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저널리즘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 리뷰
지난 몇 년간 난 비혼 주의자였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엄마는 어릴 땐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며 웃어넘기셨지만 딸이 서른을 코 앞에 두자 남자 친구는 있는지, 결혼은 정말 안 할 건지 자주 묻기 시작하셨다. 몇 달 전에는 자뭇 진지하게 선을 권유하기도 하셨고 세상 다정하고 친절한 형부를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언니를 언급하며 결혼의 장점을 나열하기도 하셨다. 우리 엄마는 정말 귀엽다. 자칭 '쿨하고 진보적인' 엄마로서 '네가 결혼 안 한다고 할까 봐 걱정돼' 란 말은 못 하고 빙빙 돌리며 애달파하는 엄마가 정말 귀엽다. 물론 그런 맘을 다 알면서도 말로만이라도 안심을 시켜드릴 수 없는 딸의 마음 한편은 미안함이 가득하다.
엄마 난 결혼이 싫어
그렇다. 난 결혼이 싫다. 하지만 엄마가 오해하는 것처럼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없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결혼'이라는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그 제도 속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난 색이 매우 뚜렷한 사람이지만 연애를 할 때마다 병적으로 색을 죽이기 위해 노력했다. 상대방 취향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내가 선을 지키지 않으면 상대방이 선을 넘어 내게 피해를 줄까 두려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었다. 나를 잃는 것이 좋아하는 누군가를 잃는 것보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격한 결혼은 누군가의 희생이 전제된 것이었다. 엄마 핑계를 대는 건 아니지만 우리 엄마의 삶을 지켜보며 결혼에 대한 공포가 생긴 건 사실이었다.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시댁만 가면 '며느라기'를 벗어나지 못해 무리하기 일쑤고, 남편과 자식들의 일정에 거의 모든 것을 맞추느라 친구 한 번 편하게 만난 적이 없으셨다. 엄마의 희생 덕분에 우리 가족은 늘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깨끗한 집에서 쾌적한 생활을 하며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되었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너무 불공평한 일이었던 것 같다. 물론 2년 전 결혼한 언니가 결혼에 대한 인식을 많이 바꿔놓긴 했지만 여전히 결혼이란 제도가 내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세월도 변했고 인식도 변했다고 하지만 내 몸, 내 가족도 챙기기 힘든 이 시점에 결혼은 영 내키지 않는 것이다. 엄마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고 하셨지만, 난 왜 굳이 장을 담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말고 팍스
프랑스에는 결혼 말고도 팍스PACS(Pacte civil de soliarité)라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우리 말로는 '시민연대 계약'으로 옮길 수 있는데, 두 성인이 서로의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래 팍스는 동성화 결혼이 합법화되기 이전 동성 간의 관계를 인정해주기 위해 생긴 제도였는데 지금은 결혼의 관습적이거나 종교적인 것들에 동의하지 않거나 간소한 결합을 원하는 이성 커플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사실 프랑스에서 결혼과 팍스는 거의 동일하게 국가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받는다. 동일한 세금 공제, 복지혜택 등을 받을 수 있고 아이가 태어나도 같은 혜택을 받는다. 결혼과 다른 점이 있다면 팍스를 맺은 커플은 관습적인 보호(이를테면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배우자의 재산이 공동 재산으로 인정되거나, 별도의 유서 없이도 상속받을 수 있거나 하는 것들)를 받을 수 없고, 팩스 한 장이면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도, 법정에 출석할 필요도 없이 두 사람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쿨하고 진보적이지만 보수적인 우리 엄마가 들었다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결혼에 비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동거 계약 정도로 이해하실지도 모르겠다.
책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에서 4년째 팍스를 맺고 살고 있는 저자는 팍스가 개인에게 어떤 의미이고,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소개한다. 프랑스 커플들은 왜 결혼이 아니라 팍스를 맺을까? 팍스를 처음 듣는 누군가에게는 결혼이 어쩐지 신성하고 진중한 약속 같은 것이고, 팍스는 언제든 쿨하게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계약 같은 걸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가 언급한 통계를 보면 팍스가 결혼보다 가볍지 않고 오히려 결혼보다 더 서로에게 무게감 있는 계약임을 알 수 있다. <르몽드>의 자료에 의하면 결혼한 부부의 3분의 1이 이혼하지만 팍스를 맺은 커플은 10분의 1 정도만 팍스를 해지한다고 한다. 관습과 법에 의해 오랜 기간 보호받아온 결혼이라는 제도보다 개인의 자발적인 약속이 모여 성사된 이 계약이 파트너끼리의 연대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팍스의 전제조건
왜 결혼이 싫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남은 삶을 계속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결혼을 해서 누군가의 아내로, 며느리로 살아가기보다 내 이름 그 자체로 살아가길 원한다. 아내와 남편, 사위와 며느리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호칭일 뿐이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그 호칭엔 분명 상상 이상의 책임이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마치 개인에서 가족으로 삶의 중심을 옮겨가는 작업처럼 여겨진다.
