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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카 Feb 08. 2021

글쓰기로 나를 이끈 원천

에필로그

  작년 6월에 포항에 사는 사촌언니가 고모부의 환갑을 맞이해서 제주도에 왔다. 자전거 타는 일에 취미가 있으신 고모부를 위해서 제주의 환상 자전거길 종주를 하러 온 거다. 그들이 서쪽으로 출발하여 반 바퀴쯤 돌았을 때 서귀포에서 우리는 만남을 가졌다. 수많은 지인들이 나를 보러 제주에 오겠다고 떠들어댔지만, 애초에 지내는 시간이 한정적이었던 걸 알면서도 지키지 못한 약속을 쏟은 이가 더 많았다. 마른땅에 모래 바람까지 일어서 더 좋을 건 없는데, 사람들은 너무 쉽게 빈말을 한다. 그리고 어찌어찌 알맞은 타이밍에 내가 제주를 떠나기를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사촌언니와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언니를 모처럼 본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엽서를 꺼내 들고 짧은 편지글을 써서 전했다. 어린 시절 언니와 펜팔 덕분에 내가 국문학도로 공부를 하러 이곳에 온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말을 적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부터 사촌언니와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다. 한글도 제대로 배우기 전부터 나는 엄마나 아빠가 써준 초고의 글자를 옮겨 그렸고, 나중에는 미리 연습장에 써두면 첨삭을 받아 편지지에 예쁘게 옮겨 쓰고는 했다. 멀리 포항에 사는 사촌언니와 방학 때 만나서 노는 일이 좋고 내게 잘해주는 언니도 좋아하며 잘 따르고 싶다 보니 그 일에 참 열심히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글을 깨치고 글을 쓰는 일에 공을 들였던 것 같다.


  나는 뭐든 시작이 느렸다. 어릴 적에 인적도 드문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낯을 많이 가렸고, 사회에 나가서 새롭게 배워야 하는 일들에는 소극적이었다. 아직도 초등학교 1학년 때 자음과 모음이 적힌 표를 그려주고 무작정 칸을 채우라던 담임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 원리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런데 옆에 아이들은 조기교육을 받은 탓에 척척 잘 해냈다. 나는 짝꿍에게 물어서 겨우겨우 해내고도 혼자 오래 부끄러웠다. 남들보다 한글을 배우는 속도가 매우 늦었고, 글을 읽는 속도도 월등히 떨어졌다. (아직도 책 읽는데 느리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부터는 글쓰기라는 게, 글을 읽고 쓴다는 행위라는 게 내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꾸준히 밀고 나가면서 글을 깨우쳤다.


  사람들은 내게 글쓰기와 말하기에 재능이 있다며 선척적인 것처럼 칭찬하고는 하는데, 고마운 말씀이지만 전혀 아니다. 나는 어렸을 때 내 이름 석자를 쓰지 못한다고 놀림도 수두룩하게 받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거다. 시작이 얼마나 빠르고 느린지, 선천적으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이 모든 건 삶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볼 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재능이 있어도 그 일을 하고자 하는 뜻과 진심이 없다면 무용지물인 거다. 모두들에게 그렇게 삭힌 능력이 하나씩 있으리라고 믿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 우리는 우리만의(개인만의) 속도가 있다는 걸, 나는 글쓰기를 통해 깨달았다. 우리말과 글에 어눌했던 나는 국문학도가 되었다. 누군가는 취업이 안 되는 인문학 공부를 한다고 비웃을지 몰라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해서 적성에 맞춰 소화시켜낼 수 있었다. 결국은 어떤 일에 얼마나 진심을 가지고 끝까지 나아가느냐 인 것 같다. 그러니 모든 과정 속에서 너무 좌절할 필요가 없다.


  


  컨셉진에서 진행하는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에 11월 반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이 글은 100일째 되는 날의 마지막 글이다! 100일이라는 시간이 벌써 훌쩍 흘렀다니, 그동안 부지런히 글을 쓰거나 옮기고 있었다니 놀랍다. 100일 동안 3일은 글을 쓰지 못하더라도 괜찮은 와일드카드를 주어진다고 했는데, 첫날부터 연달아 3일을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10월의 마지막 날 이른 새벽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돌아가신지도 꼭 백일 하고 하루가 되는 날이다.


