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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논 Jul 24. 2024

E ~기억 저편의 오류~

나를 떠난, 그리고 나를 잊을 사람들 #8. 학폭 가해자의 일기

조용한 밤, 불꺼진 방 안에서 눈이 어둠에 적응해 남색으로 물든 세계가 시야에 펼쳐진다. 마음은 이미 수면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데 정신은 너무나 또렷해 괴로움까지 느껴지는 어느날 밤. 불현듯 뇌리에 지난 날의 과오가 스쳐 지나간다. 한국 사회 모두가 적으로 치부하는 학폭 가해자였던 시절의 학급 풍경, 그저 의미없이 내뱉은 욕 한 마디에 학급 절반이 따갑게 얼어붙어 공기마저 냉랭해진 어느 날. 그 시절의 오후가 또 다시 나의 밤을 파먹는다.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다. 못생긴 어른을 보고 두꺼비라고 지적하는 어린아이처럼, 그저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에 솔직했을 뿐이다. 그를 미워하는 정당한 사유도 있었다. 학급의 다른 친구들도 모두 그 이유에 '맞아'라고 동감했으니 딱히 이간질을 한 것도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그에 의해 먼저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은 우리였고 그래서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에 대한 혐오를 숨길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그 아이가 같은 반 여자 아이를 때렸다.


자초지종은 당시엔 알 수 없었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사건의 흑백까지 가리기엔 우린 너무 어렸다.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먼저 때렸다는 오직 그 사실 하나면 충분했다. 무엇보다 피해자인 아이는 당시 우리와 같이 놀던 '패거리' 중 한 명이었다. 뒤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따질 이유는 그것 하나로 모두 사라진다. 친구의 적은 공동의 적이던 시절이니까.


처음 시작은 여자 아이들 세 명이 "너도 맞아야지"라면서 때린 일이었다. 여기까진 분명 앙갚음이었다. 힘이 약한 존재가 먼저 맞았고, 지원군을 불러 응수한다. 싸움은 커녕 거래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고, 사회적으로 문제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다. 아직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정도의 영역이었다.


여기에 내가 합세했다. 당시 친구가 많았고 반에서도 반장을 맡는 중심적 인물이었기에 내 입김은 상당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내 발언이 이 학급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인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어쩌면 인플루언서로서 재능이 있었던 걸지도. 나는 그저 "저런 애는 같이 놀지 말아야 해"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내가 그 아이를 반이란 상자에서 고립시켜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이전에도 그 아이에겐 친구가 없었다. 애초에 반에 편이 되어 줄 사람이 단 하나도 없는데 무슨 배짱으로 폭력을 행사했을까.


그래서 우리는 너무나 알기 쉽게 그를 따돌렸다. 일부러 가정통신문을 나눠주지 않는다거나 누구와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면 "야, 네가 어딜 또 껴들어, 또 누굴 때리려고!" 같은 말로 선동하며 침묵을 지키도록 만들었다.

놀라운 건 당시 우리는 스스로가 '정의'라고 생각했다. 진실 여하에 상관없이 그는 약자에게 폭력을 행한 범죄자다. 사회에서도 범죄를 저지르면 철창 속에 고립된다. 그 죄를 판단하고 벌을 적용하는 것도 모두 같은 인간들이다. 그러니까 이 '학급이란 작은 사회'에서는 우리가 서로를 재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도둑질을 하다가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하는 것처럼, 약자를 때렸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이는 교칙에서도 사회에서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그저 '모두와 친하게 지내기' 같은 본인들도 절대 불가능할 유토피아 같은 사고방식을 강요할 뿐이지, 그 속에서 우리가 누구를 미워하고 배척할 틈 따윈 주지 않는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우리의 처지와 입장을 고려해 제대로 판단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마치 아나키스트가 된 듯한 기분으로 우리 나름의 철퇴로 응징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남들은 왕따라고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우리가 '백'이고 그 아이가 '흑'이었다.  


