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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 壞 之 王

by 시인 화가 김낙필



말라서 버려진 화분을 주워와 다시 살리는 사람과

새로 사 온 멀쩡한 화초를 한 달 만에 죽여 버리는 사람이 있다


손에만 들어오면 고장 나는 시계

부러지는 우산

만신창이가 되는 자동차 앞뒤 범퍼

수도꼭지 고장

샤워기 고장

손만 대면 부서지고 고장 나고 죽어나가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

파괴지왕(破壞之王)이다


이런 사람들은 운빨이 안 좋다

가까이하면 화가 미치므로

멀리 하는 게 좋다

한평생을 같이해야 한다면

불운을 달고 살아야 한다

생명의 화신과 파괴의 지왕은 타고 난다

선과 악의 공존과 같다


되도록이면

죽어가는 화초를 살리는 사람과 가까이하는 게 좋다

생명의 존엄을 중시하는 사람이니까

나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파괴지왕은 언젠가 누군가를 몰락시킨다

나는 이런 군주를 만신창이가 된 채 수십 년을 모시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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