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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Feb 03. 2016

자전거에서 넘어질 자유

'청년 배당'과 먹고 마실 자유


나는 집에서 도서관 가는 길 5킬로 남짓한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오늘 아침, 달리던 자전거에서 크게 굴러 떨어졌다. 앞 바퀴가 돌부리에 걸렸던 것 같다. 앞으로 달려나가던 몸이 멈춘 순간, 그대로 수직으로 떠올랐다. 두 손이 눈앞에 가까워진다 싶더니,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 기분이 나빴다가 완전 신나기도 합니다


두 손목과 무릎으로 아스팔트 위에 떨어졌다. 한쪽으로 넘어진 몸 위를 자전거가 덮쳤다. 가방을 맨 몸째로 뒤집어 그대로 누웠다. 손바닥과 무릎이 박살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피가 나는 곳은 없었다. 붕 떠올랐다 나동그라진 충격에 꼼짝도 하기 싫었다. 다행히 보는 이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길이었다. 그대로 한참을 자전거 밑에 깔려 누워있었다. 사람 몸이 생각보다 튼튼하구나. 정말 세상이 내뜻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주마등처럼 온갖 생각이 번쩍였다.


애초에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면 나지 않았을 사고다. 하지만 나는 아마도 며칠 안에 다시 자전거에 오를 것이다. 자전거는 내가 원하는 곳을 빠르고 쉽게 갈 수 있는 나의 전용 수단이다. 자동차는 아버지 것이고, 버스는 교통 카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자전거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출발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때에 멈춰서서 쉴 수도 있다. 가까운 슈퍼에서부터 멀리 여행을 떠날 때 쓸 수도 있다. 무엇보다 주변 풍경을 즐기며 나의 속도대로 달리는 시간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작은 일탈이다. 취준생인 나에게 자전거는 편의와 자유를 제공하는 고마운 물건이다.


@ 밥만 잘먹으면 얼마든지 달린다


내가 이렇게 크게 넘어졌다고 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자전거 사고가 나서 병원비를 쓸 바에, 빨리 돈을 벌어서 자동차를 사라. 지금부터 체력을 단련해서 자전거 속도만큼 빨리 달리는 법을 연습해라. 너무 먼 미래의 일이나, 무리한 목표 때문에 현재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라는 건 설득력이 없다. 당장 내게 자동차를 선물하거나 한달 교통비를 내줄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혹시 모르겠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중에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성남시 무상복지 정책의 부작용과 함께 이재명 시장이 '무상 포퓰리즘'으로 표몰이를 한다는 비판이 주 내용이었다.


본지는 지난주 사흘 동안 성남시 일대를 현장 취재했다. 지난달부터 성남시가 '청년 배당' 등 무상 복지 수단으로 상품권을 지급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성남시가 강조한 '청년의 취업 역량 강화'라는 취지와 달리 다수의 청년이 상품권을 먹고 마시는 데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들은 인스타그램 등 SNS에 족발과 소주를 먹고 '인증 샷'을 올리거나 '엄마한테 다 줬다. 엄마가 잘 쓰시겠지..' 등의 글을 남겼다.

- 2016년 2월 2일자 조선일보 기사
<"우리 돈 쓰는데 간섭 말라" 이재명의 무상복지 정치쇼>


논지는 '취업 역량 강화'에 쓰여야 할 돈이

'먹고 마시는 데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2년차 취업 준비생의 입장에서 이 '명명백백한 논리'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편하게 먹고 마실 여유야말로 취업 역량의 제 1 조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게 저 멀리서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그 돈으로 책을 사고, 학원 등록하고, 자격증을 따도 모자랄 판에 무슨 정신 나간 소리야?'


그럼 나는 또 이렇게 답하고 싶다. 애초에 분기당 12만 5천원, 1년 다 합쳐 50만원으로 반토막 난 배당금으로는 소위 눈에 보이는 '취업 스펙' 강화는 어렵습니다. 한 달에 4만원 돈으로 외국어 강좌를 수강할 수도, 아르바이트를 그만 둘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청년들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하고, 기분 내서 맛있는 식사를 한 번 더 할 수 있는 정도인 걸요.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바로 그렇게 '마음대로 써버릴 자유'야말로 취업 준비 중인 청년들에게 절실할지 모릅니다.  


애초에 청년 배당은 '기본 소득' 개념이다. 경제적 취약계층이 되어버린 청년들이 기본적인 사회, 경제생활에서 조금씩 배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되었다.


'성남시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에게 청년배당을 지급해 성남시 청년의 복지 향상과 취업역량 강화를 도모하는 동시에 성남시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지역 사회 안에서 청년들이 정상적인 경제 활동에 참여하며 소속감을 느끼고, 장래 계획을 구상할 '소박한 여유'를 주자는 뜻이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술을 마시든 부모님께 선물을 하든 경제적 선택권을 사용할 재량이 커질수록 청년들은 더 먼 미래를 준비할 자신감을 얻는다. 이는 단순히 취업 스펙 한 줄을 업데이트 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이를 '술'을 마시느라 '흥청' 써버린다는 식으로 접근한 비판은 어쩐지 치사하게 느껴진다. 현재 중앙 정부가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대로 마련해주고 있는가, 아니면 정상적으로 세수를 확보해 경제 민주화에 힘쓰고 있는가. 그도 아니면서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의 실험적 재량 사업에 일일이 딴지를 걸며 호통치는 모양새는 보기가 썩 좋지 않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 J.S. 밀 <자유론>


 밀은 그의 책을 통해 '자유'가 곧 '성공과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에서 궁극적으로 더 많은 효용을 주는 '유일한 길'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것이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과 실패로 끝날지 몰라도 결국엔 더 큰 선택과 미래를 설계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 올레웹툰, <즐거우리 우리네 인생>


오늘날의 청년은 넘어질 자유조차 없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의 생활비가 빠듯한 청년들은 한껏 술에 취하고 사람에 치일 자유도 알아서 먼저 피해간다. 그 다음 달 통장 잔고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성남시의 청년 배당이 청년이 먹고 마시는 데 줄기차게 쓰이고 있다면, 내키는대로 남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되었다면 잘 되고 있다고 본다. 쉽게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사실 청년들에게 한 달에 한 번 먹고 마실 자유를 허하는 것보다 가치 있고, 생산성 있는 일이 있을까 싶다.


@ 백수인 청년은 제정신인 게 비정상이다


 청년 배당은 '자전거'와 같다. 그것은 청년들에게 얼마 간의 자유와 편의를 제공해준다. 자동차처럼 대단하고 완전한 자유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한 달에 한번쯤 그들이 가고 싶은 곳에 가게 해주고,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을 즐길 수 있게 도와준다. 자전거를 타다가 크게 넘어질 수도 있다. 배당금을 정말 탕진하거나,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곳에 써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청년들은 그렇게 넘어진 자리에서 뜻밖에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자전거를 탈 자유에는 '자전거에서 구를 자유'까지 포함되어 있다. 나는 오늘 아침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지금 온몸이 욱신거리지만, 다시 또 자전거를 탈 생각이다. 자전거에서 떨어지면서도 다시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을 할 정도였다. 또 넘어질지 몰라서,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있다고 해서 지금 자전거를 탈 자유를 포기할 마음은 없다. 3~4일 곁에서 지켜보고 '부작용'과 '정치쇼'를 운운하는 무상복지 논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남시 한해 노인 복지 지출은 전체 예산의 30%를 차지한다. 하지만 청년 복지에는 0.6%의 재정만이 투입된다. '포퓰리즘'을 운운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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