우리가 그를 용서하지 못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그는 우리를 '악역' 취급했다.


사실 여자 아이가 맞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 아이는 원래 조금 지저분한 아이였다. 잘 씻지 않는 것인지 가까이 있으면 비강마저 후덥지근해질 정도로 땀냄새가 났으며, 피부도 거뭇거뭇했고, 머리에 가끔 하얗게 떡이 된 무언가가 올라가 가 있곤 했다. 사실 어린 시절엔 이것 만으로도 충분히 괴롭힘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린 청결을 이유로 그를 공개적으로 배척하지 않았다. 그저 뒤에서 '야, 냄새 나지 않냐' 라고 말한 게 전부다. 


어른들도 위생관념이 철저하다. 어린 시절부터 주입된 양치질 횟수, 손 닦는 시간, 매일 샤워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어깨 위로 떨어진 눈이 매너가 아니라는 인식까지. 오히려 어른들이야말로 깔끔하지 못한 것에 더 치를 떨지 않는가. 식당이 조금만 더러워도 별점 하나를 깎는 시대다. 하루 6시간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상대에게 '냄새'가 난다는 것은 대소를 불구하고 참기 힘든 일이다. 그걸 우리가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같은 반 학우라는 이유로 참아야 한다는 논리를 강요하는 건 엄연하 폭력이다. 우리에게도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며 더러운 것을 피하고 배척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 날은 목소리가 조금 컸던 모양이다. "아 더러워" 같은, 뒤에서만 웃던 우리들의 조롱이 하필 귀에 들릴 정도의 데시벨을 입었다. 마치 자신의 청결 상태를 모르고 있다가 지적당한 사람 처럼 얼굴이 붉어지며 거기에 분노를 했다.


결국 그는 우리 중 하나를 공격했다. 그의 입장에선 자신의 불결한 위생상태를 가지고 자신을 재단하고, 판단하며, 뒤에서 조롱하는 '악역'이라고 느꼈던 거겠지. 이 폭력에는 마치 정당함이 있는 것처럼. 자신이 먼저 욕을 들었으니 때려도 된다는 합리적인 배경이 있었으리라.


그런데, 왜 우리가 '악역'이 되어야 하지? 그 체취로부터, 더럽고 불결한 몸가짐으로부터, 그 자체만으로 공격을 받는 것은 우리였고, 그것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혐오하는 일 없이, 조용히 뒤에서만 조롱하며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았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더러운 무언가를 배려한 우리였는데, 왜 그는 우리를 그저 '뒤에서 조롱하교 욕하는 나쁜 것들'이라 취급하는 걸까. 당시 우리에겐 악역이 될 이유가 하등 없었다. 먼저 더러웠던 것도, 먼저 폭력을 행사한 것도 그쪽이다. 거기에 뒷담화와 배척으로 응수했을 뿐.


