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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화가 김낙필 Nov 05. 2024

사루비아

우체국 앞에서




어디 가면 잃어버린 옛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첫사랑은 어디쯤 있을까

혼미한 세상에서 한 줄기 빛처럼 빛나는 추억

비가 내리거나 눈이 오거나

낙엽이 질 때

우체국 앞으로 간다


우체국 계단 앞에서 생각한다

떠나지 못한 나의 연서는 아직도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지

한동안을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낙엽 하나가 엽서인 양 발등을 스치고 지나간다


사연 꾸러미가 산처럼 쌓였던 자리에 이젠 아무것도 없다

연서 따위가 발 붙일 자리가 있겠는가

이미 오래전에 전설처럼 사라졌다

우체국에는 택배 상자만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다, 아니다

거기는 옛사랑을 취급하지 않는다

생필품만 오고 간다


우체국 계단에는

예나 지금이나 사루비아 꽃이 빨갛게 피어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계단뿐이다

늦가을 여름꽃들은 시들어 탈색하고 수명을 다 해간다

사루비아도 마찬가지다


애타는 마음으로

우체국 주변을 서성거린다

까치 날면 님이 오신다는데

바람결에 들려온다

서리발 닮은 까마귀의 울음소리

이렇게 슬픈 계절이 오고 있다


비행기 하나가 마악 관악 봉우리를 넘어

영종도 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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