069148&tab=introduction&DA=LB2&q=%EB%AA%A8%EB%8D%98%EA%B1%B8%20%EB%AA%A8%EB%8D%98%EB%B3%B4%EC%9D%B4%EC%9D%98%20%EA%B2%BD%EC%84%B1%20%EC%9D%B8%EB%AC%B8%ED%9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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