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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okno Jul 13. 2023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포스터에는 주인공이 센 강을 걷는 장면과 함께 반 고흐의《별이 빛나는 밤》이 펼쳐지지만 정작 고흐는 나오지 않고 주요 인물로 피카소와 헤밍웨이가 나온다. 


There's no book or painting, or symphony or sculpture that can rival a great city. All these streets and boulevards as a special art form.



우디 앨런의 두 번째 영화이다. 첫 번째 영화였던 '레이니데이 인 뉴욕' 을 접한 지는 꽤 되었지만, 그 영화에 푹 빠져 몇 번씩 반복해서 보는 바람에 다른 영화를 접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이 영화를 두 번째로 선택한 이유는 나에게 파리라는 도시가 가장 매혹적이고 심미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혼을 담아냈던 벨 에포크 시대의 중심에 있었던, 19세기 도시 개혁 당시의 건물 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골목, 센 강이 가로지르는 거리와 산들거리는 바람, 바로 앞에서 테이블을 깔고 커피와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상상하면 도시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름다울 수밖에 없고, 그것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우디 앨런은 더없이 완벽한 감독이다.



디자인


영화가 막 시작되면 파리의 여러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데, 짧은 몇 분간 우리는 지금 있는 곳이 영화관이든, 방구석이든 상관없이 마법에 빠지게 된다. 에펠탑과 센 강, 루브르 미술관과 유리 피라미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샹드마르스 공원, 벨에포크의 정취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건물들, 우아한 디올 간판, 거리의 한쪽을 메우다시피 한 테이블과 의자들, 그곳에서 사람들은 걷고 먹고 또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태어난다면 저곳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과 이번 생은 어쩔 수 없으니 내 자식이라도 살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가 내리는 파리는 어찌나 더 아름다운지, 100년 전에도 내렸을 빗방울이 거리를 적시면 잠시나마 21세기의 디지털 장막이 벗겨지고 이전의 찬란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길바닥에 놓인 소화전과 버스 정류장마저 아름다울 수는 없다.


지베르니의 정원과 오랑주리 미술관 중 하나의 사진만을 선택한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겠다. 전시 공간의 짜임새와 작품 자체의 매력이 모니터 바깥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초반부터 눈을 사로잡은 영화는 관람자의 시선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이어서 클로드 모네가《수련》을 그렸던 정원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길은 입을 열 때마다 연신 찬탄을 해대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데, 모니터 밖에서 침을 흘리면서 보고 있는 내 모습과 똑같아서 너무 몰입이 잘 되었다. 지베르니에 위치한 모네의 정원에서 모네가 어쩌고, 인상주의가 어쩌고부터 시작해서 이곳에서 살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다 보면 몇 시간은 거뜬히 앉아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파리 패키지여행은 금물이다.

그 뒤로도 우디 앨런은 모네를 꽤 좋아하는지,《수련》이 실제로 전시된 오랑주리 미술관에 등장인물들이 방문해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타원형에 가까운 백색의 전시 공간에 세지 않고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데, 이곳에 들어가면 세 개의 연작이 관람자를 둘러싼 형태로 걸려 있다. 가운데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구름 낀 낮에 집에서 자신의 정원을 보고 있는 모네의 심정을 느낄 수 있을 것도 같다. 

또 베르사유 궁전과 로댕 미술관도 무척이나 예쁘게 나온다. 마침 나는 이 영화를 보던 시기에 '파리 박물관 기행'이라는 교양 강의에서 로댕 미술관에 대한 부분이 있어 더 관심을 가지고 본 장면이었다. 

파리의 마법 때문일까 아니면 놀라운 연출력 때문일까, 길이 우연히 콜 포터의 음악을 들었던 평범한 길거리조차도 아름답게 나온다. 오르골과 LP판을 파는 가게, 세월이 보이는 원목 테이블 위에 놓인 소품들, 유리장에 진열된 도자기들... 그 사이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특별한 풍경이 된다.




늦은 밤 길거리를 떠돌던 길은 도로에 있을 리가 없는 구형 푸조를 마주치고 재즈 시대로 돌아간다. 이 차는 20세기 초 대표적인 자동차인 포드 모델 T와 비슷한 골격이나 고급형 모델인 것 같았다. 앞뒤로 조금 더 긴 밴 모양이고 운전 좌석과 분리된 뒷자리는 사람들이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도록 좌석을 배치했다. 옛날 차량들은 지금과 달리 차체가 작고 전조등이나 바퀴 달린 부분이 분리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상당히 예쁘다. 색깔도 배경의 건물 색과 맞추어 밝은 크림색인 것이 잘 어울리게 배치했다고 생각했다.


