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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시 Feb 04. 2022

인연은 혜성처럼 내 곁을 공전한다

묘(猫)연은 우주를 닮았다

2014년 8월경, 치즈 태비 고양이가 내 삶에 들어왔다. 아파트 내의 정자에서 마주친 녀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밥 주는 캣맘분보다 나를 더 따르기 시작했다.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리, 유독 강아지처럼 따라붙던 녀석에게 ‘깡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깡이는 약 3달간 정자 근처에서 모습을 비췄고, 그해 10월 29일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누군가 캣맘분이 숨겨둔 밥그릇에 쥐약을 타서였다. 길고양이의 삶은 아주 짧다고들 하지만 5, 6개월령이었던 녀석의 삶은 1년도 채 가지 못했다. 아파트 구조물 틈새 사이로 삐져나온 녀석의 발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녀석과 그해 첫눈을 함께하는 게 내 작은 소망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을 의미하는 인연은 사실, 모든 관계에 쓰일 수 있는 단어다. 70억 인구 중 내가 살면서 만나게 될 사람은 굉장히 한정적인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신을 지나쳐간 모든 사람은 인연이 된다. 내가 살아온 터전도 전 세계 수많은 국가 중에 대한민국에서 봄이면 벚꽃이 온 거리를 만발하는 진해인데, 이러한 지역적인 공간도 나에겐 공간적 인연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모든 관계에 인연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중 좋지 않은 관계는 ‘악연’이라는 단어로 대체하며 살아왔고 기억에도 없는 사람을 인연이라 여기지도 않았다. 지금의 나에게 인연은 맺어지는 관계에서 ‘운명’의 의미를 내포하는 동시에,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치환되었다.


녀석은 깡이와 많이 닮았으나, 꼬리 끝의 말린 모양이 달랐다


예측할 새도 없이 다가오는 인연은 혜성을 닮았다. 대부분은 태양과 충돌하여 사라지지만 그중 충돌 없이 태양을 빗겨 나온 혜성들은 태양이나 다른 행성의 중력에 영향을 받으며 짧게는 3년, 길게는 수백만 년 혹은 예측 불가할 정도의 공전 주기를 갖는다. 이러한 천체가 인연을 닮았다고 여기는 건, 그들이 내 곁에 다가올 운명이었고, 다시 나를 떠났다가 또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초, 아파트 주변에서 밤 산책을 하던 중에 나는 또다시 치즈 태비 고양이와 마주쳤다. 아옹, 하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숙이니 웬 고양이 한 마리가 발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다. 그때는 마치, 깡이가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았다. 꼬리 끝이 기형적으로 말려있는 모습도 배 부분까지 줄무늬가 있는 모습도 영락없이 깡이와 닮아있었다. 근처 앉을 만한 곳에 가서 옆자리를 툭툭 치니 녀석이 알아들었는지 폴짝 올라와 옆에서 찰싹 붙어 나를 이리저리 쳐다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녀석은 일정 거리까지 나를 따라오더니 돌아갈 곳이 있는 듯 나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고 그 뒤로는 만날 수가 없었다. 혜성처럼 본래의 공전 주기를 따른 것이다.


녀석과는 초면이었는데 옆에 찰싹 붙더니 곧 식빵을 구웠다. 깡이가 다 자랐으면 녀석을 닮았을 것 같다


곁을 떠났어도 정면으로 부딪쳐 끊어내지 않는 이상, 한 번 받아들인 인연은 일정한 주기를 돈다. 상대를 기억하고 대하는 태도가 곧, 중력이 되는 것이다.  누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아무것도 모르는 삶에서 그렇게 10월의 어느 밤, 나는 떠나는 인연에 하나하나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곁에 남을 사람과 내가 아끼는 것들은 언젠가 그들의 궤도를 돌다 일정한 주기로 돌아올 테니. 이제 나에게 깡이는 고양이에 대한 좋은 기억과 그들을 대하는 태도로 남았다. 같아 보이지만 엄연히 그들은 다른 특성을 지닌 별개의 혜성이므로, 이제는 다른 고양이로부터 깡이를 겹쳐보지 않으려 한다. 내 곁에서 안전히 궤도를 돌 인연들을 위하여, 스스로 밝은 태양이 되기를 바라본다.




커버 사진: Photo by David Peter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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