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라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할머니는 계속 표정이 없으시다가 두살배기 조카가 재롱피울때 활짝 웃으셨다.
오랜만에 간 할머니 집은 난방이 너무 빵빵해서 아침에 일어나니 눈코입이 다 건조했다.
살던 곳을 나오니 알게되는 사실들이 많다.
매년 겨울, 봄마다 목이 안 좋았던 이유를 이제 알았다. 집이 건조해서 그랬구나.
할머니 집에서 나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오는 콘텐츠를 계속 찾아봤다. 아침을 호텔 조식 먹으면서 시작한다는 탤런트 선우용여님 유튜브, 퇴직하고 탐정사무소에 취직해 요양원으로 잠입하는 <스파이가 된 남자> 시리즈도 봤다. 지금은 남편들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 뒤 룸메이트가 된 여자들 이야기 <그레이스 앤 프랭키>를 보고 있다. 할머니랑 살기 싫어 나왔어도 늘 할머니가 마음 한켠에 있다.
할머니가 혼자 살기 힘들다는 건 이제 모두가 안다. 데이케어를 주 4회 가시고, 요양보호사도 주 4회 방문한다. 고모는 주 2회 식사를 챙긴다. 아파트 다른 동에 사는 친구분도 들르고, 급하면 내가 간다. 이렇게 여러사람이 손을 보태지만 할머니는 점점 쇠약해지고 판단력도 흐려진다. 혼자 주무시는 게 겁나고 외롭다고도 한다.
3월에는 할머니가 부모님 계시는 과수원으로 이사가시기로 했다. 병원도 멀고, 계단도 많고, 길도 나빠서 할머니가 생활하기 더 힘든 환경일 것 같아 걱정이다. 과수원에 가시면 주 5일 데이케어 센터 가는 것 외에는 엄마가 할머니 돌봄을 대부분 맡게 된다. 엄마는 잘 참는 성격이라 힘들어도 끝까지 도리를 하려고 할텐데, 지금도 허리 아프고 일이 많은데 어떡할지. 이제 여행도 맘 편히 못갈텐데.
고모는 처음부터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자고 얘기했다. 할머니 모시고 이미 한번 투어도 다녀오셨다. 할머니는 요양원을 둘러보면서 직원에게 '저도 들어와도 되나요?' 물어보며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생각하니 아니다 싶었는지 엄마에게 전화해서 가기 싫다고 얘기했다.
가기 싫다고 하는 사람을 어떻게 억지로 보내겠나. 그리고 부모님 입장에서도 할머니를 집에서 모셔보지도 않고 요양원을 보내고 나면 마음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몇 달 고민한 결과 과수원에 가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3월은 너무 빠른 것 같다.
할머니 사시던 집은 일단 비워두기로 했다. 관리비가 매달 나올텐데 어떡하나 먼저 걱정이 들었다. 에어비앤비로 돌려서 얼마라도 벌어서 보탤까 생각해봤다. 그런데 부모님이 부산 오면 지낼 곳도 필요하고, 짐도 많고, 무엇보다 할머니가 과수원에 잘 적응하실 수 있을지 모른다. 다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침에 할머니 센터 가는 거 보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뒹굴거리는데, 창문을 열어두니 시원한 바람이 살짝 불어 몸이 따뜻하고 얼굴은 시원한 야외 사우나처럼 상쾌했다. 이 좋은 집을 아무도 못 누린다니.
부모님은 60대에 이런 미래를 상상했을까. 여전히 수입이 불안정한 첫 딸에, 아기 키우기 바쁜 둘째 딸. 분양받고 기뻐했던 아파트가 짐만 가득한 빈 집이 되는 것을. 늙고 예민한 할머니를 모시고 아직까지 과수원 일을 하는 것을. 부모님에게 지워진 짐에 내 지분도 큰 것 같아 어제는 밤잠을 조금 설쳤다.
아늑한 집에서 계속 있고 싶었지만 몸을 일으켜 나와야 뭐든 의욕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가 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빨래를 챙겨서 작업실로 나왔다. 그냥 다시 할머니랑 살까 잠깐 생각했지만 이미 10년 가까이 그렇게 살고 힘들게 나왔다는 자각을 하며, 진짜 아니라고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저 같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참 단순한 것 같은데 현실은 그리 쉽지가 않다.
세상에 태어난 모두가 자기가 진 짐으로 어께가 무겁다. 나는 내 자리에서 열심히 일해서 부모님 차 바꿔드리고 크루즈 여행 보내드리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당장은 한 달에 두번이라도 과수원 가서 할머니랑 동무해드리는 것으로. 그 김에 부모님도 좀 더 자주 만나고, 나에게 자유를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일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