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모임에서 만난 꿈)
'하늘엔 별이 있고, 땅엔 꽃이 있습니다. 우리들 가슴속엔 아름다운 꿈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위하여! 위하여!' 느닷없이 고등학교 동기 모임에서 내가 외친 소위 건배사다.
고등학교 동기 회장이 느닷없이 건배사를 해달라는 부탁에 당황스러웠다.
별로 존재감도 없는 사람이 간택된 이유는 특별한 외모 때문인데, 어설픈 수채화를 그리며 가끔 색소폰을 연주하는 사람이 머리를 묶고 다니는 꽁지머리 덕분이다.
어림도 없는 예술가인 척이 아니라, 세월 따라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칼을 보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데 특별하게 봐주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인 MBTI에서 영원히 I인 나는 언제나 삶을 이야기하는 조용한 술자리를 원한다.
어쩔 수 없는 자리에선, '수고하셨습니다'나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간단하면서도 재미없는 말로 첫인사를 하여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아직도 그런 술자리를 고집하고 있다. 가끔 많은 사람들이 공존해 있는 자리에서 큰 소리로 '위하여!'를 외치는 모습에 익숙하지도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듯해서다.
연말, 올해도 수많은 술자리를 만난다. 새해가 시작되면 또 이어지는 술자리다.
매일마다 만나게 되는 술자리엔 빠짐없이 '위하여!'를 외치고 또 듣게 된다. 무엇을 그렇게도 위하고, 무엇을 위해 외치고 또 외쳐야 하는가! 친구들 여럿이 모여 술을 따랐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의 상가에서의 술자리다. 먼저 떠난 친구가 마련해 준 술 한잔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친구들의 제안에 술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조용히 술 한잔을 입에 털어 넣고 만다.
상가에서는 건배사를 하지 않는다는 어느 친구의 거창한 지식의 전달 때문이다. 건배사도 없고, 술잔을 부딪치지도 않아야 한단다. 누구의 생각인지 몰라도 그럴듯한 지식을 수용하고 만다.
이젠, 건배사가 없는 술자리가 많아진 세월, 나는 무엇을 위하여 가슴에 꿈이 있다 하였을까?
고희의 세월에 남는 것은 건강만이 살 길이라 생각한다. 보험보다도 우월하다는 근육을 위해 불철주야 매진하고 있는 이유다. 건강 말고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근육 아니면 살 길이 없다는 생각으로 눈을 뜨고 감는다.
가끔 손녀를 데리고 절집을 찾는다. 초등학생인 손녀는 할머니를 따라 공손하게 절을 한다. 어떻게 배웠느냐는 말에 그냥 할머니를 보고 하기 시작했다 한다. 어린것이 기특하여 늘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할아버지, 정성스러운 기도가 끝나면 어김없이 손녀에게 물어본다. 무엇을 그렇게도 간절하게 빌었느냐고!
한참을 주춤거리다 귓속말로 전해준다. 건강과 우리 집의 행복을 빌었다고!
깜짝 놀람은 어른과 어린아이가 바라는 것은 같다는 것이었다. 어린것이 어떻게 저렇게도 어른스러울까?
세월만 먹었지 나잇값도 못하는 어른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흥겨워야 할 연말이 되었는데, 나라는 꽤 어수선하다. 눈뜨고는 보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송년회다 망년회다 하여 술자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마음까지도 어수선하다. 가게를 하는 친구는 장사가 안된다며 하소연이고, 호박농사를 짓는 친구는 호박값이 폭락했다며 한숨을 짓는다. 너도 나도 경기가 없다며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난리를 치고 있다. 이 판국에 무엇을 바라며 곳곳에서 '위하여!'를 외치고 있을까?
어린 손녀의 외침처럼, 건강과 가족의 안녕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엔 사회와 국가의 안녕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조용한 건배를 자주 해야 하는 어르신들도 결국엔 건강한 삶 말고는 원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친구가 술자리에서 외친다. '누죽걸산',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단다. 결국엔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건강이라는 것을 외치는 소리다. 하지만 여기에도 사회의 평안함과 국가의 안녕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연말연시에 곳곳에서 외치게 되는 건배사, 건강과 가족의 안녕이다. 어린 손녀에서 할아버지까지 건강한 삶을 원하지만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 사회와 국가의 건강함이다. 올 한 해를 뒤돌아 보고, 아름다운 새해를 설계하는 계절에 서로의 안녕을 위해 기도한다.
마음을 담아 외치기도 하고, 갖추어야 할 의식을 위해서도 '위하여!'를 외치게 된다. 수많은 외침 속엔, 국가의 안녕이 깊숙이 배어 있음을 다시 한번 되뇌게 하는 연말이다.
친구의 느닷없는 부탁으로 외친 건배사 속엔 남아 있는 말, 아름다운 꿈은 무엇이었을까?
가슴에 담긴 아름다운 꿈을 위하여 속엔, 나의 건강과 가족의 안녕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안녕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하는 요즈음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생각하지도 않던 항공기 사고까지 일어났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서민들이 어렵게 마련한 동남아 여행,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 되고 말았다.
모든 술자리를 거두고, 사망하신 분들에게 조의를 표하며 그 가족들의 슬픔을 같이해야 할 연말이다.
국가와 사회의 모든 일들이 원만히 마무리되고 평상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기대, 누구의 책임이던가!
결국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언뜻 드는 계절, 건강과 가족의 안녕을 위하여!
그리고 건강한 나라를 위하여! 가슴으로 외쳐보는 오늘의 건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