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통영)
여행 계획이 고민이었다.
삶을 부지하고 있으면 찾아가는 체육관이다. 나이도 성별도 상관없이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곳이다. 시골의 특성에 따라 일철이 나서며 한산하고, 일철이 지나면 붐빈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커피 한잔하자는 전언이다. 언제나 유쾌함을 주는 친구인데 오늘도 변함이 없다. 힘차게 운동을 하고 마시는 아이스커피 한 잔, 커피의 맛을 알게 해 준 새로움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여행을 해 보자는 제안이다. 일은 없어도 바쁜척하는 고희의 백수, 날짜를 잡아보란다. 언제든지 좋으니 잡으라는 시간, 어쩔 수 없는 여행길이 되었다. 여행을 약속하고 생기는 고민, 잘 마치고 돌아올 수 있을까? 체육관에서만 만났던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운동하며 삶을 나누던 사람들이 혹시, 지금까지의 좋은 관계가 어긋나면 어떻게 할까? 늙어가는 사람의 고민 아닌 걱정이었다.
해외여행을 떠났던 친구들이 싸우고 돌아왔단다. 다시는 같이 가지 않겠다며 한숨을 쉰다. 언제나 여행은 신나는 삶이다. 낯선 땅이 궁금하고 그들의 삶이 알고 싶어서다. 즐거운 여행이 며칠 지났다.
서서히 피곤해지면서 동행자의 단점이 보인다. 왜 저런 행동을 할까? 무심하게 지나던 일을 참견을 하게 된다. 말다툼이 일어나고 의견충돌이 생기게 된 사연이다. 다시는 같이 여행을 하지 않는다며 돌아온 여행길이다.
신선한 먹거리가 사람발길을 잡았다.
가을비 추적대는 날, 여행은 시작되었다. 언제나 유쾌한 지인들과 함께하는 여행길이다. 통영으로 향하는 여행길은 맛을 찾는 여행이었다. 갖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들어서는 통영은 구름이 낮게 드리웠다.
어디부터 가야 할까? 눈에 띄는 것은 맛집이었다.
싱싱한 횟감과 꿀빵 그리고 충무김밥이다. 도착하자마자 먹는 것으로 시작할 수는 없다.
우선은 동피랑으로 올랐다. 동피랑길, 언젠가 신선함을 주던 산책길이다.
동피랑, 삶이 담긴 벽화가 눈길을 잡는다. 어느 작가가 그렸을까? 갑자기 동피랑이 무슨 뜻이냐 한다.
글쎄 동피랑이 뭐지? 가끔 찾아 오지만 그냥, 벽화마을이라는 생각이었다.
동피랑, 동쪽과 비탈을 의미하는 사투리 비랑이 합쳐서 생긴 이름이란다. 통영시 중앙시장 뒤쪽 언덕에 위치한 마을이다. 공공미술을 통한 마을 살리기 사업으로 그려진 벽화와 바다풍경이 어우러진 유명 관광지다.
동피랑에 올라 바라보는 통영은 대단했다.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어우러진 풍경, 여기에 충무공의 묵직한 충성심이 담긴 관광지로의 면모가 눈에 띈다. 언덕을 오르는 곳곳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지만 조금은 한산한 느낌이다. 왜 이렇게 사람이 없을까?
가을비가 주는 풍경인가를 의심하며 내려오는 골목엔 삶에 활력이 있다. 다양한 먹거리가 가득하고 활기찬 상인들이 여행객의 발길을 잡는다. 하지만, 주말인데도 여행객들의 발길은 뜸했다. 언제나 북적이던 시장통은 한산했고, 상점마다 가득한 해산물들이 한가롭기만 했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선 맛집도 한산했다.
통영에 왔으니 신선한 물회와 고등어 회를 주문했다. 얼음이 살짝 얹힌 물회는 맛이 있다. 주인장의 입담과 함께 나온 물회, 바닷가에서 먹는 맛을 알려준다. 소주 한 잔과 어울리는 고등어 회는 항구에서만 볼 수 있는 신선한 맛이었다.
여행 속엔 삶의 지혜가 담겨있었다.
비릿한 바다냄새가 나는 통영 앞바다, 파랑이 가득이다. 역시 바닷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여행지를 따라 나선곳은 미륵산 케이블카다. 순식간에 오른 미륵산 정상은 대단했다.
푸르른 바다를 배경으로 솟아 있는 수많은 섬, 어디에 눈을 둘까 망설여진다. 자그마한 운해가 깃들여진 통영 앞바다는 역시 동양의 나폴리였다. 아름다움을 모두 담을 수 없는 빈약한 언어 습득을 후회하며 바라보는 다도해, 통영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가끔 찾아오던 통영은 아내와 함께였다. 신선한 회 한 접시와 곁들이는 소주 한잔은 잊을 수 없어서다. 신선함을 잊지 못해 찾아오던 통영을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한 것이다. 삶이라는 것이 그렇고 그런 것이란 생각에 많은 여행을 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나선 여행길이지만, 퇴직 후 지인들과 떠난 여행은 처음이다.
혹시, 불편함이 있으면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은 쓸데없는 기우였다.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서다. 큰 소리도 필요 없고 떠들 필요도 없는 여행길, 세월이 만들어준 삶의 지혜였다.
대단한 것을 바라는 여행길이 아니었고, 단지 일상을 잠시 잊고자 하는 여행이다.
한산대첩공원과 강구안항구를 돌아보며 이순신장군의 삶을 반추해 본다. 무엇이 그렇게도 처절한 삶을 살아오게 하였을까? 김훈작가의 '칼의 노래'를 기억하며 거북선과 판옥선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거북선과 판옥선에서 충무공의 삶을 상상해 본다. 나라를 위함이 어떤 것인가을 알려준 충무공,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준 장군이었다. 이순신장군 흔적을 뒤로하고 찾아 나선 곳은 먹거리다. 통영에 왔으니 꿀빵과 통영김밥을 맛봐야 되지 않을까?
항구를 따라 펼쳐지는 갖가지 먹거리 중, 곳곳에 들어서 꿀빵과 충무김밥이 코를 자극했다. 꿀빵 한 알을 입에 넣는 기분, 달콤함과 구수함이었다. 아, 이런 맛이었구나! 다시 맛보고 싶었던 꿀빵이었고, 통영김밥의 단순함이었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단순할 순 없을까? 오로지 김으로 말아버린 단순한 김밥에 곁들여지는 반찬은 일품이었다. 다양한 재료로 만든 소스와 만난 어묵이 김밥과의 어울림은 단순하지만 맛이 있다. 매움과 고소함이 있는가 하면, 달콤함과 짠맛이 어우러진 단순함이 만든 김밥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통영여행, 불편하면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은 필요치 않았다. 세월이 만들어준 지혜가 배려와 양보하는 여행을 만들어 주었다. 새로운 만남은 신선한 삶의 연장이었고, 늙을 줄 몰랐던 그간의 삶을 깨닫는 여행이었다. 고민 속에 시작된 짧고도 긴 통영여행, 삶의 지혜가 만들어낸 신선한 아름다움으로 끝이 났다(25.10.24일 오마이 뉴스 게재)