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안부

by 시인 화가 김낙필


폭우다

우산은 미쳐 장대비를 막지 못한다

아랫도리가 흥건하게 젖도록 비를 마주하며 걸었다

빗줄기를 못 이기고 상점들은 일찍 문을 닫는다

초저녁 노포 술집만 왁자하다


내일이 제헌절 인가보다

전봇대마다 걸어 논 태극기가 비바람에 요동을 친다

어둠이 거리마다 깔리고 종종걸음으로 힘겹게 우산을 받치고 귀가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역행하고 있다


빗줄기가 굵다

전화기가 울린다

별일 없냐고, 잘 있냐고 친구의 안부 전화다

통화가 가능하니 너나 나나 안녕하구나

돼도 않는 실없는 얘기로 삼십 분 넘게 수다를 떨었다

여전하다니 됐다


재래시장을 들러

꼬부라진 오지 오이와 동그란 조선호박을 샀다

오이 무침과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

우산은 치장에 불과했다

얼굴 빼고 온통 다 젖었다

이곳저곳 물난리 소식이 들려온다

산동네는 무사하다


집 앞 카페에 들러 따듯한 커피 한잔 마신다

온몸이 따듯해진다

그리고 그 와중에 글 한 자락을 쓰고 있다

빗줄기가 사그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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