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은 스토리 ⑧] 검찰, 보안대 수사관부터 찾아라
▲ "재심을 신청합니다" 박상은
ⓒ 권우성
코로나19 확진자가 100여 명을 오르내리던 지난 3월 27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모두 6건의 재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날 11시 15분에 열리기로 예정된 재판에 앞서 큰아들과 함께 법정 앞 의자에 대기하고 있던 박상은씨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재심 재판을 앞두고 사뭇 긴장한 모습이 느껴졌다.
재판 시작 무렵 마스크를 쓰고 오는 변호인의 모습이 보였다. 악수 대신 간단한 목례를 하고 오늘 진행될 재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였다. 곧바로 재판 시간이 되어 모두 법정으로 입장했다. 들어선 법정의 분위기는 여느 날과 사뭇 달랐다. 방청객, 피고인, 변호인은 물론 배석한 판사와 검사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 때문이었는지 더욱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재판이 시작하자 판사는 증거와 관련된 질문을 시작했다.
재판장 : 변호인, 혹시 이 사건과 관련해 항고 당시 제출한 서류 이외에 더 추가할 기록이 있습니까? 제출된 군사 기록은 판결문 이외에는 더 없는 것입니까?
변호인 : 예, 판사님, 저희가 제출한 서류 이외에 지금까지 더 확보한 자료는 없습니다.
재판장 : 그렇군요. 혹시 검사는 변호인이 제출한 증거목록을 확인하셨나요?
검사 : 예, 확인하였습니다.
재판장 : 증거 모두 동의하시나요?
검사 : 예, 원심 기록뿐만 아니라 재심 원심에서 제출한 기록 모두 동의합니다.
판사는 기록의 증거 동의 여부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의 입장을 들어본 후 증인에 대한 출석 여부가 필요한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재판장 : 이 사건의 기록을 살펴보니 과거 수사기록이나 재판 기록은 모두 폐기되어 기록으로 다툴 수 있는 여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증인의 진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재심항고 재판에서 증인 최두○, 문○에 대해 증인신문을 진행하였습니다만 혹시 이 재판에서 추가로 증인신문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검찰 : 예, 저희로서는 최두○, 문○과 함께 재심과 관련해 한 번도 출석한 적 없는 최용○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재심 재판의 참고인 역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
최용○은 박상은씨의 친척이자 과거 강화도에서 선원 일을 하던 중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적이 있는 사람이다. 박상은씨가 보안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자, 박상은씨의 주변인들에 대한 조사도 함께 시작되었는데, 강화에 거주하던 최용○도 예외가 아니었다.
참고인 신분이었음에도 최용○는 강화도 헌병대를 거쳐 인천 방첩대로 연행되어 일주일간 감금되어 조사받았다. 박상은씨에게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느냐는 추궁을 받은 그는 쏟아진 고문에 못 이겨 결국 박상은과 북한과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는 허위 자백을 하고 나서야 풀려났다.
변호인은 이미 최용○는 재심 결정 시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하여 재심 1심 재판부와 항고심 재판부에서 검토한 바 있으며, 그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범죄사실이 강압수사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며 증인 신청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또 최용○는 심각한 신장질환으로 투석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심각한 병환으로 출석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결국 재판부는 최용○을 제외한 문○(춘천보안대에서 마주한 훈련소 동기)과 최두○(탈영한 박상은을 최초로 목격한 초병)의 증인신문만을 진행하기로 했다. 결국 5월 11일, 같은 장소에서 최두○과 문○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증인신문을 하는 내내 두 사람은 긴장하고 있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재심 재판의 참고인은 단순 참고인이 아니라 이들 역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라는 것이다. 과거 박상은씨 사건에서 함께 군 생활을 했던 문○이나 최두○은 말할 것도 없으며, 최용○ 역시 민간인 신분의 참고인이었음에도 영장 없이 연행되어 일주일간 인천 방첩대에서 감금 조사를 받으며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이다.
그들은 지금도 과거 사건을 떠올리면 고통을 하소연하고 있다. 최용○는 재심을 위해 과거 수사받은 사실에 대해 사실대로 이야기해 달라는 박상은씨의 요청을 여러 번 거절했었다. 과거 사건을 떠올리기 싫은 것은 물론, 다시 그 사건에 연루되어 혹시라도 자신에게 불이익이 생길까 하는 공포와 두려움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상은씨의 주장대로 보안대의 조사과정에서 불법감금과 가혹행위가 있었는지를 살피고 위법한 수사 과정 여부를 밝히기 위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보안대 수사관들의 소재를 찾으려는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다.
▲ 박상은씨의 재심기일 안내문이 표기되어 있다.
ⓒ 변상철
공정하고 객관적인 재심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재판부의 재심 신청에 대한 항고결정인용(재심개시결정)을 다시 살펴본다. 항고심 결정문에 따르면, 박상은씨를 구금한 장소는 구치소나 영창이 아닌 내무반이었다. 강제수사의 하나인 구금이란 원칙적으로 피의자를 구치소, 유치장 등 미결수용실에 구금하는 강제처분을 의미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는 내무반 같은 곳에 감금한 행위는 적법한 구금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박상은씨를 제3자인 훈련소 동기와 함께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잠을 자도록 하고, 화장실에도 그 상태로 다녀오도록 하였던 점도 지적했다. 수갑과 같은 계구(戒具)는 수형자가 도주, 폭행, 소요 또는 자살의 우려가 있을 때에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군행형법 제12조 제1항)하고 있다. 결국 재판부는 박상은씨에게 가해진 구금 행위와 수갑 채우기 등의 행위는 불법감금이나 가혹행위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즉 보안대의 불법 수사로 인해 수집된 증거는 임의성 없는 상태에서 수집된 증거라는 것이다. 따라서 재심 재판에서 검찰은 범죄사실의 진위에 앞서 범죄사실의 토대가 된 증거가 사실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검찰은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보안대 수사관 등의 증언을 통해 이러한 불법 구금, 가혹행위가 왜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위법한 수사 과정에 피해를 본 피고인이나 참고인의 증언만을 들으려 한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재심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가해와 피해의 의심을 받는 피고인과 참고인의 공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재심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법원이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을 이번 재심 재판을 통해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