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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okno Jul 06. 2023

날씨의 아이

天気の 子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너의 이름은.' 과 '스즈메의 문단속' 을 보았다고 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날씨의 아이' 는 보았냐는 것이다. 나는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움츠러들며 흥행도 잘 안되었고, 평도 그저 그랬고.. 하는 이유를 황급히 짜낸다. 나도 보기보다 참 주관이 없고 잘 휩쓸리는 스타일이다. 그러면 대부분은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가지만  '날씨의 아이' 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얼렁뚱땅 넘어갈 수가 없다. '날씨의 아이' 를 보려면 비가 오는 날에 봐야 분위기가 산다든가, 색감과 풍경이 너무 예쁘다던가. 다른 사람도 아닌 신 감독 작품이니 보지 않더라도 그렇겠거니 생각은 하지만, 주관이 없고 잘 휩쓸리는 스타일이다 보니 상대가 집요하게 추천하면 결국 넷플릭스를 뒤적거릴 용기가 난다. 등 떠밀려 본 것이어도 본 다음에는 쿵쾅대는 심장을 붙잡고 "너무 좋았어!" 하고 그 사람에게 열렬한 메시지를 보내는 건 덤.




디자인


예전부터 빛을 사물이나 도시, 하늘의 풍경에 입히는 것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시그니처다. 빛의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처음 감독의 영화를 접하든 팬으로서 신작을 보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매력이며 다른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따라할 수도 없는 스타일인 것 같다. 그리고 표현 방식이 비슷할 수는 있어도, 가령 태양빛이 반사되는 하늘의 풍경은 감독의 모든 영화에서 나오지만 그 안을 구성하는 색감과 명도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특히 날씨의 아이에서는 스토리의 특성상 빛이 차지하는 장면이 다른 작품에 비해 적었기 때문에 더 인상깊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시종일관 어두웠던 배경이 히나의 희생으로 맑음을 되찾았을 때 구름을 비집고 쏟아지는 햇빛은 마치 빛의 커튼처럼 일렁였던 것이 기억에 선명하다.

가장 두드러지는 오브제는 식물이다. 초반에 스가의 작업실에 방문하는 부분부터 등장하는 나무와 화분에 담긴 조그만 식물들은 빗물을 머금어 푸르르고 활력이 넘쳐 보인다. 타치바나 타키가 카메오로 나왔던, 타키의 할머니 집에서도 키우는 식물들이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감독이 영화마다 매번 다른 애니메이터들과 일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 같이 일을 했던 그 분이 식물을 좋아하는 분이실까 궁금하다.

전작인 너의 이름은. 과 비교하면 남자 모델과 여자 모델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타키와 호다카는 얼굴면은 조금 다른 것 같았지만 머리 스타일이 비슷하다. 같은 일본 남자 스타일이어서 그럴까? 미츠하와 히나는 얼굴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이목구비, 또는 인상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신 감독이 좋아하는 얼굴형인 걸까 궁금하다.




스토리



違う!やっぱり違う!
あの時僕は、僕たちは確かに世界を変えたんだ。
僕は選んだんだ。
あの人を!この世界を!
ここで生きていくことを!


아니야! 역시 아니야!
그 때 나는, 우리는 확실히 세계를 바꿨어.
나는 선택한거야.
저 사람을! 이 세계를!


여기서 살아가는 것을!



전작과 거시적인 구성이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두 주인공 남녀가 모종의 사건으로 만나고, 여자는 특별한 사연이나 능력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둘은 가까워지고 시련이 찾아온다. 그것으로 둘은 물리적으로는 만날 수 없는 거리까지 멀어지고 남자(또는 둘 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의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녀를 구하고 둘은 행복할 것을 암시한다. 


신카이 감독 특성상 한 영화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건지 메인 스토리에 부가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부분은 있으나, 나는 스토리의 클리셰성이나 개연성, 사실성에 목매지는 않고 구멍이 나 있는 부분은 상상에 맡기며 나아가는 편이어서 불편한 점은 없었다.

