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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Sep 01. 2021

이제는 올케한테 잘해줄 수 있는데...

이혼 후 이야기 # 59






여름방학이 되자 아이들이 아빠네 갔다.

작년 방학을 마지막으로 아빠를 만나지 않았던 아이들이었다.


애들아빠는 매일 전화를 걸어 놀러오라고 했지만 아빠집에 가도 별로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은 쉽게 간다고 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없더라도

아빠집에 가면 최소한  고달프지 않아야 하는데,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아빠네 가면 아빠가 재혼해서 낳은 그 어린 아이를 함께 돌봐야 한다는 것을.


아빠가 두번째 이혼을 하면서

아이만 덩그랗게 남긴 집에서

'언니노릇'을 해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전해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림이 그려졌다.



아이들은 3주정도를 아빠네서 지내고 온 뒤

돌아오는 차안에서 식탁에서 내 방에 몰려와서

끝도 없이 아빠에 대한 실망을 쏟아냈다.



대체 아빠는 우리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


"아빠가 우리보고 밥준비할테니까 애 좀 씻기래. 그래서 아빠가 씻을 때 같이 데리고 들어가서 씻으면 되지않냐고 했더니 그럼 씻고 나올테니 저녁밥을 차리라는 거야. 말이돼?"


일년에 겨우 한두번 오는 아이들에게 아무 미안함도 없이 집안일과 아이 돌봄을 시키려는 아빠의 태도에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은 질색을 했다.



"왜 자꾸 우리한테 집안일이랑 애 씻기는 걸 시키냐고 따졌더니 아빤 퇴근하고 오니 힘들어서 그런거래. 말이 돼?"






아이들을 데리고 직장따라 곳으로 다섯번째 이사를 준비 때 전남편이 보냈던 문자메세지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또 전학하면 힘드니까 내가 잘 키우고 있을께



나는 그 문자메세지에 답장조차 하지 않았다.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제법 큰 딸들의 손을 빌려 집안일을 해결하고, 어린 아이를 돌보는 피곤한 일을 분담하고 싶었을 것이다.


상이 되고도 남는 뻔한 아빠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작은 아이가 말했다.



"일하고 오니까 피곤하다고?우리 아빠지만 진짜 어이가 없어서, 내가 엄마랑 안 살아봤으면 모를까 엄만 우리 어릴때부터 데리고 다니면서 혼자 집안일 다 하고 우리 다 씻겨줬잖아! 근데 아빠는 겨우 한명이야, 한명. 자기 딸 한명도 못키워?"




아이는 분노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떠나, 같은 어른이면서 엄마랑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아빠에게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렇지....

엄마도 그런 시간들을 너희와 함께 지나왔지...

엄마도 무척 피곤했어.


직장에선 너만 자식 키우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어린이집에 학원에 맡기다시피 한 너희들을 데리고 나오는 길이 천근만 근 무거운 몸만큼이나 아득했고 집에 들어와서는 또 저녁밥을 걱정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엄마, 고모들이 그러더라. 아빠 저렇게 사는거보니까 엄마가 그때 정말 힘들었을 거라고. 이제 느낀다고."





한숨이 나왔다.


전남편의 누나들은 미안함이란 것이 장착이 된 사람들이긴 했었던가.


애초부터 자기 가정의 소중함을 몰랐던 남편이야 원래 그런 사람이라 치지만, 같은 여자로서 내 마음을 이해해줄거라 순진하게 믿었던 옛날 시누들에게 받은 상처를 여전히 가슴이 덩그라니 얹고 사는 나에게 그 말들은 전혀 의외로 다가왔다.



"이번에 가니까 고모가 그러더라. 옛날에는 자기들도 젊었고 철없어서 할머니밖에 안보였다고. 엄마가 할머니 모시고 살면서 힘들어하는거 안보였다고. 그런데 아빠가 저렇게 생각없이 행동하고 사는거 보니까 엄마가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 이해가 된다고."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만약 다시 돌아오면 정말 잘해줄 수 있대. 완전히 옛날하고 다르게 이제는 정말 잘해줄 자신이 있대."



... 

우리 엄마 표현처럼

'콧구멍이 두 개니까 내가 숨쉬고 산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기가 찼다.




다시 돌아오면 잘해준다고?





엄마 표정을 살피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며느리의 남편이 아닌

내 아들, 내 아들하며 감싸고 도는 시어머니를 선두로

20대 초반 어렸던 새댁을 다그치던 시누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내 편이 하나도 없던 그 결혼생활이 떠올랐다.




"엄마가 돌아오면 잘해준다고? 그게 진심이었다면 아빠랑 결혼한 그 여자한테 잘해줘서 니들 아빠가 두번째 이혼은 하지 않도록 했어야지. 왜 그 여자 흉은 또 그렇게 본다니? 지나놓고 보니 그래도 엄마가 낫다고 이제야 느꼈나보지?"


나의 볼멘 소리에 아이들이 피식하며 웃었다.





나에게 한때 시누였던 그 사람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바뀔수가 없다.

사람 욕심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후회하는 그들의 마음을 전해들은 건

내가 지금껏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도록 열심히 살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긴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들도 누군가의 며느리였고

결혼생활과 남편과의 관계를 시댁으로부터 간섭받고 싶어하지 않았으면서 나에게는 시어머니에 대한 정성과 효도, 남편에 대한 순종과 인내를 요구했던 사람들.


내가 마지막으로 힘겹게 손끝을 떨면서

제발 잡아달라 내밀었을때

차가운 훈계로 내 눈물을 외면했던 사람들.



우리 엄마를 막 대하는 올케같은 여자에겐

조카들도 줄 생각이 없다고 내 아이들을 볼모삼으며 핏대를 세웠던 그 사람들.



 

결국 세월이

그들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모든 상황들이

이제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맨몸으로 둥지밖으로 떨어졌던 나는

마침내 큰 날개를 펴고

멀리 멀리 날아가버렸다.



그들은 따라오지 못할 곳으로 말이다.






그날 밤

나는 아주 오랫만에

잠을 푹 잤다.



숨죽인 훌쩍임도 없었고



베갯잇이 축축하게 젖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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