100년 전으로 돌아간 파티에서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인테리어와 의복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구한말 경성 시절의 인테리어다. 고풍스럽고 사치스러운 샹들리에와 거추장스럽게 긴 커튼, 짝을 지어 서재에 꽂혀 있는 양장본들. 프릳츠나 경성 함바그의 인테리어를 생각하면 곧 짐작할 것이다. 또한 지금과 비슷한 양복 차림의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당시 유행했던 플래퍼 스타일로 보다 자유롭고 날렵한 인상을 주는 의상을 입고 있다. 다만 여기에도 의상과 머리에 온갖 보석으로 치장해 사치스러운 분위기는 그대로이다.

또 놀이공원 기구를 테마로 한 파티 장소도 있다. 지금으로 따지면 롯데월드 실내에서 파티를 하는 셈이다. 넓은 공간의 중앙에 거대한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은 신나게 춤을 춘다. 한쪽 가판대에서는 작은 공을 던져 상품 맞추기를 하고 있고, 반대쪽에서는 술잔을 나누고 있다. (길이 아드리아나와 이야기할 때 이런 파티는 피츠제럴드만 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 그가 대작을 여럿 썼음에도 왜 중간중간 빈곤에 허덕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가스등의 불빛이다. 주로 과거 시점을 무대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조명으로 자주 등장하는 가스등은 LED처럼 선명하지 않고 부얘서 실제로 사용할 때는 불편하기조차 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등의 불빛을 보면 1920년대뿐만 아니라 지나간 옛것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신기루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인상 깊은 장소가 있다. 바로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이다. 주인공 길이 헤밍웨이를 통해 스타인의 살롱에 처음 들어갔을 때 세련된 인테리어는 물론 벽에 걸린 수많은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비평가와 수집가로서의 그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처음 등장하는 부분에서 그녀가 앉아있는 뒤편에 피카소가 그린 그녀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곧바로 피카소의《공을 가진 목욕하는 여인》을 가지고 그림의 모델이었던 아드리아나의 매력에 대해 논쟁을 하는데, 카메라가 스타인과 피카소를 번갈아 비추는 동안 관객은 벽에 걸린 작품들에게도 집중할 수 있다. 자리를 옮긴 아드리아나와 길이 들어간 방에서도 벽에 초상화나 회화가 걸려 있어 그녀의 공간이 마치 하나의 갤러리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드리아나와 함께 떠난 벨에포크의 시대는 구형 푸조 대신 말과 마차가 그들을 막심 레스토랑으로 데려다준다. 재즈 시대와 외관적으로 큰 차이는 못 느꼈지만, 당대 유행했던 카바레 문화와 무용수들이 캉캉 댄스를 선보이는 장면에서는 인상 깊었다. 




스토리



주인공 길 펜더는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로, 약혼한 사이인 이네즈와 함께 프랑스로 여행을 왔다가 파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어느 날 혼자 파리의 밤거리를 걷고 있는데 현대에 다닐 리 없는 구형 푸조가 앞에 서고, 타고 있던 사람들이 한잔 하자며 차에 타라고 제안한다. 길도 조금 취한지라 거절하지 않고 차를 타는데.



도착한 장소에서 길은 피아노를 치고 있는 콜 포터를 보고 어안이 벙벙한다. 뒤이어 등장한 젤다와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도 그를 놀라게 한다. 젤다의 수다스럽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과 단정하고 예의를 갖춘 스콧의 모습. 길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어쩔 줄을 모른다. 모니터 밖에서 보는 나도 길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만약 이 영화에서 딱 한 장면만 꼽으라면 이 장면을 뽑을 것이다. 스캇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중 인상 깊었던 부분으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구절이 있다. '50 피트 떨어진 곳에 또 한 사람의 모습이 이웃집의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찌른 채 서서 은빛 후춧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작품을 특히 좋아하거나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을 눈앞에서 마주한다면 누구라도 비슷한 마음이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으로 등장한 인물은 피츠제럴드의 동료이기도 한 헤밍웨이다. 길을 만난 그는 특유의 마초적 성격으로 대화를 주도하며 그에게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사실 나는 헤밍웨이를 교과서나 학생 때 의무적으로 읽었을 뿐 작가로서도 그렇고 사람으로서는 더더욱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길에게 작가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같은 조언을 해주는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나 또한 글을 쓰는 작가로서 격려도 받고 배우는 것이 많은 부분이었다.