가령 총이 나온 이유는 뭘까? 총이란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이다. 손에 쥔 모습만 보더라도 긴장감을 유발하며 심하게는 사람의 목숨을 뺏을 수 있는 물건이기도 하다. 호다카는 초반에 총을 얻은 뒤로 감정이 극에 치닫을 때 꺼내 자신을 가로막는 것에게 겨눈다. 심지어 처음 한 번은 업소 실장의 얼굴에 대고 쏘았으나 빗나갔고 두 번째는 가출한 자신을 데리고 와 돌봐준 사람에게 겨누었다. 내 생각에는 가출 소년이 표출할 수 있는 불안정한 감정 상태와 혼란, 긴장, 공포 그 모든 것들이 응축된 소재가 총이 아니었을까 한다.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홀로 무서운 사회에 나와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마음이 얼마나 두렵고 외로울까. 어른인 나도 이 사회에 발을 딛고 발버둥치는 것이 간혹 숨이 턱 막히곤 하는데.


또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불투명한 동물 모습의 물방울이나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물방울 등 흥미를 끌 만한 오브제가 나왔는데 이것에 대해서 후반부에서 짐작할 만한 회수 장면이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그런 비의 형태를 보면서 지금 내리는 비가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것이 날씨의 아이, 날씨를 관장하는 무언가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는 짐작하기 어려웠고 초반에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수단으로만 사용된 것 같아 아쉽다.


호다카와 히나 사이의 감정의 개연성은 다소 충실한 편이다. 가출 직후 돈이 떨어져가는 즈음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히나가 먼저 관심을 가져준다. 3번 연속 같은 메뉴만 시켜놓고 매장에서 죽치고 있는 걸 보면서 같은 가출 청소년이라는 걸 은연중에 안 것일까? 얼마 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업소에 끌려가던 그녀를 다시 만나고 구해준다. 히나가 비 오는 날씨를 맑아지게 하는 능력이 있는 걸 알게 되면서 함께 맑음 소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히나가 제물로 희생된 후에는 도리이를 건너 따라가 다시 데리고 돌아온다. 시종일관 문을 찾으러 다녔던 스즈메나 둘 사이에 3년의 시간이 가로막고 있었던 너의 이름은. 과 달리 함께 지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서로의 신뢰가 쌓이고 애틋한 감정이 쌓였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작중 카메오로 미츠하와 타키가 나온다. 중요한 역할 없이 얼굴만 비추는 정도지만, 개인적으로는 날씨의 무녀인 히나와 같은 무녀인 미츠하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거나 아니면 조언을 해주는 장면이 있었으면 했다. 히나가 우연히 도리이를 지나쳤다 영문도 모르는 천재지변을 치료하는 날씨의 무녀가 되었다면 미츠하는 태생이 무녀 집안이지 않나. 혹은 타키가 히나와 만났을 때 무언가 눈치채고 넌즈시 말을 건네보는 것도 좋았겠다. 그러고 보니 미츠하는 무엇을 기원하는 무녀였을까?


조금 불편했던 점은 신 감독의 영화에는 한국에서는 유치하다고 느끼는 19금 개그가 종종 나오는데, 이번에는 그 횟수가 조금 과했다는 것이다. 전작에서는 타키와 미츠하가 서로의 바뀐 몸을 만진다든가 하는 장면이 분위기상 우스꽝스러워서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분위기도 없고 그냥 가슴 봤지, 무의미하게 소비되는 천박한 개그 같아서 좋게 보이지 않았다. 특히 호다카가 속으로 좋아하는 히나가 바로 옆에 있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는 장면은 정말 몰입하기 힘들었다.


가장 많은 생각이 든 장면은 결말 부분이었다. 호다카가 경찰들 사이를 뚫고 도리이를 지나 구름 위로 올라가 히나를 구한다. 호다카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3년의 공백을 견딘다. 그리고 다시 도쿄로 와 히나가 사라졌던 바로 그곳으로 걸어가며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네 잘못이 아니야. 세상이 미쳐버린 거야. 이렇게 말하면 좋을지 망설이다 히나와 재회하고 호다카는 "우린 별 일 없을거야!" 하고 영화가 끝나게 된다. 

