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나는 여행 계획을 잘 짜지 못하는 편이다. 같이 여행을 가는 사람 입장에서 굴러다니는 식객까지는 아니지만, 때에 따라서 의욕적으로 관광지며 호텔, 맛집 등을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섭렵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가는 길에 보이는 것 구경하고, 맛있어 보이는 집에 들어가서 먹기만 해도 좋은 때도 있다. 여행을 앞두고 어떤 스타일을 취할지는 첫째로 같이 가는 사람이 있는가, 그리고 여행지에서 그저 쉬고 싶은가에 따라 갈린다. 하지만 프랑스 여행은 유일하게 그 케이스에서 벗어난 경우였다. 왜냐하면 혼자 떠나는 여행이면서 내가 사랑하는 문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수 년 동안 고대해왔던 곳인데도 떠나기 직전까지 엉성한 계획표를 가지고 우물쭈물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프랑스를 간다고 하면 대부분 향하는 파리가 주 목적지가 아니라 한달 동안 남쪽 항구 도시인 니스부터 생트로페, 아를, 엑상프로방스, 툴루즈를 거쳐 파리에 도착하는 전국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4박5일짜리 여행은 물론이고 한달 살기 여행보다 더 치밀한 계획을 짜야 했지만 몇 시간 동안 구글 지도와 계획표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만두고 또 며칠 뒤에 그것을 반복하는 식으로 우물쭈물했다. 그러다 결국 각 도시에서 봐야 할 주요 볼거리만 체크하고 이동할 방법이나 숙박 예약도 하지 않은 채로 무작정 출발하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몇 달이 지난 지금, 다시 그때를 떠올려 보면 나는 출발 전날까지도 정말로 프랑스로 떠나는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머리로는 출발 일자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몸은 내내 믿어지지 않아 설레지도 긴장을 하지도 않은 것이다. 결국 전날 밤 얼리 체크인을 보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고, 부랴부랴 짐을 싸다가 갑자기 극도로 불안해져서 부모님과 한참을 통화하고서야 여행을 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대역 앞 버스 정류장에는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가 선다. 가격은 1만 7천원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여행 가는 기분을 내고 싶어서 탔다. 양복을 입은 기사님이 버스에서 내려 절도 있는 모습으로 여행 가방을 실어주고, 안락한 의자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고 있으면 대접받는 기분과 함께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설렘이 한껏 들지 않는가.
공항은 참 매력적인 곳이다. 그곳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금방이라도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으로 가득찬 곳이다. 종로에 있는 회사를 다니면서 최근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부쩍 늘었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공항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외국인들을 보았다. 특이한 점은 기억에 남는 외모는 영어를 쓰는 백인이나 흑인인데, 정반대로 기억에 남는 목소리는 중국어다. 중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니와 정치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좋지도 싫지도 않은 나라인데 묘하게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들이 유독 목소리가 커서일까, 아니면 지지고 볶아도 결국 동아시아 3인방이라 익숙한 것일까 궁금하다.
나는 이전에 일찍 도착해서 출국 심사도 안 받고 늦장을 피우는 바람에 비행기가 지연될 뻔한 적이 있어서 미리 수하물도 싣고 출국 심사를 받은 뒤 출국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라운지에서 밥을 먹고 면세점을 돌아다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내가 본 공연은 ‘왕가의 산책’ 이라는 이름의 궁중생활 재현 행사로, 왕족들이 면세점 인근부터 전통문화센터 앞까지 산책하고 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화센터 앞에 도착하면 들려오는 국악 소리에 맞추어 왕족들이 나와 춤을 춘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부끄럽게도 전통 문화를 잘 몰라 주변의 외국인들처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왕비가 양손에 긴 천을 매달고 국악 소리에 맞추어 하늘하늘 춤을 추었다. 느리면서도 힘있는 우아한 동작, 닮고 싶은 귀족의 품격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피곤하기도 했다. 내가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국악이 금세 지루해진 탓도 있겠지만 옛날 왕족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갇힌 생활을 했을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떠나기 한 시간 전에는 스타벅스에서 항공기들이 도열해 있는 커다란 창문을 배경으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2인석 테이블이 없어서 4인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한 노부부가 다가와 맞은편 의자에 앉아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내가 외국인으로 보였는지 영어로 더듬거리며 말씀하시는 것을 반갑게 웃으면서 ‘네, 그럼요’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안쪽 자리에 짐을 쌓아두고 앉으셔서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는 같이 앉기가 그랬던지 주문을 해야 한다면서 왔다갔다하셨다. 두 분은 먼저 자리를 떠나면서 좋은 여행 되라고 말해주셨고, 나도 미소로 대답했다. 사람들은 으레 즐거운 일을 앞두고 있으면 친절해지곤 하지만, 한국인들은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더 열린 태도로 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공공 장소에서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전세계의 사람들이 모이는 공항에서 곧 해외로 떠날 예정이라면 조금 더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기는가 보다.
드디어 출발한다. 사람들이 차례대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듯한 외국인들이 절반, 나머지는 설렘과 긴장이 역력한 한국인들이다. 비행기에 타자 하늘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승무원들이 친절하게 맞아준다. 비행 시간은 로마를 경유해 총 18시간에 달하지만, 이를 대비해 책과 유튜브 영상을 잔뜩 저장해 두었다. 창밖으로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더 내릴지 말지 고민하는 듯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나른해진다. 밤중에 도착해 숙소는 잘 찾을 수 있을까, 이 여행을 잘 끝내고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