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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Dec 05. 2024

그렇다, 이웃의 말이 옳았다.

(첫눈의 습격을 받았다)

꾸물거리던 하늘이 꿈틀거린다. 기어이 첫눈이라는 설렘을 갖게 하는 하얀 눈이 내리려는 징조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산골의 온도는 평균  3~4도 낮다. 아니나 다를까,  하얀 눈이 펄펄 내린다. 좋기도 하지만 이젠, 야속하기도 했다. 하얀 눈을 보며 즐거워해야 하는데 조금은 싫다는 생각, 세월이 만들어준 서글픔이었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던 시절은 갔고, 눈을 치우고 운전을 해야 하는 세월이 몸도 마음도 편치 않다. 하지만 순식간에 와~하는 소리가 난다. 저절로 탄성이 나오고, 핸드폰을 꺼내는 모습에 작은 미소가 피어난다. 얼른 딸에게 사진을 보내자 환성을 보낸다. 아직은 그럴 수 있음에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여름날, 잔디밭에 풀을 뽑고 있는 모습을 이웃이 보고 말한다. 겨울이면 다 죽을 풀을 힘들게 뽑고 있다고. 


눈을 치우는 모습을 보곤, 해가 나면 다 녹을 텐데 그냥 두라고. 하얀 눈이 내리는 골짜기엔 아무 소리도 없다. 산새들도 어디를 갔는지 궁금하고, 가끔 내려오던 고라니의 삶도 알고 싶다. 갑자기 뒤 울에 있는 나무에서 새들이 날아간다. 인기척을 듣고 날아감에 미안한 생각이다. 괜히 수선을 떨어 잘 있는 이웃을 불안하게 해서다. 얼른 눈을 치우러 데크로 나섰다. 습기를 가득 실은 눈이 무겁기만 하다. 이런 눈이 비닐하우스를 누르면 어떻게 될까 하고 친구가 걱정된다. 오이농사를 짓고 호박을 가꾸는 친구가 생각 나서다. 

눈을 말끔히 치우고 나니 마음까지 후련하다. 이젠, 눈이 그쳤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하늘은 망설인다. 얼른 서재에 않아 있는 사이 하늘은 또, 심술을 부린다. 하얀 눈이 가득 내려온다. 어쩌려고 그러는지 걱정이 된다. 하는 수 없이 눈을 쓸기를 반복하는데, 하루 종일 이 작업이 다섯 번이나 반복된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뻐근하다. 하지만 한꺼번에 치우려면 너무 힘든 작업이다. 어쩔 수 없이 조금씩 하는 수밖에 없는 작업, 조금은 힘이 든다. 텔레비전에선 눈으로 인한 사고 소식으로 가득하다. 자연 앞에선 꼼짝도 할 수 없는 사람이 괜히 까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갑자기 앞산에서 햇살이 넘어왔다.


산 넘은 햇살이 보고 싶어 한참을 기다렸다. 눈을 녹기 바라기보단 눈 위에 떨어지는 빛나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다. 아니나 다를까, 기대했던 빛남이 눈앞에 왔다. 얼른 뛰어 나가 바라보는 나, 첫눈은 불편했는데 햇살이 내린 눈이 그렇게도 아름답다. 와, 나무 위에도 떨어졌고 지붕 위에도 예외는 없다. 맑은 햇살이 보고 싶어 떠날 수 없는 산골이다. 산새들도 신이 났는지 갑자기 어수선하다. 힘겹게 흰 눈을 이고 있던 개키버들이 한숨을 쉰다. 긴 가지에 앉아 있는 눈이 녹아 허리를 편 것이다. 뒤뜰 소나무는 홀가분한데, 며칠 전 전지를 해주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무거운 눈을 이고 힘겨워했을 소나무가 산뜻해 좋다. 홀가분함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삶에도 홀가분하고도 간단함이 늘 부러웠다. 인간의 욕심은 그것도 놓지를 못함에 한심하기도 하다. 저렇게도 홀가분함을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벌써부터 갖가지 옷을 정리하고 싶었다. 두고도 입지 않는 그 많은 옷을 언제 버릴까? 늘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함에 불편하기만 하다. 얼른 눈을 돌려 산으로 향했다. 이렇게 맑은 하늘과 햇살, 여기에 하얀 눈이 그렇게도 아름답다. 갑자기 이웃의 말이 떠오른다. 햇살이 찾아오면 녹아버릴 눈을 힘겹게 치우지 말란다. 이웃의 말이 옳았다. 밝은 햇살아래 소리 없이 숨을 죽이는 하얀 눈, 그대로 놓아줌이 이렇게 좋은 광경을 연출할 줄이야!


눈이 쌓인 산골은 오로지 조용함뿐이다. 가끔 오고 가던 차량도 뜸하다. 오로지 눈과 햇살 그리고 나만이 앉아 있는 골짜기다. 이내 커피 한잔을 들고 나섰다. 햇살이 찾아온 거실에 앉아 벽에 걸린 한 점의 수채화를 바라본다. 며칠 전에 완성한 작은 그림 한점, 홀가분함과 시원함을 함께 주는 그림이다. 벌써 시작한 지가 10여 년이 지났으니 한참을 헤맨 결과물이다. 어떻게 저런 물감의 조화가 이루어졌을까? 밖엔 하얀 눈 위에 햇살이 찾아왔고, 집안엔 커피 향이 가득하다. 홀가분하게 앉아 바라보는 수채화 한 점, 그동안 살아왔던 하루하루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지금껏 나는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첫눈이 내린 골짜기, 앞길에 남은 눈을 치워야겠다. 혹시나 지나는 사람들이 불편해할 것 같아서다. 또 한 가지는 산골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표시하고 싶어서다. 힘겹게 한 삽, 두산 밀어내는 눈이 힘에 겹다. 햇살에 녹은 눈이 무겁지만 녹아내리는 모습, 삶도 이렇지 않을까 두렵다. 밝고도 맑게 빛나던 눈은 어디로 갔을까?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은 순식간이다. 몇 시간도  되지 않은 하얀 눈이 흙과 뒤범벅이 된 모습이 보기 싫어 얼른 밀어낸다. 길가의 도랑물은 신이 났다. 밤새 눈이 쏟아졌으니 검음은 묻어졌고 하양이 가득하지만 서서히 몸집이 늘어서다. 평상시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골짜기의 아침은 고요하고도 한가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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