You're too self-effacing - it's not manly.
if you're a writer, declare yourself the best writer.


또 글과 작가를 포함해 더 넓은 차원에서 삶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진지한 충고를 해준다. 


You'll never write well if you fear dying. Do you?
(...)
I believe that love that's true and real creates a respite from death. All cowardice comes from not loving or not loving well which is the same thing and when the man who is brave and true looks death squarely in the face like some rhino hunters I know or Belmonte who is truly brave, it is because they love with sufficient passion to push death out of their minds.



그 후 헤밍웨이는 길에게 거트루드 스타인을 소개해 주고 길은 그녀에게 자신의 글을 읽어달라고 요청한다. '거장을 알아본 거장'이라 불리는 거트루드 스타인은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알게 된 인물로, 작가로도 유명할 뿐만 아니라 작품을 보는 안목이 높아 비평가나 작품 수집가로서의 면모도 돋보였다. 덕분에 파리의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멘토가 되었고, 그녀의 아뜰리에는 토요일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적 교감을 나누는 살롱이 되었다. 다른 작가들과 같이 스타인이 등장했던 시기는 인상주의가 지나가고 야수파와 입체파를 비롯한 여러 진보적인 화풍이 태동하던 때였으며 그녀는 특히 마티스와 피카소의 그림을 많이 사주었다고 한다. 영화 내에서도 마티스의 작품을 500프랑에 사는 모습을 담았다(500프랑권은 유로화로 바뀐 지금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현 물가로 따지면 100만 원가량이라고 한다. 현재 마티스의 작품이 몇백 억을 호가하는 것에 비하면 스타인은 진작에 그의 저력을 알아보고 저렴하게 구매한 셈이다).

또한 헤밍웨이와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길의 글을 읽어주며 격려와 함께 예술가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It's the artist's job not to succumb to despair but to find an antidote to the emptiness of existence. I find your voice clear and lively. don't be such a defeatist.


이외에도 작품에서 등장하는 거장들은 단지 그들의 작품이나 생활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예술 활동에 대한 마음가짐, 작품에 대한 가치관, 인생관 등 다방면에서 인상 깊은 대사들을 남긴다. 이것이 우디 앨런이 거장들의 입을 통해 관람객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 아니면 거장들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할 만한 대사를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자신도 역사에 족적을 새긴 예술가로서 후세에 또는 후배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각성할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 


그와 동시에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카소가 막 완성한 그림 《공을 가진 목욕하는 여인》에 대해 그와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논쟁의 대상은 그림의 모델이기도 하면서 이 시대에 등장하는 인물 중 유일하게 가상의 인물인 아드리아나다. 그녀는 등장하던 시점부터 피카소와 헤밍웨이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전에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조르주 브라크와도 연인으로 지내며 예술적 영감을 준 것으로 나와 화면으로 보이는 이상의 인상과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 또한 코코 샤넬에게 의상 공부를 하러 파리에 왔다고 하며 자신 또한 예술적인 감각으로 그들에게 이끌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비단 남자에게 여자란 존재뿐만 아닌, 남녀는 서로가 서로에게 귀한 영감을 안기는 뮤즈다. 내가 그토록 쓰기 어려워했던 시나 에세이도 누군가 영감을 주는 존재가 있으면 내 안의 자아가 깨어나 글을 쓰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가 지금까지 써온 것들 중에서는 수작에 가까운 것들이다. 그것이 그토록 가능했던 이유는 헤밍웨이가 말했던 불멸에 대한 생각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잊어버림으로써 나는 어쩌면 영원할 수도 있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여느 때처럼 길이 과거로 가는 차를 타려고 할 때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T.S 엘리엇이라는 걸 알고 감탄하는 부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어쩌면 앞선 수많은 거장들을 만났을 때와 똑같은 감정이었을지는 모르나 길의 표정은 환희가 가득했고 열정이 넘치는 몸짓을 하고 있었다. "톰 엘리엇,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 T.S 엘리엇? T.S 엘리엇이요? 프루프록 연가는 줄줄 외우는 시였는데!"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 문장으로 그의 열정이 전달될까? 반대로 나에게 그런 예술적 존재가 있을까? 한때 많은 감명을 받았던 작가 안리타, 지금은 밀란 쿤데라의 발바닥을 긁고 있는 수준이고, 이전에는 이름 모를 그러나 (젊은 문학상 등에 실린) '유명한' 작가들의 글을 읽었다.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잘 쓴다라거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인지 저 장면은 다른 것보다 더욱 와닿는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예술가를 그저 동경만 해오다 마침내 얼굴을 마주하는 때의 심경은 어떤 단어로든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이후 살바도르 달리와 만 레이, 루이스 부뉴엘 세 명의 초현실주의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도 인상 깊다. 상술한 T.S 엘리엇과의 만남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차원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다. 가령 내가 에세이나 수필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할 때 나는 과거로 돌아가 나쓰메 소세키나 헤르만 헤세를 만나길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의 거장들과 수필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는 대체 무엇일까? 나는 줄곧 이런 경험을 하고 싶었다. 내가 최고나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리고 동시에 이런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먼저 수준급의 실력과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이 영화를 멋있다고 생각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런 부분에서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길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드리아나의 일기를 사고서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되고, 뒤이어 적힌 글대로 그녀에게 줄 귀걸이를 사는데 그것은 약혼녀인 이네즈가 그토록 싫어했던 '소박한' 선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생각한다'라고 적은 이유는 귀걸이를 사는 장면은 나오지만 아무리 자세히 봐도 어떤 보석인지 잘 모르겠어서이다... 색깔을 보아 비취가 아닐까란 생각은 들었지만 전개상 이네즈에게도 주었던 문스톤 귀걸이 쪽이 양쪽 여인을 대치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더 좋은 것 같다. 