미디어는 언제나 학폭 피해자를 불쌍하고 선량하게 비춰준다. 하지만 불우한 환경에 놓인 청소년이 모두 범죄자가 되지 않는 것처럼, 불쌍하고 선량한 청소년이 모두 왕따를 당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모든 가해자가 악하지도, 모든 피해자가 착하지만도 않다. 하지만 미디어는 그 섬세한 부분까진 모두 다루지 않는다. 그도 그랬다. 만약 다큐멘터리가 당시 6학년 4반을 취재한다면, 그 아이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위생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친구들로부터 배척을 받는 불쌍한 아이로 세팅될 것이다. 반대로 나는 마찬가지로 가난한 환경 속에서 친구들을 대동해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못된 아이로 나오겠지. 그리고 인터뷰는 모두 그 아이의 속마음으로 대체될 것이 분명하다. 피디와 걸어가며 "저도 처음엔 친구가 있었거든요" 같은 소리와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연출할테고 카메라는 그걸 놓치지 않고 조명하며 하나의 신파를 조성하리라. 그리고 우리는? "그 아이가 너무 싫었어요"같은 속마음은 어디에도 담기지 않은 채 우리가 먼저 '당한' 것은 모두 지워지고, 마치 아무런 이유 없이 남을 괴롭히는 못된 아이가 되었겠지.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말하면 대체 어떤 어른이 들어줄까.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미디어가 비춰주는 피해자와 그는 조금 다른 면모가 있었다. 그는 그 나름대로 우리의 대화를 엿들으며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쉬는 시간, 또는 체육 시간마다 우리가 삼삼오오 모여 '못난 담임'을 욕하고 있을 때. 큰 이유도 없이 모두가 욕을 하니까 동조할 뿐인 빈 껍데기같은 말들이 오고가는 시간. 그 아이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녹음기 같은 게 없어도 충분했다. 이미 어른들은 고립되고 불쌍한 아이일 수록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 신분 자체가 펜보다 무서운 무기가 된다. 그것은 어른들에겐 녹음기 이상의 파급력을 행사한다. 그것을 이용해 그 아이는 우리가 "담임 선생님의 욕을 한다"고 고자질했다. 어찌나 자세히 염탐했는지 그 내용까지 상세히, 우리가 주고 받는 펜팔노트에 욕이 적혀있다는 디테일한 정보마저도 고스란히 험담 대상자에게 전달했다.

 

욕을 먹으니 발끈하는 건  어른이어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 뒤 우리의 6학년 4반 분위기는 한겨울 냉장고보다 춥고 썰렁했다. 연일 감정적으로 이어지는 담임 선생의 추궁과 부모님 면담, 반 아이들에게 이루어지는 공개 설문 등, 모든 어린이가 피로감을 느낄 일상이 이어졌다. 그 선생은 자신의 반에서 왕따가 일어나고 있단 사실을 버젓이 알고 있으면서도 나서서 돕지 않은 주제에, 자신의 험담이 오간다는 이슈가 나오자마자 열혈 선생으로 변모했다. 봐,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자신에게 해가 오면' 아이들이 얼마나 나 피로해지고 상처를 입는지 따위는 알 바 아니다. 해를 입힌 상대를 앞에서든 뒤에서든 철저히 괴롭혀야 한다는 이론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진리였다.


그 아이로선 최악의 선택인 셈이었다. 우리의 괴롭힘으로부터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일이겠지만 결과적으론 혐오도 멈추지 않았고 담임도 그를 돕지 않았다. 유일한 편 마저도 관심 타겟을 우리에 돌려 편들어줄 틈조차 없게 만들었다. 당연히 그 날 이후 그는 더욱 고립됐다. 당연한 일이다. 그 고자질 하나로 35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피해를 입었다. 빛나는 유년시절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13살'을 만들어버린 댓가는 혹독했다. 방관으로 중립을 지키던 아이들 마저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이 반에서 완벽하게 자신의 편을 지워버린 인생 첫 실수. 뒷담화란 살아가며, 또는 조직을 존속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으며 그것을 하는 것보다 당사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더 나쁜 짓이란 것을, 20년이나 지난 지금의 그 아이는 깨달았을까. 그걸 깨닫고 나서도 과연 '왕따는 나쁘다'와 '내가 친구가 없을 만도 했다' 중 어느 쪽에 더 치우쳐 생각하고 있을까. 그래서 밤에는 이따금 그의 성장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의 성장과 관계없이, 당연히 나는 성장하지 않았다. 여전히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에 합리성을 부여하고, 내 감정이 반드시 옳은 것이란 아집을 가진 20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와 우리의 악연은 초등학교 6학년, 13살이란 단편적 기억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여자아이였는데 하필 나는 남중으로 진학하게 되었고, 그 아이와 나는 1학년 때 마치 운명처럼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E도 그 때, 같은 반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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