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한 마음이 그리운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
가을이다. 여느 때라면 지독하게 가을을 탔을 텐데 이상하게 올 가을은 어떤 동요도 없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드는 한편 매섭게 차가워진 바람에 가을 특유의 감성이 그립기도 했다. <청설> 포스터를 보자마자 브런치 무비패스 참석을 신청했다. 이거다! 잃어버린 감성을 금세 회복시켜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손발이 오그라드는 순간은 견뎌야겠지만.
티엔커는 부모님의 도시락 가게에서 배달 일을 돕는다. 그리고 배달을 갔다가 농아인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훈련이 열리는 수영장에서 수영선수 샤오펑의 동생 양양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샤오펑과 수화를 나누는 양양을 보고 티엔커는 대학 때 배운 수화를 최대한 기억해내며 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주 조용하지만 강력한 언어 수화로 대화를 시작한다. 물론 몇 마디 대화가 오가지도 못했는데 양양은 알바 시간에 늦었다며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양양을 만나고 싶은 티엔커와 샤오펑의 뒷바라지와 알바로 가득 찬 스케줄에 바쁘게 뛰어다니는 양양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청설 Hear Me>이라는 다소 직설적인 영화 제목에 충실하게 영화는 청각장애인의 일상이 그려진다. 주인공이 나누는 대부분의 대화는 수화로 이루어지며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사운드는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사운드임에도 불구하고 생경하게 느껴진다.
보통사람과 청각장애인의
연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영화의 후반 양양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애정을 표현하는 티엔커에게 메신저로 묻는다. 티엔커는 부상으로 농아인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조차 어려운 샤오펑이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쉽다'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양양에게는 전혀 쉬운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양양과 샤오펑은 매우 우애 좋은 자매다. 양양은 자신의 이야기보다 언니 샤오펑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자신의 스케줄을 샤오펑에게 맞춘 채 살아간다. 어릴 적부터 마음을 읽는 법을 알았다는 샤오펑은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동생 양양에게 늘 미안함을 느껴왔다. 어느 날 저녁, 양양이 티엔커와 처음 밖에서 저녁을 먹은 날 샤오펑은 위층에 불이 난지도 모른 채 잠들어 갈비뼈와 후두에 부상을 입게 된다. 이후 양양은 집에 일찍 들어가지 못해 샤오펑이 다쳤다며 자책하고 샤오펑은 그런 동생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양양에게 보통사람과 청각장애인의 삶은 분명 다르다. 다르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보살핌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책임감이 필요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티엔커는 자신의 부모님만 허락한다면 청각장애인의 삶이 보통사람들의 삶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수화를 조금 더 열심히 배우면 된다고 생각할 뿐. 다르다는 것에 대한 기준이 확연히 차이나는 양양과 티엔커는 그저 먼발치에서 꽤 오랜 기간 서로를 그리워하기만 한다.
양양과 티엔커가 서로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은 풋풋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도시락을 싸고, 사랑하는 사람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작은 이벤트를 하고,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서 서로를 의식한다. 하지만 둘 사람의 사이를 좁히기는 쉽지 않다.
배려와 배려가 만나 오해가 생기고 꽤 오랜 기간 오해는 지속된다. 그리고 비로소 두 사람은 평소와 다른 직설적인 대화에서 오해를 풀고 서로의 마음을 분명히 확인하게 된다. 두 사람이 했던 오해는 영화를 보면 금세 알게 되지만 오해가 지속되는 과정 자체가 아이러니하게도 풋풋한 사랑의 표현이 된다. 설레고 싶어서 본 영화였고 영화가 끝나고 충분히 목적을 달성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가끔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감성적이거나 뻔하더라도 감정이 살아있는 영화가 그리워진다면 <청설>을 보길 추천한다. 영화가 끝나고 따듯해진 마음 덕분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고 싶은 마음도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