프랑스 커플들에게는 어느 한쪽이 상대를 위해 희생할 수 없다는 긍정적인 개인주의가 있다. 가사 노동은 남녀 모두가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일반적이다. p.19
프랑스 커플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자세는 결혼 여부나 아이의 존재와 무관하게 혼자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지 않는 전업주부도 아이를 맡기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진다. p.23
아이를 돌보는 일이 개인의 몫으로 돌아가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국가의 적절한 지원을 받으며 일과 가정을 모두 지킬 수 있다. (중략) 프랑스 가정에는 대체로 평등한 분위기가 있기에, 시민 대 시민의 결합이라는 팍스의 존재 의의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 p.25
대부분의 프랑스 커플은 '개인'의 행복을 우선순위에 둔다. 다들 이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그렇게 살 거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육아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하는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여성에게 "아니! 결혼을 했으면 서로 참고 희생을 해야지, 이기적으로 굴면 되겠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친한 대학원 선배는 아이를 낳고 1년 만에 들어간 회사에서 "애는 애 엄마가 키워야지, 이렇게 애 엄마가 직장에 나와있으니"라는 부장의 시대 지난 잔소리를 들어야 했고, 일 잘하는 10년 차 게임 기획자 언니는 결혼을 하더니 사내 모임(업무 외 모임)에 참여를 안 하는 것 같다고(원래 잘 하지 않았음) 결혼하면 여자들은 변한다는 소리를 대놓고 들어야 했다.
아, 물론 결혼도 해보지 않고 속단하긴 이르다. 설령 이런 일을 당하는 것보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더 큰 행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로 존중받지 못할까 봐 겁이 나는 건 사실이다. 혹시 독박 집안일을 하진 않을까, 출산 휴가를 쓰고 돌아왔을 때 눈칫밥을 먹게 되진 않을까, 독박 육아를 하는 건 아닐까, 지하철에서 애 엄마란 이유로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이상한 육아 철학을 들어야 하진 않을까. 나열하다 보니 우리 사회에는 왜 이런 문제들을 공론화시키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이 부재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맥주를 마시고 싶어 졌다. 대학은 어디 갈 거니? 취업은? 결혼은? 아이는? 무엇에 대한 요구는 끊임없지만 어떻게라는 방법은 충분히 언급되지 않는다. 집요하게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남들 다 하니깐 너도 해봐야지. 한 번뿐인 인생인데.'란 답이 돌아온다. 응? 한 번뿐인 인생인데 남들 하는 대로만 하다 가라고? 반감이 든다.
프랑스 사회는 어떤 상황에서든 개인의 행복을 우선순위로 둔다.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가족이 희생되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 배려를 한다. 경제적 차원의 배려는 '함께' 사는 것을 시도하는 이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행정적 차원의 배려는 시민들의 인식을 자연스럽게 개선시킨다.
서른이 넘으면 결혼 시장에서 뒤처진다거나, 특정 나이가 되면 얼마짜리 차를 몰고, 몇 평짜리 집에는 살아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생각이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제한한다. p36
결혼을 하려면 함께 살 집이 있어야 하고, 결혼은 자취가 아니니깐 어느 정도 크기와 상태가 되어야 하고, 혼수나 예단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런 형식적인 것들도 챙겨야 하고 결혼식과 그에 수반되는 많은 일(이를테면 스드메라든지 인사라든지)들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라온다. 예전엔 사랑하는 사람만 생기면 결혼은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 경제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내 미래 전반에 관해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져서 그냥 결혼이란 제도 안에 편입되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는 결혼에 대한 기대와 환상은 크지만, 결혼 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노력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결혼의 본질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 차이를 노력으로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다양한 개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다양한 가족 형태를 존중하는 문화도 만들어진다. 팍스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기로 한 시민들의 선택을 국가가 법으로 보장한다는 점에서 무엇이 진정한 시민의 권리인지 질문하게 한다. p.49
결혼의 본질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 차이를 노력으로 극복해 나가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결혼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기간 혹은 수혜대상자 측면에서)단편적인 정책들을 내놓을 뿐 당사자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국가적인 차원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인의 행복과 권리를 지켜갈 수 있을지 터놓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시간이나 인력의 문제에 있어 공론화하고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보다 예산을 써서 정책을 내고 그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다시 예산을 쓰는 것이 효율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문제는 효율보다 본질에 집중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팍스 어때?
요즘 주변의 신혼부부들을 보면 통장을 따로 관리하고 생활비 통장이나 적금통장을 함께 만든다. (사회적 시선 때문에) 결혼식은 올리지만 3년이 지날 때까진 혼인신고서를 작성하지 않기로 약속하기도 한다. 각자 합의해서 예산을 관리하면 껄끄러운 일들이 많이 사라진다고 한다. 특히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같은 특별한 때에 말이다. 30년 가까이 혹은 더 많은 세월 동안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한 번에 같은 방식의 삶을 영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격차뿐 아니라 생활적 습관에 대한 격차까지 한 번에 경험하게 될 수 있다. 누군가는 혼자 살아본 경험이 없고, 누군가는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본가에서 나와 혼자 살아간다. 이 둘이 갑자기 한 집에서 함께 산다고 가정해보자. 집안일부터 시작해서, 공과금 및 각종 생활비 운용에 대한 가치관 차이가 속속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살아온 환경이 너무도 달랐을 뿐.
