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by 시인 화가 김낙필




그럴 수는 없었죠

있었던 일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럭저럭 삽니다

마음이 좋으냐구요

그렇지는 못합니다


동쪽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바람막이도 못 돼준 채

해변 방파제를 걸었습니다

무섭게 밀려드는 성난 파도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네가 해풍에 행여 불편하고 힘들까 봐 불안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그날 물치항 바람 부는 해변 길이 제일 좋았다고 합디다

내가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그대는 몰랐었나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 후로 바람 부는 동해를 자주 갑니다

거센 방파제 파도를 좋아합니다

바닷새가 위태로운 날갯짓으로 물 위를 날 때가 좋습니다

테트라포드를 때리고 범람하는 하얀 포말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천연덕스럽게 살고 있지만

아무렇지 않지는 않습니다

바람 부는 날이면

그날 동해로 떠나보낸 그대가 기억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