  그동안 밤 9시부터 12시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서 부지런히 글을 썼다.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무얼 쓸지 고민하는 나를 상기시킬 때면 작가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오묘했다. 작가로 살 수 있었던 100일이었다. 그중 12월과 1월 두 달은 또 컨셉진에서 진행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글 쓸 일이 아주 많은 세 달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49재까지 새벽기도를 다니고, 아빠의 사과 과수원 일을 도우며, 개인 공부까지 하려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지만 피로함을 안고도 때가 되면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글을 썼다. 하루하루 버텨낼 때는 몰랐는데, 긴 시간 동안 하루도 글쓰기에 대한 정신줄을 놓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니 시원섭섭하다. 그동안 써두었던 글들과 과제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한 달 전 약 75개의 주제들을 적어두었지만, 실제로 쓴 주제는 35개에 불과했다. 순간마다 쓰고 싶고 끌리는 내용과 주제가 달랐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정말 글이 안 써지는 날일지라도 억지로 찾아낸 주제는 없다. 과거의 글에서 가져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러한 글들을 큰 인기를 바라거나 책을 내기 위해 쓰기 시작한 건 전혀 아니지만, 매번 하트를 눌러주고 심지어는 구독까지 해주었던 소수의 독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전자기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어져서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 눈이 전체적으로 안 좋아져서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으로 새롭게 맞추고, 비싼 인공눈물과 안구 연고도 사고, 스팀 안대까지 샀다. 매일 밤과 아침마다 눈 운동도 수시로 해주고 있다. 내일부터는 매일 올리던 글쓰기를 내려두고 조금 쉬고자 한다.


  그간 글이 쓰고 싶은 순간마다 그럴싸한 글을 탄생시켜서 큰 몫을 챙기고는 했다. 하지만 그게 나의 취약점인지라 또 다른 결정적인 순간이 와도 글이 쓰고 싶지 않으면 괜찮은 글을 써낼 수가 없었다. 역량이 부족했다. 그렇게 놓친 공모전도 많다.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는 부지런히 글 쓰는 습관을 만들어줌으로써 언제든지 글을 써도 완성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두고두고 다듬어 볼 수 없어서 어딘가 조금 허술하고 사설이 많고 기승전결이 부드럽지 못한 글도 많이 보인다. 휴식을 취함으로써 이러한 부분이 보완될 것을 잘 안다.


  



  모두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니, 사실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처럼 잠깐 나를 잊고 제 삶의 몫을 해내느라 분주할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하다. 사람들이 종종 주기적으로 뭐하고 지내느냐고 묻는데, 내가 원하는 대답을 잘 못해주나 보다. 정말이지 책 읽고 글 쓰고 집안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내 나이의 시기가 시기인만큼 취업 준비에 관한 대답을 듣고 싶은 건지 궁금하다. 일부러 숨기려는 것도 없이 아무튼 나는 일단 쉬고 있다. 분명 나를 걱정해서 묻는 소리는 아닐 테고, 그저 궁금해서 묻는다기에는 너무 자주 물어보고, 나의 행복한 일상이 조급한 그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을 테지. 그걸로 행복하다면 충분히 행복을 누리길 바란다. 나도 아주 어린 유년 이후로 유례없던 행복을 가족들과 누리며 지내고 있다. 이렇게까지 마음이 편했던 시기가 처음인 것도 같다. 내 인생의 정답과 행복이 취직의 문턱 너머에만 있는 게 아닌 걸 안다. 자꾸만 사람들은 어떤 준비 단계와 도약의 순간은 과정에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취직 그 이후에도 모든 건 과정에 지나친 일들일 텐데 말이다. 그러니까 이 장황한 글을 쓰면서까지 하려는 말은, 그저 새해에도 우리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보자는 거다. 꾸준히 살아가는 날들의 반복 속에서, 허투루 보낼 시간이 없다는 걸 늘 마음에 다짐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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