우리는 불같이 싸우며 서로의 경계선을 알아가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서로를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건 그와의 동거가 결혼을 했다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나의 의지에 따라 선택한 결과라는 생각이 컸던 덕이다. p12
저자의 회고처럼 팍스를 한다고 모든 것이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적 인정 속에서 개인이 서로의 다름을 알아가고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갈등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상황이 된다. 우리나라에는 팍스와 같은 제도가 없지만 만약 팍스와 같은 제도가 생긴다면 난 어떤 조항을 가장 먼저 넣게 될까? 우선 가장 걱정되는 부분인 '임신과 출산'에 있어서는 정책적인 도움이나 가족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조항이나, 1년에 며칠은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서로 떨어져 시간을 갖는다는 조항이나, 커피나 의류비는 줄여도 쉽게 줄어들지 않는 문화나 교육 부분의 비용에 대한 상대방의 동의조항이라든지, 독박 집안일에 대한 공포를 불식시키기 위한 가사분담에 대한 세부 조항 등이 포함될 것이다.
한국은 결혼을 해야만 진정한 파트너가 됐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하고 나면 상대방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이와 반대로 프랑스에서는 상대방의 삶을 속박할수록 서로 멀어지기 쉽다고 생각한다. p.40
저자의 말대로 결혼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면 프랑스와 한국은 확연한 차이가 난다. 결혼을 하면 이건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하는 정답지가 너무도 많은 한국에서 결혼은 누군가에겐 심리적인 안정을 줄 수 있는 제도일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속박당하거나 기존과 다른 가치관을 강요받는 것이 당연한 제도가 될 수도 있다. 남편이라면, 아내라면, 아빠라면, 엄마라면, 사위라면, 며느리라 우선적으로 부여받는 의무보다 두 사람이 합의해서 만든 우선순위에 집중할 수 있어야 결혼의 본질을 지켜낼 수 있다.
팍스는 '동성애'라는 상황에서 가족 구성에 대한 개인의 권리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시작된 만큼 시민과 시민 사이의 연대에 있어 둘 만의 상황에 맞게 계약 조항을 만들고, 국가가 이를 존중하고 하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팍스는 일괄적인 법에 의해 관리되는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끼리 심사숙고한 계약 조항과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관계다. 자발적으로 서로의 역할을 정하고 서로에게 맞는 약속을 하면 그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그만큼 약속을 지키기도 쉽지 않을까.
팍스를 내 상황에 적용해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결혼이니깐 응당~~', '결혼을 하면 남편이 당연히~~' 하고 생각했던 부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나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몇 가지 조항만 나열해보았는데 연애만 하더라도 내가 주장한 내 권리를 위해 상대방이 어떤 부분들을 양보해 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상대가 이 부분을 양보해줬으니 나도 양보를 해줘야겠다고 머리로는 이해를 했지만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선 나만 배려받길 바라는 부분들이 있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예비 배우자와 팍스를 맺으러 프랑스까진 못 가겠지만 우리만의 모의 팍스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된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가족이 된다는 건
모두 그렇겠지만 난 가족이 참 좋다. 마주 앉아 있으면 5분도 안 되어 서로를 물고 할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가족이 좋다. 하나하나 캐릭터를 그려볼 수 있는 가족들이 있어 행복하다. 이 상황에서 아빠라면, 엄마라면, 언니라면, 동생이라면, 이제 형부라면 어떻게 할지 소소하게 예측을 해보는 일도 참 즐겁다.
혼자 사는 건 정말 편하다. 가족들과 함께 있다가도 하루를 못가 나 혼자만의 공간을 그리워할 만큼 혼자 사는 건 정말 좋다. 청결하게 유지하는 방바닥도 좋고, 언제든 제자리에 있는 물건들도 좋고, 나에게 쾌적한 온도와 나에게 꼭 맞는 가구 배열이 참 좋다. 가족이 된다는 건 함께 있으면서도 나에게도 가장 편하고 좋은 상태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언니와 내가 방을 같이 쓰면서 격렬한 전투 끝에 서로에게 편안한 위치와 상황 등을 찾아갔던 것처럼 말이다. 구성원 모두가 그렇게 공존할 수 있다면 그건 인종, 성별, 나이를 막론하고 가족의 범주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함께여서 더 즐겁고, 함께여도 행복할 수 있는 상태 말이다.
팍스를 읽으면서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프랑스 사회가 참 부러웠고 그들의 사고방식에 깊이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었다. 더 깊이 공감할수록 내 앞에 닥친 문제들의 본질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없는 정책적인 문제인 걸' 하고 포기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달까. 넷플릭스 드라마를 읽는 것처럼 금세 읽어 내리고는 책을 덮으면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 책의 소개 링크를 보냈다. 유유상종이라 했는가 친구들은 링크를 받자마자 고민하던 내용이라며 옳다구나 주문을 했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깊이 읽고 생각해야 할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