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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의 미학

by 시인 화가 김낙필





갑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청상과부로 평생 농사만 짓고 살다가 허리 수술받고 밭에 영 못 나가더니 시름시름 곡기를 끊고 죽었다

문고리를 안으로 굳게 걸어 잠근채


허리가 기억자인데도

깨밭이며 고구마밭, 수수밭 농사를 짓던 할머니는

밤이면 신음소리를 내며 잔다

평생 풀 뽑는 밭농사를 짓다 보니 기억자 꼬부랑 할머니가 됐다


추수철이면 서울 사는 큰아들 작은 아들 막내 딸내미 집으로

참기름이며 들기름이며 고구마, 감자, 마늘, 고춧가루 등

바리바리 싸서 우체국 택배로 올려 보낸다

그 재미로 농사를 놓지 못해서 척추관 협착증으로 등이 굽어 기억자가 되고

밤마다 모로 누워 끙끙 앓으며 살았다


통증도 함께 늘 달고 살면 견딜만하게 된다

통증도 적응이 되면 친구가 되는 것이다

안 아픈 날이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게 되는 것처럼


통증과 친구가 되면

통증과 얘기도 하고

통증을 달래기도 하고

통증과 친숙해지는 것이다

누가 눈여겨보는 이도 없으니

오히려 통증이 유일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통증과 함께 살다가

밭 일마저 할 힘이 없어서

호미 손을 놓게 되면

별 수 없이 죽는 것이다


통증과 이별하고

통증을 못 느끼게 되면

죽을 일만 남는 것이다


그렇게

갑순 할머니는 통증이 떠나자 통증 따라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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