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기다리기 시작한 이유. 그 시작은 블루베리 파이였다. 그녀는 블루베리 파이를 주문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치즈케이크와 애플파이, 복숭아 코블러, 초콜릿 무스 케이크는 밤 장사를 마감할 시간이 되면 거의 대부분 다 동 나지만 블루베리 파이는 이상하게도 아무도 찾지 않는다. 단 한 사람도. 맛이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모양이 문제일까? 둘 다 아니다. 블루베리 파이는 잘못이 없다. 손님들이 다만 찾지 않을 뿐. 단지 취향의 문제이겠지.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블루베리 파이를 만든다. 혹시 그녀가 그것을 찾을 수도 있으니. 그녀는 매일매일 블루베리 파이를 먹는다. 블루베리 파이 마니아인가? 아마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녀가 팔리지 않은 채 그대로인 블루베리 파이를 들여다보던 그 눈빛을 보면 나는 알 수 있다. 선택받지 못하고 남겨진 기분. 그녀는 그 걸 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좋다. 오늘은 유난히 바빴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고모, 고모부를 모시고 온 대가족, 큰 목소리로 다투는 연인들, 직장 상사 험담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오늘도 블루베리 파이는 그대로다. 아!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니었구나.
왕가위 감독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모티브로 쓴 글 '머리가 아파서' 중 발췌. 내가 블루베리 파이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이번 주에도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내가 쓴 글이지만 유독 블루베리 파이가 등장하는 이 씬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럼 어때? 단 한 명이라도 블루베리 파이를 맛있게 먹는 사람이 있으면 된 거지. 그 한 사람을 위해 오늘도 블루베리 파이를 만들 듯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