나는 호다카가 히나를 구하는 것까지는 당연한 전개이고 3년의 공백 또한 호다카의 설명이 있으므로 감안할 수 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와닿지도 않는 그런 말을 한 채 해후도 없이 그냥 끝내버리는 것이 너무 허무했고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결말 해석에 대한 부분을 찾다 감독의 의도를 알고 나서는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매일 비가 쏟아지고, 3년 동안 사람들은 이런 날씨에도 꽃놀이 보러 갈 생각에 기대하고, 도쿄는 예전처럼 섬으로 변한 현실에서 호다카는 히나에게 이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려다 우리가 선택한 미래라고 생각하게 된다. 호다카는 몇 명인지도 모를 일본 시민들이 맞이할 밝은 날보다 음울한 하늘 밑에서의 히나를 선택한 것이다. 다만 히나는 천재지변이 자신 때문에 발생한 건 아니지만 이전처럼 기도로 맑아지지 않는 것을 탓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자신의 기도가 더이상 듣지 않는데도 3년이 지나 호다카가 찾아오는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를 하고 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더 나아가서, 날씨를 바꾸지 못하게 되면서 히나는 더이상 맑음 소녀도 아니고 날씨의 아이도 아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호다카가 히나를 구출하기 위해 도리이를 지나면서 다음 날씨의 아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다른 하나의 근거는 히나가 사라진 뒤 잠시 맑아졌던 날씨는 다시 종일 비가 내리는 이전과 똑같기 때문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히나가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호다카는 강한 사랑의 열망으로 절대 다수를 포기하고 한 사람을 구원했다. 결국 히나는 자신 때문에 호다카가 무거운 짐을 떠맡았고, 여전히 사람들이 이상 기후로 고통받는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녀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물



そこまでして会いたい子がいるってのは、


わたしなんかにゃ、なんだか羨ましい気もしますな。


그렇게까지 해서 만나고 싶은 아이가 있다니,


저는 왠지 부럽기도 하네요.



작품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암울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주인공 남녀는 그것을 극복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이기까지 하다. 도와주는 어른도 많지 않다. 실제 배경 또한 대부분은 종일 비가 내린다. 그래서 작중에 흐르는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어둡고 음울하다.

호다카는 초반에 빚을 졌다든지 몸에 난 상처들로 어떤 가정 환경에 있었으며 가출을 감행할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연히 총을 가지게 되면서 그것을 실제로 사용할 정도로 심신이 불안정하고 그에 따라 폭력적인 모습도 종종 보인다. 다만 주변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드러나는 실제 성격은 순수하고 쑥스러움을 타는 일반적인 소년이다.

신 감독의 영화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주인공 남녀 중 주가 되는 인물이 다른 한 사람을 강렬한 감정을 가지고 그 감정이 영화 안에서 낭만적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날씨의 아이에서는 호다카가 히나에 대한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다양한 말과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준다. 나는 그것에서 어쩌면 그 나이에만 가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뜨거운 감정과 무모함, 기개를 느꼈다. 내 앞에 무엇이 가로막든 나는 널 사랑할 거야. 신체적 한계, 사람들, 벽이나 숲, 심지어 운명이 가로막는다 해도 나는 네게 달려가 손을 잡을 거야. 호다카는 히나 앞에서 잃을 것이 없었고 오직 히나뿐이었다. 그런 사랑을 보고 있으면 나도 그 길을 따라 달려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히나는 자신에게 내린 모든 운명을 강인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영화상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히나는 호다카보다 더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병실에서 꼼짝도 못하는 어머니를 혼자 돌보고 있었고, 호다카를 만난 뒤에는 초등학생 동생과 둘이서만 살고 있었다. 호다카가 처음 집을 찾아갈 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쉬쉬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맑음 소녀 일을 할 때 타키의 집에 갔다가 어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더 뒤로 가면 중학생인 나이를 고등학생으로 속여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도 알려주며 음울함을 더한다. 