귀걸이를 주는 순간, 말과 마차가 등장하며 그들을 벨에포크 시대로 데려간다. 재즈 시대의 구형 푸조가 그랬던 것처럼 둘은 카바레의 최대 중심지였던 막심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당대의 거장들을 만난다. 유난히 작은 키와 물랑루주 그 자체였던 로트레크, 인상주의 사조의 끝을 힘차게 이끌었던 드가와 고갱. 고갱은 어찌나 닮았는지 곧바로 고흐가 그린 초상화가 생각날 정도였다. 

익히 잘 알려진 성격처럼 오만한 태도를 보이던 고갱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아드리아나에게 발레 의상 작업을 제안하는데, 그 말을 들은 그녀는 길에게 이곳에 머물자고 말한다. 초반부에 이 시대에 대해 "아름답지 않아요? 전 그때가 가장 좋아요. 모든 게 완벽했던 때."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녀의 황금시대에 도착한 순간 이곳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1920년 재즈 시대를 황금시대라고 생각하는 길과 의견이 차이가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작별 인사를 건넨다. 길은 단면만 보고 이렇게 즉흥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거라며, 항생제도 마취제도 없는 시대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동시에 자신도 과거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다면 현재를 가치 있게 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른 거장들이 좋은 글쓰기에 대해 길에게 말해주었던 것처럼, 그 자신도 좋은 글쓰기에 대해 하나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길이 깨달은 것은 비단 좋은 글쓰기에 대해서만은 아니었는지, 이네즈와의 거짓된 관계에서 벗어나 파리의 거리로 나온 그는 밤이 될 때까지 거리를 떠돌다 우연히 콜 포터의 음반을 들었던 가게의 점원을 만난다. 점원은 얼마 전에 콜 포터의 음반이 들어왔는데 길이 생각났다며 웃는다. 그리고 곧 쏟아지는 비에 자신은 맞아도 상관없다며, 사실 파리는 비가 올 때 가장 예쁘다고 하자 길도 "나도 늘 그렇게 말하는데!" 라며 함께 파리의 비 오는 거리를 걷는다. 



총평



이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보느라 유튜브에서 네 번의 영화 대여를 했고, 옆에는 꼭 위키피디아를 켜놓았다. 그만큼 쓸 내용도 많았고 배운 내용도 많았다. 처음 볼 때는 파리에서 펼쳐지는 벨에포크 올스타전에 감탄했고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는 거장들의 진중한 대사들에 집중했으며 그 이후에는 거장들을 만나는 길의 감정에 진심으로 몰입해서 보았다. 그리고 우디 앨런이 파리라는 도시를 대하는 방식, 과거를 예우하는 방식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감독이라는 직업, 더 넓게 보면 예술가라는 직업은 현실에 없고 자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직접 매체로 창조해내는 것에 대해서 가장 큰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단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써내는 것들은 그 자체로 오롯하며 영원불멸한 것이다. 이 작업은 처음에는 개인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키지만 끝에 다다를수록 마침내 인류 공통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영화 속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처럼 '존재의 공허함을 채워줄 해답을 주는' 과정인 것이다. 

이 영화는 너무 많은 내용과 다른 분야들의 주제를 담고 있어 한 번 보아서는 감독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 곱씹어 볼수록 단지 파리라는 도시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려 애쓴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값진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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