히나는 이런 상황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호다카를 만나 맑음 소녀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 생기를 꿋꿋하게 이어간다. 능력을 너무 쓰는 바람에 자신의 몸이 사라져 가면서도, 이 상황이 너무 두려운데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호다카에게 작별을 고하고 사라진다. 하지만 이런 면모도 동기가 되었던 호다카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서로가 용기를 내고 살아갈 의미를 얻고, 거대한 사회 안에서 유대감을 가지고 결국 제 모습을 찾아가는 둘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스가 타이스케는 거의 유일하게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져 인상깊었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회사 상사로서, 호다카의 인생 선배로서 여러가지 고뇌와 언행이 두드려졌다. 처음에는 대책 없고 이게 직업일까 싶은 모습, 면식이 없는 호다카를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모습에서 낭만적인 캐릭터인가 싶다가도 가출소년인 걸 알게된 후 퇴직금을 주고 내보내는 부분이나 히나가 인간 제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인식, 호다카가 도리이를 지나 히나를 구출하려 할 때 보여주는 모습들은 현실적이고 전형적인 어른이다. 하지만 이 간극에서 너무 일찍 보내버린 아내와 자주 만나볼 수 없는 자식에 대한 애틋함은 작중 내내 스가를 갈림길에 서서 고뇌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작중 스가의 작업실에서 경찰과 호다카가 도망간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나, 도리이로 올라가려는 호다카를 처음에 막아서다가 한번 더 히나를 보고 싶다는 말에 그를 도와주는 장면이 그런 것들을 잘 보여준다.


스가 나츠미는 형부인 타이스케보다 감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처음 호다카를 봤을 때도 금방 친해져서 호다카가 계속 이곳에서 지내며 일을 할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히나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이후 호다카가 사무실에서 쫓겨났을 때는 타이스케를 심하게 타박하고 호다카가 경찰서에서 탈출해 도리이가 있는 건물로 가려할 때 도와주는 등 여러가지로 두 주인공에게 감정적으로 동조해주고 응원해준 인물이다. 

타이스케와 나츠미는 방법이 조금 달랐을 뿐 호다카와 히나에게 가장 가까이서 도움을 주었고 그들이 어린 나이에 어두운 길로 빠지거나 더 망가지지 않도록 이끌어주었던 든든한 조력자였다. 


그리고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타키와 미츠하가 나와서 놀라기도 했고 반가웠다. 작중에서 고등학생이었던 그들이 성인이 되고난 뒤 주요한 역할은 아니지만 조력자의 모습으로 등장해 마음이 따뜻해지는 부분이었다. 




총평


이렇게 신 감독의 3부작을 모두 챙겨보게 되었다. 일본 영화 중에서는 가장 많이 찾아본 감독이다. 세 영화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운석 충돌, 호우, 지진이라는 자연 재해와 관련이 있다는 것, 이로 인해 주인공 남녀가 만나게 되고 사랑으로 그것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란 무조건적이어서 작중 내내 운명처럼 서로에게 이끌리는 낭만적인 모습으로 연출된다.


다른 두 작품과 차이점이라면 제일 먼저 배경과 분위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해가 뜨거나 노을이 질 때 아름다운 풍경과 하늘의 묘사는 변함없지만 암울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과 그걸 반영하듯 매일 내리는 비, 먹구름 낀 어두운 풍경이 주를 이룬다. 또 모두가 행복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과 달리 생각하기에 따라 배드 엔딩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중간중간 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의 변화나 결말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면서 영화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소재는 비교적 덜 참신했고 자연 재해를 주요 사건으로 구성한 것은 기존 작품들과 공통적인 것, 어린 주인공들이 가로막힌 벽을 허물고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이 예상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이동진 평론가님이 한줄평으로 남긴 '맥없이 재활용하는 전작의 모티브들, 심지어 단점까지도.' 라는 말에 많이 동감한다. 

최상위 시나리오에서 한 단계 내려오면 보이는, 눈에 띄는 소재들은 일본 문화에 익숙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한계도 있었지만 영화 자체를 보는데 문화적 차이까지 느껴가며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J-조커라든지 리틀 조커라는 평이 많았지만 긍정적으로 호다카와 히나가 짜맞춘 대로 흘러가는 거대한 사회에서 곤경을 딛고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재회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나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누구나 머리로는 세계의 평화와 공리주의적 판단을 신뢰할 수 있다. 하지만 십대 사춘기의 나는 그렇게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나를 해치는 가족들, 차가운 사회가 미워서라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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